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을 먹느냐 마느냐의 기준으로 보면 내 인생은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시기는 스무 살 이전. 천재지변이 일어난 게 아닌 이상 하루 일과는 반드시 식사로 시작해야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식욕이 별로 없었고 특히 아침 시간에는 밥보다 잠을 택하고 싶었으나, 다른 건 몰라도 식사에 있어서는 한치의 물러섬도 없었던 부모님을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엄마는 내가 아침을 거르고 학교에 간다면 등교 도중 쓰러져 버리기라도 할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나는 꾸벅꾸벅 졸며 간신히 밥그릇을 비운 뒤에야 식탁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느라 매일 새벽 5시에 기상하던 고등학생 때도 아침 식사의 의무는 고스란히 이어졌다. 엄마는 항상 나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했고, 이전보다 좀 더 철이 든 나는 별 투정 없이 일어나 밥상 앞에 앉았다. 잠 덜 깬 새벽에 목구멍으로 음식을 넘기는 게 가끔은 너무 힘들었지만 지난 십여 년간의 아침밥 조기 교육으로 단련된 위장은 그 모든 밥알을 무사히 소화해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지난 후, 어떻게 매번 그 이른 시간에 일어나 요리를 해줄 수 있었느냐고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매일 아침 자식에게 따뜻한 밥을 먹인 일이 당신 평생 가장 큰 자랑거리 중 하나라고, 무언가 많이 생략된 듯한 문장으로 무심히 대답했다. 생각해보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누군가를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을까 싶다. 엄마는 늘 밖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돌이켜보면 신기하게도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만은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아마도 따뜻한 아침밥 덕분이었을까?
두 번째 시기는 스무 살 이후,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 이후로 찾아온 두 번째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솔직히 이 때는 제대로 된 아침밥을 먹은 적이 거의 없다. 생활 패턴은 한껏 불규칙해졌고,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식사 정도는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데에 부모님과 나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오전 수업이 있는 날이면 커피 한 잔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했고, 아르바이트와 시험 준비 등으로 바쁘면 점심은 거르거나 대충 먹었으며, 해가 지고 나면 술과 함께 비로소 첫 끼를 먹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요약하자면 이 시기의 나는 미래의 건강을 끌어다가 길거리에 흥청망청 뿌리고 다닌 거다. 당시의 나는 내 몸에 대해 무지해도 너무 무지했으나, 고삐 풀린 대학생에게 건강은 우선순위의 저 뒤쯤으로 밀려나 버리기가 쉬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된 나는 직감적으로 “이대로는 오래 못 버틴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안 좋은 생활 습관들을 버리고 비로소 내 몸과 친해지기까지는 그로부터 몇 년이 더 걸렸다. 그렇게 해서 세 번째 시기인 요즘. 나는 각종 식사 대용 식품을 부지런히 사무실로 사다 나르고, 아침에 먹으면 좋을 당분이 적은 음식을 검색한 뒤 장바구니에 담고, 영양제를 사 모으고, 운동을 한 뒤에는 근육이 0.1g이라도 빠졌을까 봐 단백질 식품을 목숨처럼 챙겨 먹는다. 의무와 책임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그걸 감당하는 동시에 친절함도 잃지 않으려면 우선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체력은 밥을 잘 챙겨 먹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함께 사는 룸메이트가 간단한 아침 식사를 차려놓고 나간다. 나보다 일찍 출근하는 날에 본인의 식사를 준비하면서 내 몫을 남겨두는 것이다. (그녀 역시 아침밥에 진심이다.) 오늘 아침엔 룸메이트가 식탁 위에 올려두고 간 가지 구이를 집어 먹다가 남이 아무런 대가 없이 차려주는 밥을 먹는 게 얼마만인지 생각했고, 그게 이렇게까지 행복한 기분이 들게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먹을 음식이 준비되어 있다는 건 정말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
그러니까 모든 것은 밥에서 출발한다. 정확히는 그 밥 한 공기에 담긴 정성과 사랑. 직접 요리를 해 누군가를, 혹은 스스로를 먹인다는 건 인간의 손과 마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큰 행복 중 하나인 듯하다. 제대로 된 식사는 위장의 허기뿐 아니라 마음의 허기도 달랜다. 약간 식은 룸메이트의 가지 구이를 삼키며,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달게 받아 삼켰던 수많은 호의와 사랑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