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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무암 Oct 04. 2023

전부가 아니라도 괜찮을까

열매글방(9월) 최종

"누구나 친구가 전부인 시절이 있다."

얼마 전 양다솔 작가의 '아무튼 친구' 북토크에서 이 문장을 보았다. 순간 울컥했다. 아마 처음 본 문장은 아니겠지만 유독 그날은 '누구나'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전과 달리 선명하게 인식한 것은 내가 저 문장의 누군가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 친구가 전부인 시절을 살아본 적이 없어서, 책을 보는 내내 친구에게 모든 걸 쏟는 작가님이 신기했다. 싯다운 코미디와 같았던 북토크에선 간간이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나는 눈물을 떨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누군가는 친구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에 공감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런 열정을 불러일으킨 결핍에 공감했을 텐데, 나는 후자에 속한다. 내가 가장 공감한 것은 대상항상성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상항상성이란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거나 함께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며,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 생후 24개월~36개월 사이에 발달하는 이 능력이 그 시기에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에 대해 지속적인 불안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 시기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어릴 때는 친구가 여전히 내 친구인지 확신하지 못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지금 마주 보고 웃는 사람들과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관계가 유지된다면 더 좋겠지만, 나에게는 실망하지 않기 위한 방어가 더 급했다. 비로소 오랜 의문에 힌트를 얻은 느낌이다.


그러니까 이게 불안이었구나. 늘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왠지 모르게 겉도는 느낌은 실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내가 이곳에 있어도 될지 자주 고민한 것. 원래 알던 사람들이지만 나와 충분히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않는 이 사람들이 내가 여기에 있기를 원할지 걱정하는 것.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는 늘 어려워서, 대화에 섞이지 못하거나 그들 나름의 놀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어색함을 느끼면 이들은 내가 빠져주기를 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그들에게 크게 설명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어느 정도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생겼을 때는 그 사이에서도 조금 더 깊어져 있는 몇몇을 볼 때마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지 궁금했다. 아니, 왜 나는 아닌 거냐고, 더는 나를 원하지 않는 것 아니냐며 질투했다.


'우리가 함께 있을 때 즐거운지'가 아니라 '지금도 네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좋은지'를 궁금해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그래서 그만뒀나 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앞으로도 계속 있기를 바라는 일을. 좋은 방법은 아닐 수 있지만, 분명히 편안해졌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멀어질 수 있다고 느껴지는 관계에는 마음을 쏟지 않는다. 그저 적당히 우리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지 않아도, 소원했던 동안 자연스레 멀어져도 내버려 둔다. 친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같은 크기의 마음을 나눌 수는 없으니, 서로 조금 다른 면이 생겨도 그 관계를 흘러가는 대로 둔다. 맞춰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신기한 건 편안해진 후로 내 곁에 사람이 더 많아졌다. 지금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한 친구가 있고, 몇 년 만에 다시 만나도 며칠 만에 만나는 것처럼 편안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맺고 있는 관계를 나도 모르는 새에 잃은 것은 아닐까, 걱정하지 않는다. 불안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에 내 감정이 오르내리진 않는다.


"얘는 요즘 나랑 안 놀아줘."라고 만날 때마다 말하는 친구가 있었다. 듣다못해 이제는 그 말을 그만 듣고 싶다고 말했을 때 친구는 농담이라며 얼버무렸고 다시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 친구야말로 나를 꿰뚫어 본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단단해진 걸까 단단히 닫아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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