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삶, 이대로 괜찮은가?
나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햇살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제대로 된 그릇에 음식을 담고 아름다운 잔에 차나 커피를 마시면 스스로를 대접하는 기분이 든다. 그것이 손수 정성껏 만든 요리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나는 요리를 즐기지 않는 대신에, 신선한 원두를 사서 커피를 끓이고 좋아하는 머그컵에 따라 마시는 것으로 스스로를 대접하곤 한다. 커피를 다 마신 후에도 한동안은 온 집안이 커피 향으로 가득 물들어서 기분이 좋다. 하지만 나는 딱히 아침형 인간이 아닌 직장인이므로, 그간 공들여 내려 마시는 커피란 주말 이틀 동안에나 가능한 사치일 뿐이었다. ’마지막_진짜 마지막_진짜 최종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 씻고 준비하기도 바쁜 평일 아침 시간에 향기로운 커피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핸드드립 커피는 주말에만 즐기는 것으로 하고, 평일 아침에는 숨 가쁘게 출근하는 일상을 반복하길 여러 해가 지났다. 보통은 사무실에 구비되어 있는 캡슐 커피머신을 이용해 커피를 수혈하거나 시간이 좀 더 있는 날에는 아침 일찍 여는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러 커피를 테이크아웃하곤 했다.
시간이 유독 느리게 흐르던 어느 수요일.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돌돌 말린 컵 윗부분을 이로 짓씹다가, 문득 내가 머그컵에 담긴 신선한 커피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다른 이의 손에서 대신 탄생한 프랜차이즈 커피가 아니라 온전히 내 취향으로 진하게 내려진, 온 집안을 물들이도록 향기로운, 내가 좋아하는 머그컵에 담긴 그 커피 말이다.
나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햇살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한 손에는 종이컵을, 한 손에는 마우스를 쥐고 무심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던 오전 10시 30분. 불현듯 떠오른 그 질문에 나는 조금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백반집에서의 전투적인 식사 후 습관적으로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뭐 나쁘진 않지만, 나의 하루 안에 온전히 나 자신의 취향으로 통제할 수 있는 무언가가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한 손에는 갈색 머그컵에 담긴 뜨끈한 커피 한 잔을 든 채로, 다른 한 손으로는 고양이를 쓰다듬는 일 같은 것. 종이컵과 마우스 말고.
출근시간 한 시간 전에 일어나기 시작한 건 그런 사소한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헐레벌떡 일어나 기계로 내린 커피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싶지 않아서, 살아있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일을 십 분이라도 더 하고 싶어서. (비록 고양이는 없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아침을 여는 건 생각보다 더 상쾌한 기분이다. 갓 끓인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이 순간만큼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직장인이 아니라 무슨 대단한 창작 루틴을 가진 작가라도 된 것 같다. 그런 기분을 느끼는 방법이 너무나 쉽고 간단해서 우스울 정도다. 나만의 평화로운 아침 시간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잠들기 직전에도 조금 더 홀가분하다. 사무실에서 종이컵을 거의 쓰지 않게 된 건 덤이다. 쓸데없이 복잡하게 살고 자주 슬퍼하는 듯 보여도, 가끔은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어이없이 행복해질 수도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