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소설은 되도록 읽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읽을 때 너무 흠뻑 빠져들고, 빠져든 만큼 감정적으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제목 참 따뜻하지 않은가! 슬픈 소설이라고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그래서 집어 들었다.
‘몸이 죽으면 몸을 꾸려가는 마음도 함께 죽는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영혼의 마음만은 그대로 남아 있는다. 그래서 평생 욕심부리면서 살아온 사람은 죽고 나면 밤톨만 한 영혼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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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그보다 더 커지면, 영혼의 마음은 완두콩알만 하게 줄어들었다가 결국에는 그것마저도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말하자면 영혼의 마음을 완전히 잃게 되는 것이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아름드리미디어, p.191
삶의 평온한 모습에서 엄마, 아빠를 잃은 ‘작은 나무’의 이름을 가진 아이의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체로키 사람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뿐 아니라, 온 산의 자연이 이 아이의 슬픔을 덮기 위해, 말을 걸어오고 선물을 준다. 아이의 산에서의 삶에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더 나아가 체로키인들은 이 아이가 산의 친구가 되기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해 준다. 그 노력은 우리의 방식이 아니다. 산과 자연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 방식을 이해하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방식이다.
좋은 소설은 자연을 다루는 솜씨가 대단한 것 같다. 자연의 작은 모습의 특징을 날카롭게 드러내되 읽는 이로 하여금 엄마의 품처럼 편안하고 마치 독자가 이미 경험하고 원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읽어 내려가게 해 준다. 더욱이 이 책에서는 자연에 대한 묘사가 상당하고, 경이로울 정도다. 책의 한 부분에서 뿐만 아니라 책의 다양한 곳에서 다채롭게 드러나되, 주인공의 생각과 마음과 연결된다. 그 연결로 인해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이 책의 시점은 6세 아이의 시점이다. 간혹 6세 아이의 시점에서 이해되지 않으나 어른 독자의 눈에는 너무 뻔한 이야기인 까닭에 자연스레 웃게 되는 곳들이 숨겨져 있다. 어린아이가 할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사소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결국 아이에게 곧은 심지를 갖게 하고 좋은 품성을 갖게 했다. 이런 구절들을 읽으며 지나다 보면, 어른이 되어버린 나의 정서 한 구석도 정화되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하지만, 내 이럴 줄 알았다. 너무 평온했고 아름다웠다. 아무 일이 없을 것처럼 평화롭고 이상했다.
책의 9할을 읽었는데,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찾아온다. '작은 나무'인 아이에게 이 세상은 모두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이를 둘러싼 모든 가족들이 급작스러운 속도로 삶을 마친다. 그것도 속절없이 빠르고, 한꺼번에!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산과 자연이 알려준 대로, 그 결과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순응한다. 4-5년의 산에서의 삶이 어느 어른의 삶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완숙함을 이루어내었다. 놀라움 앞에 흐르던 눈물도 숙연해진다.
이제 아이는 본다. 생명을, 영혼을, 세상을... 그리고 그 아이에게 그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나무야, 늑대별 알지? 저녁에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보이는 별 말이야. 내가 안다고 하자, 할머니가 당부하셨다. 어디에 있든지 간에 저녁 어둠이 깔릴 무렵이면 꼭 그 별을 쳐다보도록 해라. 할아버지와 나도 그 별을 볼 테니까. 잊어버리지 마라... 나는 잊지 않겠노라고 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아름드리미디어, p.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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