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쓰는 이유

by 바삭

불호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다소 조심스러운 일이다. 자칫하면 ‘투덜이', ‘불만 많은 사람'이라는 오해를 사기 딱 좋은 데다, 개인의 불호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얼핏 생각해도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나열하는 사람보다는 긍정적인 내용으로 대화를 채우는 사람이 더 매력적이다. 나 또한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대체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믿는 편이고,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쉽게 내뱉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나는 특히나 갈등에 면역이 없다.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누군가와 언성을 높이며 싸워본 일도 드물다. 그렇게 살다 보니 적응이 되었는지 이제 웬만한 일에는 화도 안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성향은 흔히 ‘착하다’라는 범위가 넓고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설명되곤 하지만, 나는 규칙을 지키는 걸 좋아하고 인내심을 발휘하려 노력할 뿐 절대로 천성이 착한 게 아니다. (실제로 착하다는 칭찬 같은 건 많이 들어보지도 못했다.)


갈등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호’와 ‘불호’를 명쾌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 격렬히 싫어해도 딱히 반박하지 않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나 역시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낭비하며 논쟁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것에 대해 ‘싫다’라는 감정을 느껴도 곧바로 표출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싫음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서툴고, 표현하더라도 망설이는 시간이 길다. '분노, 불쾌, 불만, 지겨운, 위축되는, 속상한, 외로운, 두려운…' 등 싫은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는 무궁무진한데도, 제대로 표현해본 일이 없으니 그중 어느 단어로 감정을 설명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냥 별로'라는 말로 뭉뚱그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싫어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게 무조건 무례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싫다는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습관이 장기적으로는 더 나쁜 영향을 끼친다. 자신이 뭘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살다 보면 스스로를 보살피지 못할 확률이 크다. 나 역시 습관처럼 싫은 것을 참고 참다가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 폭발의 잔해는 마취제처럼 온몸으로 퍼져 나를 좀먹었고, 스스로가 옹졸하고 맹숭맹숭한 사람으로 느껴지게끔 만들었다. 싫은 것들을 마음껏 싫어하지 못한 우유부단함의 대가로, 그 감정의 화살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게 된 꼴이었다.


그래서 나는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정성스럽게 써 내려가 보기로 결심했다. 싫다는 감정이 들 때 "그냥 왠지 싫은 것 같기도…" 하며 두루뭉술한 이유를 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이유 때문에 싫어", 혹은 "싫은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싫지 않아"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썼다. 글을 쓰며 놀라웠던 점은 첫째로 싫은 것들의 목록이 생각보다 길다는 것, 그리고 둘째로는 그 목록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글을 쓸수록 그 감정이 조금 옅어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싫어하는 게 많은 사람이고, 또 생각보다 싫어하는 게 별로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 결정을 내리기 힘든 경우, ‘좋아하는 것’을 고를 게 아니라 ‘죽어도 싫은 것’을 먼저 제외하다 보면 좀 더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지만 싫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대체로 납득 가능한 이유가 하나쯤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누군가와 같은 걸 좋아할 때보다 같은 걸 싫어할 때 더욱 깊은 유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 불호에 대한 탐구 과정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더 분명히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나의 불호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일만은 피하고 싶기 때문에, 글을 쓰기 전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로는 그 불호가 사람을 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정 인물에 대한 부정적 언급은 친한 친구들끼리 있을 때나 가끔 할 법한 일이지 글로 남길만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언제라도 그 인물에 대한 나의 시각이 바뀔 수도 있는데, 평생 남을 활자로 그 감정을 드러내는 건 경솔한 일이다. 그러한 이유로 뼛속 깊이 싫어하고 있는 게 분명해도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글감에서 제외했다. 두 번째는 순간적인 ‘분노’와 ‘불호’를 잘 구분하는 것이다. 왜 싫은 감정을 느꼈는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사유함으로써 감정에만 매몰되지 않기를 바랐다. 마지막 원칙은 부정적인 단어를 너무 많이 사용하지 않을 것. 싫어하는 감정만 줄줄 내보이면 읽는 이를 피곤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들 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게 아니다.


'좋음’과 ‘싫음’은 대체로 종이의 앞뒷면처럼 맞닿아 있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서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쓰기가 매우 힘들다는 걸 글을 쓰며 깨달았다. 흔한 비유이긴 하지만, 그림자가 있어야 빛이 더욱 밝게 빛나듯이 싫어하는 것이 있어야 좋아하는 것을 더 격렬하게 좋아할 수 있는 것 같다. 탐탁지 않은 선택지를 하나둘 지워나가며 선택을 손쉽게 만들듯이, 자신이 싫어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궁극적으로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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