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쇼트 슬리퍼(Short Sleeper)'들은 남들보다 잠을 덜 자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중 누군가는 ‘잠을 네 시간 이상 자는 것은 사치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는데, 그에 따르면 나는 사치스럽기로는 상위 1% 안에 드는 ‘헤비 슬리퍼'다. 하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좀 사치스러우면 어떻단 말인가.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건 재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잠을 많이 자고 싶다!’라고 간절히 바란 적도 없지만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이쪽 분야에서는 재능을 타고난 덕분에 노력하지 않아도 결과가 저절로 따라온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쇼트 슬리퍼’가 되고 싶은 것 또한 나의 오랜 숙원이었다. 아무 일정이 없는 주말에 눈을 떴는데 해를 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깨달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거라고 생각한다. '개운한 게으름뱅이' 상태로 하루를 시작할 때 약간의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눈을 감고 있는 동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시간을 통째로 허비한 것처럼 느껴지기가 쉽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온갖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경쟁자는 나를 앞서가고, 하여튼 중요한 일들을 죄다 놓친 것만 같은 조급함이 밀려온다. 내가 타고난 '쇼트 슬리퍼'였다면 이런 조급함을 느끼지 않아도 될 텐데.
검색창에 ‘쇼트 슬리퍼'를 검색하면 ‘쇼트 슬리퍼 되는 법'이 연관검색어로 뜨는 걸 보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세상이 어찌나 바쁘게 돌아가는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하고 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수면의 질에 대한 관심 또한 이전에 비해 높아졌다고 느낀다. 잠잘 때도 스마트 워치를 착용하고 수면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먹고 햇볕을 자주 보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효율성의 민족답게, 남들보다 적게 자는 와중에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피로를 떨쳐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TV와 잡지, 각종 인터넷 뉴스에는 완벽한 수면을 위한 정보가 차고 넘친다.
무엇이든 숫자로 확인받고 또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현대인인 나도 거의 매일 스마트워치를 차고 잠든다. 운이 좋게도 수면의 질과 양 모두 월등한 편이다. 물론 그건 몸으로도 느낄 수 있지만, 스마트폰의 수면 어플이 구체적인 숫자로 확인시켜주면 왠지 모르게 더 기분이 좋다. 어플이 내 수면에 100점을 준 날엔 짜릿한 성취감까지 느껴진다. 100점짜리 수면을 했으니 왠지 좀 덜 피곤한 것 같고, 머리가 좀 맑은 것도 같고, 거의 항상 건조한 상태인 눈도 그날만큼은 촉촉한 것 같다.
높은 수면 점수를 확인받는 것은 내가 객관적으로 잠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는 걸 확인받는 일이기도 하다. 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열두 시간쯤 깨지 않고 자는 건 내게 일도 아니다. 잠은 자면 잘수록 늘어난다는데, 나는 이미 늘어날 대로 늘어난 고무줄 같은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수면도 때로는 독이 된다. 원래 잠이 많다고는 하지만 누워 있는 시간이 너무 길면 만사가 귀찮아지기도 하고 허리도 아프다. 잠을 몰아서 자는 좋지 않은 습관이 생기기도 쉽다. 휴일 오전에 “아직 좀 덜 잔 것 같은데, 피곤한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미적거리는 순간 월등히 높은 수면 점수가 내 이성을 흔들어 깨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니 얼른 일어나라고. 그야말로 기술의 순기능이다. 매일매일 많지도 적지도 않게, 딱 적당히 자는 게 아직도 내겐 제일 어렵다. 뭐든지 살짝 부족하다 싶을 때가 가장 적절한 상태라는 말은 잠자기에도 잘 들어맞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