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교육은 부모의 결심
얼마 전, 신문에도 나온 기사 이야기입니다.
학부모가 직접 만든 시험지를 가져와서
교사에게 ‘이렇게 시험을 내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게 우리 아이가 맞출 수 있는 방식이래요.”
이런 기사를 읽으면서
저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하도 기가막혀서요.
저는 한국에서 특수교사를 하다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 그곳에서 두 아이들을 키웠고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곳은 한국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제가 본 캐나다 초등학교 교실은
점수도 없고, 비교도 없고, 시험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수업은 더 가볍고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이게 수업의 현장인가? 할 정도로요.
하지만 ‘느슨함’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를 기다릴 줄 알았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손을 들 줄 알았고
아이들은 자신의 학습을 주도했고
감정이 폭발할 때, 그걸 말로 표현할 줄 알았습니다
놀랍게도 이 모든 기반은
교사 혼자가 아닌, 부모와의 깊은 신뢰 관계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흔히 훈육을 통제의 기술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본 훈육은 철저히 관계 중심이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지금은 안 돼.”
하지만 그 말 뒤에 오는 건
혼내는 목소리가 아니라 기다리는 자세였습니다.
단호하되 위협하지 않고
경계를 지키되 인격을 해치지 않으며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말로 표현하게 도와주는
그래서 그 훈육은 ‘참고 견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감정을 다루는 힘을 키우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훈육은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닙니다.
훈육은 아이에게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과정입니다.
그건 단호해야 하지만, 공포로 설계되어선 안 됩니다.
한국 교육은 늘 ‘아이’를 바꾸려 합니다.
더 좋은 학원을 보내고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보여주고
더 많은 성취를 요구하죠
하지만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보는 어른의 시선입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대부분 불안에서 출발합니다.
내 아이가 뒤처지면 어쩌지?
이걸 못하면 어떡하지?
다른 애들보다 못하면 실패하는 거 아냐?
이 불안을 내려놓지 않는 한,
성적 없는 교실도,
비교 없는 훈육도
아이 앞에서는 무력해집니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배우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본능을 꺾는 건 늘 비교, 점수, 경쟁입니다.
부모가 먼저 불안을 내려놓고,
비교 대신 관찰하고, 점수 대신 피드백을 믿을 때
아이도 자기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얻게 됩니다.
교육은 시스템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진짜 교육은 제도에 있지 않고,
부모의 눈빛, 말투,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 속에 있습니다.
아이를 바꾸려 하지 마세요.
우리가 바뀌면, 아이는 저절로 자랍니다.
그리고 그 성장은
조급함이 아닌 존중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공부 잘하는 환경'이 아니라
'비교당하지 않는 눈빛'과 '실패해도 괜찮다는 신호'입니다.
교육은 아이보다, 어른이 먼저 배우는 일입니다.
그 변화는 아이를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부모 자신을 바꾸려는 용기에서 출발합니다.
진짜 교육은 부모의 결심에서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