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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롤 Oct 14. 2023

나는 다시 '취업 준비생'이 되었다.

작년 3월 이사를 했다. 마음만 먹으면, 내가 찾는 자리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이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오만한 착각이 처참히 무너진 후였다. 일을 그만 둔지 9개월째. 무직 상태가 머지않아 1년이 될 터였다. 9개월간의 내 생활 패턴과 목표를 그 어떤 주변 사람보다 먼저 알아챈 스마트폰 알고리즘이 묻지도 않았던 '성공적인 이직 비법' 동영상을 추천해 주었다. 자기계발 관련 콘텐츠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동영상이었다. 하지만 미리보기 자동재생으로 흘러나온 HR 전문가의 한마디가 무심히 위아래로 움직이던 내 엄지손가락을 멈췄다. 동영상 속 전문가는 말했다. 이직 준비 공백기는 최장 1년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1년 이상의 공백기에는 충분히 의미 있고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지 않는 한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워 이직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현실적인 말이었다.


일을 그만 둔지 9개월째. 이직 준비 공백기가 1년이 되기까지 남은 3개월 동안 과연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전혀 그럴 가능성이 없었다. 자신감을 잃어서, 부정적으로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랬다. 일을 그만두고 9개월 동안 낸 지원서 숫자는 한 손에 꼽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매일 공고는 확인했지만 좀처럼 어디에, 어떤 포지션에 지원해야 할지 찾는 것이 예상 했던것보다 쉽지 않았다. 일단 아무거나 해보자 하고 무작정 들이댔던 첫 취준 시기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쌓아'가야 하는 30대에 들어선 내게 '두 번째 직장'이 가진 의미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아니, 그냥 내가 멋대로 '두 번째 직장'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삶에서 커리어에 가장 큰 무게를 싣는 내게 '두번째 직장'은 중요했다. 첫 번째 직장을 통해 나의 가능성과 능력을 시험하고, 계약직이었지만 인턴에서 벗어나 정식적인 커리어의 시작을 끊었으니, '두 번째 직장'은 그 토대 위에 성장을 목표로 전문성과 경험을 쌓기 위한 곳이어야 했다. 짧게 다녀도 3년, 대략 5년은 다니면서 향후 지속가능한 커리어의 기초 공사를 튼튼히 해나가고 싶은 마음에 9개월 전 첫 직장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해나가고 싶은 마음'은 기대 또는 바람일 뿐, 예측이 아니다. 여러 데이터를 모아서 한 예측도 빗나가고 철저하게 초, 분단위로 세운 계획조차도 일그러지기 십상인 마당에, 허울만 좋은 '마음'은 보란 듯이 무너져 내렸다. '최소 5년간', '성장할 수 있는',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커리어를 쌓기 위한 기초 공사'라는 온갖 무겁고 거창한, 그러면서도 쓸데없이 추상적인 의미를 잔뜩 붙여놓고 보니 어디에 지원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중요한 '두 번째 직장'에 걸맞은 곳이 대체 어디인지, '두 번째 직장'을 멋대로 정의했던 나조차 알지 몰랐다. 그렇게 한번 의미를 잃고 구직 사이트들을 방황하다 보니 결국엔 '내가 대체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달리고 싶었는지,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라는 아주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했다. 대학 졸업 전 또는 후, 처음 취업준비를 할 때 20대 청춘들이 던질만한 질문이었다. 나 스스로도 한창 젊음의 가능성에 취해 무한한 이상을 좇던 20대 때 같은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방황했다. 그 끝에 해답을 찾고 커리어를 쌓아 올려야 할 30대의 현 시점에서, 대학도, 대학원도 졸업하고 수많은 인턴십에 직장까지 경험한, 애매한 이력서를 들고서 약 10년 전쯤 이미 한번 던진 적이 있는 그 똑같은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난 이제 20대도, 청춘도 아닌데 말이다.


직장을 그만두기 전 나름 생각했던 날들이 첫 시작부터 어그러지자 무의미한 시간이 이어졌다. 매일 구직사이트의 공고를 확인했지만, 마우스 스크롤 휠만 열심히 돌릴 뿐이었다. 그렇게 9개월이 지나버렸다. 스크롤 휠을 돌리다가 문득 눈에 걸리는 곳 몇 곳에 지원해보기도 했으나 보기 좋게 모두 떨어졌다. 그래봤자 채 다섯 곳도 되지 않았다. 치열하게 열심히 이직 활동을 했다고 그 누구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말 할 수 없었다. 이직 공백기의 마지노선이 1년이라는데, 그 중 9개월을 그렇게 보낸 것이다. 그러니 1년까지 남은 3개월 동안 이직에 성공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9개월을 그렇게 보냈는데, 남은 3개월 안에 그동안 찾지 못했던 답을 어느 날 번개 맞듯 번뜩 깨닫고서 이직을 해낼 리 만무했다. 현실적으로 보고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전문가들이 말하던 이직의 마지노선인 1년을 넘을 것이었다. 그리고 1년에서 하루, 한 주, 한 달이 지날수록 이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었다. 그 전문가들 말대로 나의 1년이 넘는 공백기가 얼마나 생산적이었는지, 무의미하지 않았는지 설득력 있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통해 설명하지 않는 한 더욱 어려울 것이었다.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여성인 내게, 더더욱 어려울 것이었다.


일을 그만 둔지 9개월째, 스스로를 '이직 준비생'이라고 부르던 나는 쉽게 쌓아 올렸다가 더 쉽게 무너져 내린 내 오만한 착각에 속죄하듯 결국 스스로를 '취업 준비생'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10대 청소년도, 20대 청춘도 아닌, 30대 어른이어야 할 내가 아직도 인생의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결코 바라지 않던,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취업 준비생'이 되는 상황을 자초하고 말았다. 30여 년의 세월, 아니 적어도 20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이 나라 저 나라 옮겨 다니며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 시간을 이미 한번 지나왔으면서도, 30대에 데자뷔처럼 떨어진 똑같은 질문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하고 방황하는 내 모습이 너무 하찮았다. 지난 세월과 경험에도 질문의 해답은 차치하고, 어른답게, 현명하게 어려움을 타파해 나갈 지혜조차 없는 나의 얄팍함이 질렸다.


일을 그만 둔지 9개월이 되던 작년 3월, 나는 우선 이사를 하기로 했다. '이직 준비생'에서 '취업 준비생'이 된 이상, 바라지 않았고 예상도 하지 않았던 무직 상태가 얼마나 더 이어질지 알 수 없었다. 이직 공백기의 마지노선을 넘기게 될 것이 분명한 마당에, 그 마지노선을 넘기면 이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었기에 최대한 오랫동안 무직으로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우선 찾아야 했다. 안정적인 수입원 없이 그동안 모아 둔 돈을 조금씩 까먹으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결국 매달 지출하는 비용을 줄여야 했는데, 쇼핑도, 맛집도 큰 흥미가 없는 30대 싱글 여성에게 지출을 줄일 방법은 딱 하나였다.


집세를 줄이는 것.


지출을 줄인다는 것은 곧 월세를 줄이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월세가 싼 곳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그래야만 언제 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취업 준비생' 생활을 조금이라도, 하루라도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었다. 나의 바람과 상관 없이 나는 지속가능한 공백기를 준비했다. 준비해야 했다.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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