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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석 May 19. 2020

슬라임의 유혹. 장난감을 대하는 아빠의 자세

슬라임은 나쁘지 않아요. 아빠가 나빴어요.

어느덧 6살이 된 첫째 딸 채림이가 슬라임을 처음 접한 것은 몇 주 전이었다. 친구 가족들 모임에서 다른 아이 엄마가 아이들을 위해 준비해온 것이었다.
그전까지 슬라임에 대해 내가 갖고 있었던 감정은 혐오에 가까운 것이었다. 정서적 안정이나 촉감놀이... 이런 것과 무관하게 그저 콧물 같은 질감이 싫어서였다. 넋 놓고 조물딱 거리며 시간 보내는 모습이 조금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슬라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매번 '우리 아이는 저런 놀이 안 하면 좋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라임은 나쁘지 않아.
아빠가 나빴을 뿐.

혼자 잘 못 노는 아이. 항상 엄마 아빠를 부르며 같이 놀자고 하던 아이. 하지만, 투명하고 콧물 같은 슬라임을 받아 든 채림이는 한 시간 가까이를 혼자 조물딱 거리며 놀았다. 그제야 나는 생각했다. 

"이건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좋은(?) 것이잖아? 아이도 이렇게 좋아하고, 나에게는 자유시간이 생겼잖아."


그 뒤로 채림이 엄마는 새로운 슬라임을 구비해놓기 시작했다. 그것이 필요한 순간이 종종 생길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슬라임은 우리 부부에게 큰 해방감과 자유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하지만 슬라임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너무 의존적 이어질 것 같은 불안이 존재했다. 나 대신 잘 놀아주고 있는 슬라임... 괜찮은 거니?



혼자 잘 놀고 있을 때 = 부모의 관심이 필요할 때


하지만 이럴 때, 부모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아이가 잘 놀고 있을 때 아이에게 관심을 꺼버리는 것이다. 잘 놀고 있는 아이에게 다시 눈길을 돌리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 째는 아이가 놀다가 다쳐서 울 거나,

두 번째는 아이가 관심받으려고 때 쓰기 시작할 때이다.


슬라임이 자유시간을 선물해 줬지만, 그 모든 시간에 아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아이는 혼자 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항상 부모와 교감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뭔가 집중해서 해낸 성취물을 부모에게 자랑하고 싶어 한다. 엄마 아빠가 나와 함께 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중간중간 말을 걸기도 한다.

하지만 놀고 있던 아이가 부모에게 한마디 씩 던질 때, 자유시간을 만끽하던 부모가 못 듣고 지나쳐 버리거나 별 반응이 없으면 아이는 그때부터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엄마 아빠에게 와서 매달리거나, 슬라임을 엄마한테 던져 본다거나, 엄마가 관심 가져줄 만한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슬라임이 아니라 슬라임으로 놀아주는 엄마 아빠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랜 기간 부모의 무관심이 학습된 아이들에게는 '교감 없는 혼자 놀기'가 익숙해졌을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런 아이라도 부모가 주는 관심은 언제든 충만감을 회복시켜 준다. 


잘 놀고 있는 아이에게도, '뭐 만들고 있니~?' 하며 주기적으로 관심을 보여줘야 한다. '엄마, 아빠가 항상 나를 보고 있구나. 나랑 같이 놀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상호작용이 있어야 정서가 안정된 아이로 자라난다. 그리고 안정적인 교감이 쌓여야 부모와 자연스러운 대화도 가능하게 된다. 딸아이가 중학생 돼서  '아빠가 뭘 알아'라고 말할 때는 후회해도 소용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가장 행복할 때는, 엄마 아빠랑 같이 놀 때.
놀아주지 말고, 놀아라.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이들은 부모랑 놀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특히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전의 아이들에게는 새로 산 장난감이나 놀이터, 키즈카페가 아닌 엄마, 아빠가 즐거운 놀이의 기준이 된다. 그러니,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엄마 아빠가 함께 놀아주는 게 가장 좋다.


놀아주는 게 어려운 엄마 아빠를 위한 팁.

놀이터에서 보면 가끔 어떻게 놀아줘야 될지 몰라서 난감해하는 부모를 종종 보게 된다. 핸드폰을 보면서 그네를 밀어주거나 아니면 뜬금없이 숫자 공부를 하면서 놀아준다. 사실 이건 놀아주는 게 아니다. 사실 어떻게 놀아주는지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아닌 친구가 되어서 놀아보자. 

아이와 놀 때는, 선생님이 아닌 동심으로 돌아가 어린아이 때 했던 것처럼 철없이 노는 것이다. 괜히 어른이랍시고 놀이를 통해서 뭔가를 알려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면, 아이는 아빠를 피해 다닐지도 모른다. 놀이의 흐름과 몰입이 깨지는 것이다. 

유아기는 놀이 자체로 모든 것을 배우는 시기이다. 놀면서 사물의 기능도 익히고, 사회 관계도 배우고, 몸도 튼튼해진다. 뭐가 위험하고 뭐가 안전한지도 익히게 된다. 자신의 한계와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도 배우게 된다. 그러니 놀이 시간을 수학이나 과학시간으로 바꾸지 말자. 그냥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같이 놀다 보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배울 것이다.




 

슬라임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


결국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다. 재밌는 장난감을 사주는 것으로 놀 수 있는 환경이 완성된 것이 아니다. 부모와의 놀이는 아이의 자존감과 정서적 교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혼자 잘 놀고 있다고 관심을 거두면 안 된다. 오히려 그럴 때 한번 더 말을 걸어 주자. 아이와 눈 맞춰주고, 아이가 던지는 말에 맞장구 춰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안정감 있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청소년기에 반항이 아닌 정서적 독립은 유년기 때부터 쌓인 부모와의 신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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