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 Apr 17. 2023

왜 Chicken은 Chicken일까

닭을 키우기로 했습니다

2021년 겨울 가족과 함께 부화기를 만들었다. 작은 스티로폼 박스 속에 넣은 백봉오골계 열 알, 오골계 네 알, 세라마알 네 알. 상자 속을 보기 위해 CD케이스로 만든 투명한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봤다. 백열전구를 켜자 차갑던 박스 속이 후끈하게 달아올라 40도에 가까워졌다. 낮이고 밤이고 따스한 주황빛이 온도에 따라 켜지고 꺼졌다. 본래는 암탉이 스스로 알을 굴려주고 시중에 판매되는 부화기도 그 원리를 따라 전란을 해주지만, 우리는 직접 만든 박스라 시간에 맞춰 알을 돌려주고 습도를 맞춰주기 위해 분무기를 뿌리거나 문을 열어줘야 했다. 전란 간격은 시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날은 밤이나 꼭두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서로 헷갈리지 않기 위해 전란일지를 만들어 알을 돌린 횟수와 시간을 작성했다. 


그렇게 잠을 자다 깨기를 반복한 20일째, 반신반의하던 알 하나가 톡 소리를 내며 깨지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미약하게 삐약삐약 소리가 들렸지만 실제로 알이 부화하려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들뜬 맘과 동시에 불안한 맘을 안고 부화기 안을 들여다봤다. 알들이 곧 태어날 듯 좌우로 흔들렸다. 밤을 꼬박 새우며 기다렸지만 본격적으로 파각이 시작된 건 다음날 오전부터였다. 깨어나는 순간을 보기 위해 기다리던 나는 출근 준비도 위태로울 때까지 미루다, 결국 가족에게 맡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하게 버스에 올라타 회사로 향하던 중 가족으로부터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파각을 마치고 태어나 우는 병아리 동영상이었다. 파각 과정이 고되었는지 병아리는 젖은 날개를 퍼덕이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버스에 서서 한참을 돌려봤다.


잇따라 알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각자의 문제로 태어나지 못한 알이나, 파각 과정에서 죽어버린 병아리도 있었다. 부화기 내에서는 그토록 따뜻하던 알이 밖으로 꺼내자 차갑게 식었다. 손에 쥐고 있자니 별생각이 들지 않던 달걀이 처음으로 무겁게 느껴졌다. 부화하지 못한 알들은 묻어줬다. 



부화기는 변신을 거쳐 육추기가 되었다. 병아리들은 배가 고프거나 추우면 삐약삐약 하고 몹시 울다가 밥을 먹으면 바닥에 엎드려 자느라 목과 다리를 축 뻗었다. 꼭 푸딩이 녹은 것처럼 폭신하게 내려앉은 모습을 밖에서 한참 바라보니 초등학교 앞에서 판매하던 병아리를 데려와 키우던 시절이 떠올랐다. 병아리에 대해 알지 못하고 데려와 삐약대는 소리는 당연하다 여겼는데, 적정 온도가 유지되고 배가 불러지면 울지 않았다. 그 말은 당시 내가 키운다고 말하던 병아리들은 배가 고프거나 추위 때문에 힘겨워했던 탓이었겠구나 싶어져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병아리들은 잠을 자느라 여념이 없다.


