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의 미학
고깃집, 뷔페, 술집, 여행지에서의 혼술 등 혼자 놀기의 최고 레벨까지 모두 격파하여 이제는 혼밥이라는 말도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나지만, 개구리에게도 올챙이 시절은 있는 법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난도가 높았던 혼밥은 학교 급식실이었다. 요즘에야 서로 신경 안 쓰는 분위기가 되었다곤 하나 아직도 사회 전반에 은은하게 깔려 있는 혼밥 공포증의 분위기는 아마 다 같이 공유하고 있는 그 시절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학창 시절 숫기 없는 아이였던 나는 친한 친구가 결석이라도 하면 혼자 점심 먹을 생각에 전날 저녁부터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 시절에는 '같이 밥 먹는 사이'가 '같이 노는 무리'를 뜻하는 절대불변의 정의 같은 거였다. 또래 아이들의 평가에 예민하고 평범함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던 중학생에게 혼밥이란 아무래도 맘을 졸이게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막상 점심시간이 되면 얼추 친한 다른 무리와 어울려 밥을 먹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오전 내내 불안한 마음은 통 사라지지 않았다. 사춘기 때는 이런 사소한 걱정들을 백만 개씩 달고 살아서 항상 발걸음이 무거웠다.
성인이 된 이후로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혼밥은 조금 시시한 일이 되었다. 배식받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거나 다수의 결정에 따르는 게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해 고심해서 정한 메뉴로 식사하는 기쁨도 알게 됐다. 사실 처음에는 어딘가 쑥스럽고 멋쩍은 기분에 후다닥 처리하듯 혼밥을 하곤 했으나 좀 더 숙달이 되고 나서는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다.
함께 하는 식사와 혼밥은 완전히 결이 다른 행위다. "밥 한 번 먹자"라고 하는 게 정말 허기만 채우기 위한 제안은 아니니까. 혼밥이 불편했던 시절과 누군가와 함께 밥 먹는 게 불편했던 시절을 모두 지나고 나니 이제는 어느 것도 상관없게 되었다. 굳이 선호하는 걸 꼽자면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메뉴, 그리고 어울리는 술 한 잔이 있는 식탁이겠으나 어색한 사람과 단 둘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메뉴를 먹게 되어도 상관은 없다. 먹고 싶은 메뉴는 다음에 먹으면 되고, 낯설었던 사람과 영영 어색한 사이로 남지는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