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손재주가 없는 편이다. 유전자라도 부족하면 모르겠는데, 혈육은 어릴 적부터 대회에 나가는 족족 상을 타왔다. 요리도 곧잘 했고, 운동, 피아노 등 재주가 많았다. 내게도 어떤 재능이 있을까 싶어서 피아노도 따라 해보고, 그림과 운동도 몇 년 정도 해봤지만 결과는 없었다. 삶을 소거 방식으로 받아들이면 편했다. 일단 피를 보지 못하니까 의료계는 힘들고, 운동은 승부욕이 부족해서 어렵고, 부끄러움이 많아서 사람들 앞에 서는 업은 두려웠다. 그렇게 지우고 지워서 남은 게 글이었다. 그러니까 내게 글은 유일하게 남은 수단이자 목적이었다.
나는 여느 아이들처럼 뛰어다니길 좋아하지도 않았고, 조용한 환경을 선호했다. 키가 커서 늘 반에서 뒷자리에 배정되었다. 키가 크다는 특징 외에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내가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이 글이었다. 나는 교내 백일장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늘 뒷자리 구석에서 홀로 있던 내가 호명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만 내 존재가 느껴졌다. 그 잠깐의 인정이 좋아서 쓰기 시작한 일이 어느덧 20대 후반까지 이르렀다.
어느 순간에는 불타다가 미적지근한 관계를 유지하는 연인처럼, 내게 글이 그랬다. 바짝 붙었다가도 쓰는 순간 좌절이 반복되었다. 빈장을 채워나가는 기쁨과 달리 번번이 낙방하는 괴로움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 멀어지기로 결심했다. 당장 집안에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회사로 향했다. 몇 사람이 붙잡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시험하고 싶었다. 글이라는 환경에서 멀어져도, 열정이 있다면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쓰기 위해서는 글에서 멀어져야 했다. 내게는 경험이 필요했다.
그렇게 돌아서 6년이 흘렀다. 제대로 써낸 글은 없었다. 너무 큰 꿈은 마주하기 두려웠다. 짝사랑처럼 그럴듯한 가능성으로 남겨두는 편이 변명하기 좋았다. 회사에 몰두했고, 잦은 야근을 끝내고 금요일이 되면 근처 빵집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에 유일하게 불이 켜진 곳이었다. 오전 7시부터 저녁까지 항상 주황빛이 창에서 도로로 스몄다. 빵은 많이 사지 않았다. 내가 사는 종류는 정해져 있었다. 밤식빵, 애플파이, 에그타르트, 바게트였다. 가끔 하나씩 새로운 메뉴를 도전했다. 나는 그 재미로 일주일을 버텼다.
나는 빵보다는 그 순간이 좋았다. 금요일 퇴근길에 비추던 주황빛에 시선이 쏠렸다. 그건 내가 글에 위안을 받던 순간과 닮아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간 뒤로는 빵을 먹기 어려워졌다. 뭐든 내 손으로 일굴 힘을 기르고 싶어서 시골로 갔으니 빵도 직접 굽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럭저럭 쉽다는 쿠키마저도 처음에는 실패했다. 너무 달거나, 모양이 별로거나, 물러져서 퍼졌다. 레시피대로 해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손재주가 그 정도로 없으면 포기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 오기가 생겼다. 글을 포기한 뒤로 처음으로 몰두한 순간이었다.
원하는 쿠키를 만들기 위해 제멋대로 도전한 세월이 6개월이 되었다. 전에는 계속 맛이 별로라던 가족들이 처음으로 '맛있다'라고 했다. 쿠키를 만들고 나니까 베이글을 굽고 싶어졌다. 건강을 생각해서 유기농 통밀을 구매했다. 오븐이 없어서 에어프라이어로 도전했다. 유튜브 영상이나 블로그를 샅샅이 뒤져서 공부했지만 늘 단단한 돌덩이가 완성됐다. 가족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너무 딱딱해서 이가 아팠다. 빵에는 생각보다 많은 실패 요인이 존재했다. 반죽 부족, 발효 부족, 과발효, 굽는 온도, 시간 등 여러 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했다. 그 요인을 알아내기 위해 빵을 계속 굽다 보니 어느 날은 새벽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가족들이 결국 학원을 추천했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우겼지만 결국 학원에 갔다. 나는 내가 빵을 만들게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빵 만드는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줄 몰랐다. 글을 포기한 후로 처음 겪는 마음이었다. 나는 먹는 것보다는 빵이 발효되는 냄새가 좋았다. 생물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모양이 재밌어서 계속 빵을 만들고 싶었다. 성형을 끝내도 2차 발효와 굽기가 끝날 때까지는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점도 좋았다. 결국 굽기까지 완전히 끝내야 내가 원하던 모양과 맛을 구현했는지 알 수 있었다. 후텁한 더위에도 오븐 앞에 선 순간이 좋았다. 그 기다림이 좋았다. 글을 써내던 순간의 설렘과도 닮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마치 내가 처음으로 호명된 순간처럼 벅차올랐다.
정말 이상하게도 글에서 도망쳐서 오히려 글에 대한 설렘이 되살아났다. 연관 없어 보이는 빵에서 글을 연결시킬 만큼 들떴다. 새로운 도전이 즐거워서 시험을 치러 가는 길도 설렜다. 그러니까, 나는 6년 만에 처음으로 뭔가를 원하고 있었다. 글과 너무 바싹 붙어있어서 잊어버렸던 마음이 그제야 돌아왔다. 자격증이라는 목표를 두고 달려온 시간을 지금이라도 조금씩 풀어가기 위해 나는 이곳으로 왔다. 그 과정을 조금이라도 새겨가려는 마음으로 지금 다시 시작점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