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마레 May 22. 2024

약속은 지키셔야죠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씬으로 읽는 단편영화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약속은 지키셔야죠'


안 그러면,

칼 맞는 수가 있다.


대본리딩

이 영화는

시나리오 쟁탈전을 벌이며

피, 땀, 눈물 꽤나 흘리는

작가들의 이야기이다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2021년 여름.

필름메이커스에 뜬 이 영화의 공고를 본 순간,

타이틀에 다.


오랜 시간 글 좀 쓰는 일을 해 온

나로서는 절로 공감 가는 말.


거기다 영진위의 지원을 받는 시나리오라니,

뭔가 있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연이 있는지 대본부터 들여다보자.




1. 놀이터 (낮)


 시소를 타고 있는 둘.

혜진은 어린이용 음료수를 마시고 있고 종찬은

자기의 습작노트를 가슴에 안고 있다.

저 멀리 구석에서 그네를 타면서

글을 쓰고 있는 할머니(70, 여)가 보인다.


종찬: 아 영화 그만둘까.
 혜진: 또 왜.
 종찬: 시나리오 어떻게 쓰는 건지 모르겠어.
 혜진: 종찬, 시나리오 써봤잖아.
 종찬: 그건 그냥 쓴 거지...

 그냥 써지는 대로 쓴 거야.

지금은 제대로 쓰고 싶거든?
 근데 갑자기... 시나리오는 어떻게 쓰는 거지...

하는 생각이... 허허허... 아니다.


혜진 (종찬이 품 안에 안고 있는

습작노트를 가리키며)

 그래서 그건 언제 완성시킬 건데.

(혜진의 내레이션)

종찬의 시나리오. 일 년째 그대로다.

혜진: 그냥 대충 써. 그럼 어떻게든 돼.


종찬(내레이션)

혜진의 영화. 대충 영화다.

(음료수 병을 들고) 영탈지!
 (시소 오르락내리락하며/

한 구절씩) 영화계! 탈출은! 지능순!

하늘에서 시나리오가 뚝하고 떨어지면 좋겠다.

아 시나리오 어떻게 쓰지.

 술이나 마실래?
 그래.


이때 혜진에게 태석의 전화가 걸려온다.


종찬: 태석이야?
 혜진: 여보세요
 태석 (소리) 딸, 잘 지내지?
 혜진 (급하게) 어, 아빠.

나 시나리오 쓰는 중이니까 바빠. 끊어.

태석 (소리) 응. 딸 사랑해


혜진, 전화를 끊는다.
 이때 그네 타던 할머니,

그네에서 일어나 그들 앞을 지나간다.


멋지게 정장을 입고 있다.
 혜진: 와 인상 되게 좋으시다.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

.
 둘 앞에서 할머니와

청소부 차림의 중년 여성 순이(55, 여)가 대치 중이다.


할머니: 언제 주실 거예요?
 순이: 죄송해요. 한 번만 봐주세요.

이번에는 못 드릴 거 같아요.


할머니:... 약속은 지키셔야죠.


할머니는 긴 칼을 꺼내더니

순이의 복부를 찌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혜진과 종찬을 지나친다.


<대본, 씬 1 중에서>




이 영화에서

 씬 1은 터닝포인트다.


시나리오 작가인 혜진과 종찬이

역시나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인

순이가 남긴 엄청난 시나리오를

만나는 장면이자 쟁탈전의 서막이랄까.


나, 역시

영화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킬러이자

시나리오 작가였을 것이라는 게

김혜진 감독님의 말씀.


'약속은 지키셔야죠'


 그랬다.

이 대사는 곧,

대필해 준다고 했던 시나리오를

순이가 넘기지 않으니

계약대로 목숨을 내놓으시지.

그런 뜻으로 의역된다.


시종일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시나리오 작가.


그들은 순이의 시나리오를

차지하기 위해

때로는 칼부림을, 때로는 절도를,

때로는 36계 줄행랑을 감행한다.


감독님, 참 엉뚱하다.

싶었다.


감독님은 연기도 하신다.

혜진이 혜진했다.


칼 쓰는 연기라니.

더구나 킬러라니.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이누야샤' 등을

즐겨 보면서 사무라이의 칼을

익히 보기는 했다.

 

그런데 정작 오마주한 것은

 영화 '킬빌'.


킬러가 된 나는 영화 '킬빌'의

우마 서먼이었고,

루시 리우 이기도 했다.

<씬1 콘티 중에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던 그날의 대기씬>





















내 이름은 '석자'


원래 대본에는 이름 대신 할머니.

완성된 영화의 크레딧을 보면서 또 한 번 웃었다.

이름이 '석자' 라니.


지금도 그렇지만,

내 나이에 맞는 연령대와 독특한 캐릭터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필름메이커스에 올라온

짧은 로그라인과 캐릭터 설명만으로

지원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킬러라니,

신선했다.


 흰색 슈트 차림,

청담동식 풀 메이컵.

운동화 브랜드는 베자.

거기에 사무라이 칼.


킬러 맞아?

하실지도 모르겠다,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


극 중 혜진이 내가 맡은 킬러 석자를 보는 순간,

내뱉는 대사다.


칼을 찬 인상 좋게 생긴 할머니.

이런 B급 정서라니.


감독님, 참 엉뚱하다 싶었다.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가 표방하는

블랙코미디답게


그저 웃고 넘기기에는

쓴맛이 돈다고나 할까.


그래서  더  좋았다.


'약속은 지키셔야죠'


 '칼'이란 게,  '글'이란 게,

 참 무섭다.


나만의 무기지만

언제든 나 스스로를 베어 버리는

도구가 되기도 하니까.


 쓰고야 말겠다는

해내고야 말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에

울고 웃는다.


그게 작가들 일이니

어쩌겠는가 싶지만.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지금도 여전히

혼잣말처럼 되뇌이고 있을

작가들에게,


 혜진의 대사가 위로가 될는지.


"그냥 대충 써, 그럼 어떻게든 돼"


 시작이라도 하자는

말이겠지.


일단, 쓰고 봅시다.


그럽시다.

자, 약속하는 겁니다.


안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않는가.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Fiction/Color/14'15"

각본/연출: 김혜진

출연: 이종찬, 김혜진, 하승연, 김태윤, 장마레, 이창교

같이 만든 사람들: 김혜진, 황현, 이정현, 김승혜, 이창교, 김준형, 백현아, 엄준호, 정한나, 고정연, 조연석, 개화만발, 김영호, 김하민

영화진흥위원회 2021 일자리 연계형 온라인/ 뉴미디어 영상콘텐츠 제작지원 작품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수없이 고민하면서도

여전히 맞짱 뜨고 계실

김혜진감독의

영화로운 시절을

응원합니다.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100명의 마레가 산다'

장마레의 브런치북은 수요일 밤 0시


다음 주부터는,

수요일 아침 10시에 찾아옵니다.


이전 04화 뭐 하는 사람이에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