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엄마 은희는
가까스로 참고 있던 이 말을
내뱉는다.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 말의 의미를.
복남은 얼버무린다.
자영은 발끈한다.
은희가 반격한다.
대본리딩
이 영화는,
살고 죽는 문제를 다루지만,
다시 보면
뭐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감독님이 보시면,
그거 아닌데요~ 할 수 있겠다.
당연하다. 이건,
은희역을 맡은 배우 장마레의 생각,
요즘 말로 하자면 뇌피셜이니까.
이미 자살을 시도한 지 여러 차례.
오늘도 역시나.
바닥을 질질 끌며 의자를 가져와서는
그 위에 올라
천장에 매달린 전등에 밧줄을 건다.
층간소음만으로도 위층 여자가
뭘 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도 이미 겪었던 일이 아니던가.
층간소음을 핑계로
자영의 집에 들이닥친다.
그리고 예기치 않게
자영의 엄마 은희와 맞닥뜨린다.
남자친구로 오해받기 딱이다.
자꾸만 엇나가는 자영을
지키는 방법은 오직
기도뿐이다.
기도에 목숨 거는 이유다.
씬 3에서 등장하는 이 대사는
엄마들이 늘 하는 뻔한 말이지만,
나에겐 조금 다르게 들렸다.
너는,
자영이를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이야?
라는 진심이 엄마 은희의
투박한 이 한마디에
묻혀 버리고 만다.
S#3 거실 / 오전
거실 상에 마주 보고 앉은 은희와 복남.
은희는 추레한 복장의 복남을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훑는다. 서로 눈치를 보는 자영과 복남.
은희 : 남자친구라고?
(정적) 만난 지는 얼마나 됐어요?
복남 : 삼가..(동시에)
자영 : 오가..(동시에) 삼! 삼 개월 됐어 사귄 지
은희 : 자영이는 어떻게 만났는데요?
둘이 같이 살아요?
복남 : 아유 절대 아닙니다
자영 : 이분 여기 빌라 살아.
오며 가며 만났어. 아 그게 뭐 중요해?
은희 : 이 분?
자영 : 아니 이 사람..
(기죽었다가 휙 고개를 들고) 엄마 안 가?
은희 : 넌 예배도 안 나오더니
이 청년이나 만나고 다닌 거니?
복남 : (무릎 꿇고 인사)
박복남이라고 합니다.
어머님 정적. 자리에 다시 앉는 복남.
은희 : 뭐 하는 사람이에요?
복남 : 하하 뭐 이것저것 하며..
자영 : (신경질적으로)
아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고
은희 : 그럼 안 중요하니?
너도 여적지 이러고 사는데?!
자영 : 그러니까. 내가 이러고 살잖아.
난 뭐 별 게 있어?
은희 : 하아...
가방에서 성경을 꺼내 펼치는 은희
<대본 S#3 중에서>
죽으려 하는 자.
돕고자 하는 자.
지키고 싶은 자.
그 사이에서
우왕좌왕, 우물쭈물, 티격태격, 단짠단짠.
뭐 하는 세 사람 중에
지키고 싶은 자.
자영엄마 은희에게
기도는 딸을 지키는
단 하나의 무기.
지키고 싶다고 했지만
버티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버티려면 뭐라도
기댈 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감독님은 은희에게서
종교에 기댄 비뚤어진
모성애를 이야기하셨지만,
나는 기도에 기대어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오디션 때부터 비중이 높았던
기도 연기를 하면서
나는 그런 심정에 기댔었다.
그래서일까.
촬영할 때는 감독님과 맞춘 연기톤보다
격앙되어 통곡하고야 만다.
눈물이 어찌나 나든지.
물론, 진정하고 다시금 찍었지만.
이쯤 되면 영화 제목,
'첫 번째 기도'의 주인공이 누굴지.
뭐 하는 사람이 되는지
짐작하실지도 모르겠다,
엄마, 은희에게 기도가 그랬듯
자영과 복남은
서로의 기댈 데가 되어 줄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잠시 유보하도록 하자.
엔딩을 알면,
영화를 기다릴 만한
기댈 데가 사라지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지만.
첫 번째 기도
Fiction/Color/2022/11'07"
각본/연출: 김지수
출연: 허꽃분홍, 고기영, 장마레
같이 만든 사람들: 고광준, 김민정, 조병주, 전호식, 유경석, 이대솔, 강에림, 함현상
제15회 서울영등포 국제초단편영화제 뉴제너레이션 부문 선정(2023)
무거운 이야기지만 심각하지 않다.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묵직한 한 방을 던질 줄 아는
김지수감독의
영화로운 시절을
응원합니다.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100명의 마레가 산다'
장마레의 브런치북은 수요일
#브런치북 연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발행에 미숙한 점 양해를 구합니다.
지난주, 단편영화 '유타나시아' 편은
개인 일정으로 반나절 앞당겨 발행하다 보니
브런치스토리로 발행이 되었네요.
추후에 브런치북으로 모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