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언제나 짧습니다.
여름의 뜨거움이 채 식기도 전에 바람은 서늘해지고, 나무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해마다 가을이 오면 더 부지런히 걸어 다니고,
더 많은 순간을 눈과 마음에 담아 두려 합니다.
작년 이맘때, 서울 하늘공원 억새밭을 찾았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은빛 억새는 바람을 따라 일렁이며 물결을 만들었습니다.
해가 지기 직전, 석양빛이 억새의 끝자락을 붉게 물들이는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사람들은 그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고, 아이들은 풀밭 사이를 뛰어다니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저 역시 강아지와 함께 그 길을 걸었습니다.
강아지는 낯선 풀 냄새에 들뜬 듯 코를 바쁘게 움직였고, 저는 그 모습을 보며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제게 ‘가을은 선물 같은 계절’이라는 확신을 남겼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은 찾아왔습니다.
이미 서울 불꽃축제는 막을 내렸지만, 여전히 많은 가을 축제가 남아 있습니다.
하늘공원의 억새는 다시 고개를 흔들고 있고, 설악산의 단풍은 조금씩 붉은 물감을 머금고 있을 겁니다.
가평 자라섬에서는 재즈가 흐르고, 서울숲에는 피크닉 나온 가족과 연인들로 가득하겠지요.
이렇게 계절은 우리에게 늘 새로운 장면을 준비해 둡니다.
저는 가을 축제의 매력이 단순히 볼거리에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이야말로 진짜 축제입니다.
누군가는 카메라에 가족의 웃음을 담고, 누군가는 친구와의 대화를 더 오래 이어 갑니다.
낯선 사람끼리도 “사진 찍어드릴까요?” 한마디를 주고받으며 따뜻한 교감을 나누게 되지요.
그 소소한 연결들이 모여 가을 축제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왜 우리는 가을에 유독 ‘추억’을 만들고 싶어 할까? 아마도 계절이 짧아서일 겁니다.
겨울처럼 길게 머무르지 않고, 여름처럼 요란스럽지도 않은 계절.
금세 스쳐 지나가기에, 더 애틋하게 붙잡고 싶어지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축제라는 이름을 빌려 모이고, 걷고, 노래하고, 사진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올해 다시 가을을 붙잡아 보려 합니다.
하늘공원의 억새밭을 다시 찾아가려 하고, 강아지와 함께 단풍길을 걸을 계획입니다.
가을의 공기 속에서는 이상하게도 제 마음이 한결 차분해집니다.
지난 한 해의 무게가 잠시 가벼워지고, 새로운 계절을 향한 용기가 조금은 더 커집니다.
브런치를 통해 글을 쓰는 이유도 같습니다.
누군가와 이 감정을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며 “나도 억새밭에 가보고 싶다” 생각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올해는 꼭 단풍길을 걸어야지” 다짐할지도 모릅니다.
그것만으로도 글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가을은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기는 순간들은 오래 갑니다. 은빛 억새밭, 붉은 단풍길, 재즈가 흐르는 강변, 강아지와 함께 걷던 저녁의 바람. 이런 장면들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올해도 그 장면들을 다시 품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또 한 번 마음이 물들기를 기대합니다.
2025년 가을. 짧지만 선명한 계절이 주는 선물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여러분도 소중한 사람, 혹은 반려견과 함께 축제의 한가운데에서 가을을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언젠가 이 계절이 다시 떠올랐을 때, “그때 참 행복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