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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마레 Apr 24. 2024

일어나 보라니까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씬으로 읽는 단편영화 

<케이크>




'일어나 보라니까'


언니를 잃은 나는 엄마를 잃은 조카에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지켜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대본리딩
단편영화 <케이크> 중에서

이 영화는,

상실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한

 조카의 부재를 알게 된 나는

승우모자가 살던 예전 언니네 집으로 

무작정 달려갔다.


6 씬은 

두문불출하는 승우가

왜 이러는지 그 속사정을 알려준다.




S#6  안방 / 실내 / 늦은 오후


빈 방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매트리스 위에서 

어린 승우가 놀고 있다. 

방 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리자 

흠칫 놀라며 화장실로 뛰어간다.

이모가 방 안으로 들어와 덩그러니 

놓여있는 매트리스를 바라본다. 

따라 들어온 승우가 매트리스로 다가가 

이불을 정리한다. 

이모가 그런 승우를 바라보다 얘기한다.


      이모       

승우야. (승우가 답이 없자 다시) 

승우야. 너 지금 이러는 거.. 

이모가 걱정돼서 그래, 응?


승우가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돌려 

매트리스에 앉는다. 

고개를 들자 화장실 문 틈새로 

빼꼼 나와 있는 어린 승우와 

눈이 마주친다.


     이모      

너 이러면, 네 엄마는 어떻겠니.. 

너 힘든 것도 모르는 거 아니지만..


승우가 슬쩍 손을 들어 

어린 승우에게 인사한다. 

어린 승우도 장난스럽게 인사를 한다.


      이모       

언니 그렇게 갔으면 

정신 차려야 할 거 아냐...


이모가 목소리를 추스르고 

승우에게 다가와 앉는다. 

승우, 그제야 고개를 들어 

이모를 쳐다본다.


      이모        

이사했다면서. 왜 여기서 자고 있어. 

집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승우 

아, 아니에요.


   이모    

(매트리스를 보며) 이건 왜 안 버리고...

아휴. 오늘, 응? 

오늘 이모랑 이거 버리고, 

밥이라도 먹자. 

말 나온 김에 지금 가져다 놓자. 

(승우의 몸을 탁탁 치면서 일어난다) 

일어나.


승우는 그 말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모가 이불을 둘둘 말아 바닥에 

던져두고 매트리스에 씌워져 있는 

이불보를 빼려고 한다.


    이모       

(답답하다는 듯이) 일어나 봐


여전히 꿈쩍도 않는 승우.


   이모       

(힘을 주며) 아잇.. 일어나 보라니까!


 그때, 승우가 이불보를 붙잡고 있던 

이모의 손을 지긋이 잡아 

천천히 치워버린다.


<케이크, 6 씬 대본 중에서>





이모는 또 한 명의 엄마


승우역을 맡은 이수형 배우님과의 

신경전이 관건이었다.


팽팽했으면 했다. 어쩌면 이것이

승우를 각성하게 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으므로.

그래서 매트리스 커버를 잡은 손에 

힘을 잔뜩 주었다.


 이모지만 엄마의 느낌도 났으면.


 승우 엄마와는 언니 동생, 

자매지간이니 닮았을 터.

내가 생각한 승우엄마는

단아하면서도 단단한 느낌이었다.


단편영화의 경우, 

배우들이 의상을 준비하는 때가 있다.

엄마스러운 옷이 별로 없는 나는

 그때마다 촬영용으로 구매하곤 한다. 

착장 사진을 보내면 연출진이 결정한다.

<직접 찍어 보낸 의상리스트>










 독립영화워크숍 209기 단편영화, 

'케이크'는

상실과 회복에 대한 몽타주.


매트리스는 케이크이자 엄마의 품


주인공 승우에게 애착인형과도 같은

 '매트리스'는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 준 '케이크'인 

동시에 

부드럽고 따뜻했을 엄마의 품이다.


폭신폭신한 푸근함, 

잘린 매트리스의 단면은 

마치 케이크를 잘라놓은 면과도 겹친다.


매트리스와 케이크를 연결한

연출진의 상상력이 재밌고 좋았다. 


 3명의 감독이 나누어 연출했는데 

내가 출연한 이 씬은 이찬규 감독이 맡았다.

영화 한 편에 자연스레 녹아든 

연출팀의 콜라보가 흐뭇했다.

<촬영현장, 이수형배우와 이찬규감독>









<매트리스를 직접 옮기는 감독님들>








<단편영화 케이크팀과 충무로 오! 재미동 상영회에서>










<상영회 후, 다시 만난 연출팀과 배우들>











일어나 보라니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겪는 일,

그렇다고.

상실의 무게가 나이에 따라 

더하거나 덜하지 않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래서 일어나라는 말에 실린 진심의 무게를 안다.

지금은 기다려주어야 할 때라는 것 또한.


결국, 일어나게 하는 건 자신.


그럼에도 난,

그럴 때마다 누군가 말해 주었으면 싶다. 

한 번쯤은.


일어나. 일어나 보라니까.



케이크

Fiction/Color/10'58"

만든 사람들: 이유진, 이찬규. 장세원, 전승연

나온 사람들: 이수형, 장마레, 윤서준, 권민정


상실과 회복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할 줄 아는

이유진, 이찬규, 장세원 감독의

영화로운 시절을 응원합니다.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100명의 마레가 산다'

장마레의 브런치북은 수요일 밤 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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