병아리들은 하루 2~3시간 간격으로 밥을 먹었다. 마침 아기를 낳은 친구가 자신도 2~3시간 간격으로 분유와 모유를 먹이느라 잠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키우기 쉽지 않구나 하고 서로 웃었다. 나는 출근 전과 퇴근 후를 맡았고 다른 시간은 가족이 도맡아 병아리를 돌봤다. 가족은 병아리가 먹어야 하는 음식, 필요한 영양소, 적정 온도 등 많은 연구를 거듭하며 내게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나는 조언에 따라 병아리를 돌볼 뿐이었지만, 반려동물로 채택받지 못한 세월이 길었던 닭들에 대한 정보를 가족은 외국 논문, 국내 논문, 도서관 등을 뒤져 찾아왔다. 이런 정성 덕분일까 발가락에 돋은 털가닥 수로 겨우 구분하던 병아리 7마리의 머리에 어느덧 벼슬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어떤 녀석은 몸집이 크고 어떤 녀석은 벼슬이 컸다. 목욕을 좋아해서 모래에서 나오지 않아 다른 병아리들의 타박을 받는 아이도 있었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똑바로 마주 보는 도전적인 눈빛의 병아리도 있었다. 알에서 깨어난 것만으로도 신기한데 성격도 제각각이었다. 병아리도 개체에 따라 성격이 다를 게 당연한데, 그 당연한 사실을 생각지 못했던 나는 병아리들을 한참 들여다봤다. 머리에 벼슬도 돋아나고 소리도 내면서 뛰어다니다는 모습이 이상해서 손으로 자꾸만 이마를 쓸어봤다. 닭의 벼슬은 사람의 맨 살갗처럼 보드랍고 가녀리다. 그 사실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병아리의 체온은 평균 40도다. 손에 들어 올리면 보슬한 털과 함께 따끈한 발바닥이 만져진다. 녀석들을 육추기에서 꺼내면 내 무릎이나 어깨로 올라왔다. 처음 고양이를 만질 때 왜 이렇게 뜨겁냐고 놀랐었는데, 병아리들은 발로 불도장을 찍을 듯 뜨거웠다. 그 후끈한 열기가 과연 살아있구나 싶어 여기저기 몸을 밟도록 내버려 두었다. 


사회생활 중에 병아리를 부화시켜서 키우고 있다고 말해도 종종 백숙이나 치킨을 먹자는 제의를 해오거나 먹으라는 말을 들었다. 보통 알이나 고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키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나 또한 알을 얻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부화시키기 전까지 암탉이 달걀을 낳는 걸 고대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녀석들의 살갗과 털을 만지다 보니 반려가 되어버렸다. 내 기준에서는 알까지만 허용되었다. 제안을 거절하면 순수한 물음이 돌아왔다. 

"그럼 돼지나 소는 괜찮아요?"

알량하게도 아직 돼지나 소는 과식, 남용, 낭비하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가 반려로 닭을 삼았다고 말해도 식탁 위에선 아무렇지 않게 치킨이나 삼계탕 등이 화제에 올랐다. 나도 그들도 서로에게 강요할 수 없는 문제인 데다, 나 또한 닭을 반려로 들이기 전까진 식사로 삼았던 사람이니 납득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한 번은 사내 규정으로 복날 식사를 홀로 거부할 수 없어 그 자리에 앉게 됐다. 무의미하게 버려질 바에는 어떻게든 삼키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식사를 이어가다 결국 구역질이 올라왔다. 보신탕 문제로 개식용에 대한 논의는 팽팽하다는 걸 인지하지만 닭은 아직 그 대열에 끼지 못했다.  

한 사원이 삼계탕 속의 고기를 들어 올리며 "키우는 닭이 이 정도 크기 아니에요?"라는 무례한 말을 해도 침묵하는 것 외에는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퇴근 후 버스에 올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묘한 죄책감과 함께 의문이 떠올랐다. 왜 소는 cow와 beef, 돼지는 pig와 pork가 있는데 닭은 모두 chicken일까. 물론 rooster나 hen이 있지만, 그 단어들은 까마득할 정도로 낯설게 느껴졌다. 혹은 가축이기에 지칭하는 용어가 많아진 걸까. 홀로 추측하다 닭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chicken을 쳤다. 키우는 방법을 보기 전에 먹는 영상을 수십 건 지나가야 했다.


그렇게 chicken이라는 종으로 자라난 녀석들이 어엿한 닭이 되었다. 부화한 오골계 한 마리는 암탉, 백봉오골계 여섯 마리는 수탉으로 몹시 건강하고 성격도 각각이다. 지구라는 생태계 속 한국, 작은 지역 내에 존재하는 건물 중 하나, 그 속에서 동고동락하던 어린 닭 7마리와 가족은 서로에게 반려가 되었다. 어쩌면 치킨이란 단어가 누군가에겐 가족인 사람이 어딘가에 또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자연스레 손에 얹어진 닭의 체온이 떠오른다. 가끔은 생각한다. 개가 dog인 것처럼, 고양이가 cat인 것처럼, 어쩌면 닭도 그래서 chicken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