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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을 떠난 나, 쿠팡에 갇힌 내 카드

디지털 잊혀질 권리의 상실

1. 시작: 잊고 싶었던 불안의 그림자


최근 몇 년간 데이터 유출과 관련된 뉴스들을 접할 때마다 불안감은 그림자처럼 커져갔습니다.

특히 쿠팡이나 롯데카드처럼 제가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금융사의 보안 문제나 대형 플랫폼의 고객 정보 관리 실태에 대한 뉴스는 제 디지털 생활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결국 저는 6개월 전, 조금이라도 디지털 발자국을 지우고자 쿠팡에 전화를 걸어 와우 멤버십을 취소했습니다. 내 소중한 개인 정보와 금융 정보를 스스로 통제하겠다는 작지만 단호한 의지였죠.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혹시나 하는 마음에 쿠팡에 다시 로그인했던 순간, 저는 제가 만들어냈던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충격을 경험했습니다.


coupang-withdrawal-barrier.jpg.jpg 컴퓨터 화면 앞에서 탈퇴 버튼이나 로그아웃 메뉴를 찾지 못해 좌절하는 남자의 모습


2. 발견: 나를 기억하는 잔여물


'내 주문' 페이지에 들어갔을 때, 6개월 전 쿠팡 탈퇴를 결심했던 저의 노력이 무색하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결제 정보에는 제가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신용카드의 번호 일부와 함께, 카드 명의자의 이름과 집 주소가 버젓이 남아있었습니다.

더 큰 불안을 안겨준 것은, 그 남아있는 카드 정보가 다름 아닌 제가 민감하게 여겼던 롯데카드의 정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쿠팡은 이 정보를 아직도 왜 가지고 있어야 했을까?

나는 쿠팡을 떠났지만, 쿠팡과 롯데카드 사이에 엮인 이 데이터는 언제까지 안전할 수 있을까?

하나의 플랫폼과 하나의 금융사가 엮인 이 데이터의 잔여물이 저의 '잊혀질 권리'를 묵살하고, 불안의 대상을 두 배로 키우고 있었습니다.

마치 서비스의 서버 속에 디지털 유령처럼 남아 저를 계속 따라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3. 좌절: 사라진 통제권과 탈퇴의 덫


이 충격적인 잔여물을 확인한 후, 저는 즉시 계정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다시 좌절했습니다.

보안 경고에는 사용하지 않는 환경이라면 로그아웃하라고 권유했지만, 정작 로그아웃 메뉴를 찾는 것은 미로 찾기와 같았습니다. 겨우 찾은 탈퇴 관련 페이지는 비밀번호를 모르면 진행 불가라는 장벽을 세워두고 저를 막아섰습니다.

내 정보를 지키기 위해 쿠팡 탈퇴를 원해도,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다는 이유만으로 저는 계정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쉽게 들어오게는 했지만, 고의적으로 탈출구를 숨겨 놓은 듯한 플랫폼의 태도는 저를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의 쿠팡 정보 그 안에 갇힌 채,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coupang-card-data-risk.jpg.png 온라인 결제에 사용된 신용카드를 들고 노트북을 조작하는 모습. 민감한 금융 정보의 위험성 시사.

4. 미스터리: 누가 나를 다시 불렀나?


모든 것이 엉망이 된 상황에서, 이메일로 "[쿠팡] 간편 로그인 계정이 등록되었다"는 알림이 도착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이 기능을 취소했었습니다.

"고객님께서 등록한 것이 아니라면 바로 비밀번호를 변경해 주세요"라는 섬뜩한 경고문.

하지만 저는 비밀번호를 잊어 버렸어요. 쿠팡을 이미 오래전에 탈퇴했기 때문에 필요없다고 생각해 삭제했었죠. 이 글을 쓰고 다시 들어가 로그 아웃을 완전히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누군가가 내 계정을 건드렸을 수 있다는 공포, 그리고 나 스스로 이 위협에 대처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절망감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깔끔하게 쿠팡 탈퇴를 마무리하지 못한 대가였을까요?


5. 마무리: 잊혀질 권리의 무게


나의 경험은 한 소비자가 겪는 개인적인 불편함을 넘어,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매번 무심히 동의했던 '약관'의 무게와 '잊혀질 권리'의 부재를 고발합니다.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맡긴 우리의 정보가, 서비스 이용이 끝난 후에도 플랫폼의 소유물처럼 남아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부당합니다.

특히 저처럼 쿠팡과 롯데카드 등 여러 불안 요소가 엮인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이 불안감은 현실적인 공포가 됩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금 바로 로그인을 시도해 보세요.

당신의 소중한 데이터 유령이 아직도 어딘가에 남아 당신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데이터 주권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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