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태석 신부를 떠올리며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지로 불리는 남수단.
그 중에서도 ‘톤즈’라는 작은 마을에
한국의 한 사람이 남긴 이름이
지금도 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이태석 신부.
신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이자 지휘자였습니다.
그는 병을 치료했고, 학교를 세웠고,
장난감이 없어 총과 칼로 놀았던 아이들에게 손에 악기를 들게 했습니다.
아이들의 손에 쥐어진 트럼펫과 튜바는
그 마을에 처음으로 ‘소리’라는 희망을 불러주었습니다.
그가 세운 학교,
그가 돌본 병동,
그리고 그가 키운 아이들은
그의 이름과 함께 여전히 ‘가능성’이라는 씨앗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저는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어느 겨울,
비행기 안에서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를 다시 봤습니다.
몇 년 전에도 보았던 이야기였지만,
그날은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내가 가진 걸 다 나눠주는 삶을 살고 싶다.”
그 다짐은 제 안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아주 작고 조용한 약속처럼.
그 후 저는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처럼 병을 고칠 수는 없었지만,
그분처럼 마음을 들여다보고, 가능성을 일깨우는 일에
제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삶은 거대한 목표보다
작지만 단단한 다짐 하나가 이끌어간다는 것을.
얼마 전,
이태석 신부님의 브라스밴드 아이들이 한국에서 의사 공부를 마치고
남수단으로 돌아갔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기사를 읽으며 저의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소원이 생겼습니다.
나도 내가 가르친 아이들 중에
누군가의 삶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기를.
그게, 제가 지금도 계속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이 흔들리는 날,
내가 쓴 한 문장이 그 마음을 잡아주기를 바라며.
내 글을 읽고 누군가가
“나도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나도 나를 다시 믿어봐야겠다.”
하고 느낀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진 것을 다 쓴 삶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쓰는 글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불빛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은 제가 삶을 시작한 이유,
그리고 지금도 이 길을 걷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