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목을 읽었다면 허리 펴고 기지개 한 번
전자책 리더기를 산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비좁은 월세집에 종이책을 보관할 만한 공간이 부족해서, 그리고 누운 상태에서도 팔 아플 일 없이 편하게 책을 읽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주고 구매한 전자책 리더기는 다행히 구석에 처박히거나 중고 마켓에 팔려나가는 일 없이 잘 쓰이고 있지만, "편히" 책을 읽는다는 목적은 어딘가 좀 애매해진 구석이 있다. 어젯밤에는 침대에 누운 채로 전자책을 읽으며 오 분마다 몸을 뒤척였다. 어깨와 목이 편안하면서도 따뜻한 이불속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최고의 자세를 찾기 위함이었으나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팔의 각도가 완벽하면 조명을 등지게 되어 화면이 어둡게 보였고, 반대로 화면이 잘 보이면 손목의 각도가 불편해 자꾸만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각 상황에 맞는 최선의 자세만 찾아도 인생을 좀 더 잘 살 수 있다고, 감히 단언해 본다. 누워 있을 때는 어딘가에 쥐가 나지 않고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자세를, 친구와 대화할 때는 상대방 쪽으로 몸을 약간 기울이는 경청의 자세를, 중요한 자리에서는 허리를 곧게 펴고 두 손은 주목을 끌지 않도록 얌전히 내려두는 자세를 취한다. 게으른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자아를 갈아 끼우며 경청하는 친구도 되었다가, 든든한 선배도 되었다가, 예의 바른 아랫사람도 될 수 있는 것은 다년간의 노력을 통해 체화한 이 몸가짐들 덕분이다. 온갖 사소한 자세들로 가득한 그 목록은 나이를 먹을수록 계속해서 추가되어 무의식중에 튀어나오곤 한다. 참고로 가장 편하게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자세는 아직 연구 중이라 목록에 추가되지 못했다.
몇 년째 필라테스 수업을 받고 있다. 평소 몸 여기저기서 느껴졌던 통증은 신기하게도 운동을 하고 나면 괜찮아진다. 통증에 대해 선생님께 물으면 대답은 항상 똑같다. 회원님은 자세가 안 좋아요! 걸을 땐 엉덩이 근육을 잘 사용하지 않고 터덜터덜 걸으시죠? 일할 땐 보나 마나 거북목일 거고, 심지어는 방금 그 질문을 할 때도 골반이 약간 삐딱했어요!…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딱히 항변하진 않지만 조금 억울하긴 하다. 어째서 즐겁고 행복한 것들은 대체로 건강에 나쁜 것인가. 내가 느끼기에 편한 자세와 건강한 몸을 위한 자세는 왜 서로 대척점에 있는가.
자세가 곧은 사람을 줄곧 동경해 왔다. 나의 굽은 목과 허리는 평생을 가도 고칠 수 없는 특성인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허리가 곧고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리지 않는 사람들은 애초에 그런 모양으로 타고난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각종 운동을 통해 체형을 교정하다 보니, 바른 자세를 갖기 위해서는 그냥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된다는 걸 깨닫게 됐다. 반듯한 목과 허리는 하늘에서 점지해준 재능이 아니고 오히려 태도의 영역에 해당한다는 것, 그러므로 끊임없이 의식하며 노력해야만 유지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요즘은 자세가 꼿꼿하고 눈빛이 반짝이는 할머니가 된 내 모습을 자주 상상한다. 방금 이 문장을 쓰면서, 춥다는 핑계로 한껏 웅크리고 있던 무릎을 가지런히 의자 밑에 내려놓고 공연히 어깨를 한 번 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런 모습으로 나이들 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