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굽는 시간
우유 식빵이 출시되기 전까지는 모든 식빵에 당연히 우유가 들어가는 줄 알았다. 치즈스틱이지만 '자연치즈'라고 홍보를 하면 그 전의 치즈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충격과 비슷했다. 나는 항상 '진짜' 음식을 찾고 싶었다. 언제부터 이런 열망이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집착적으로 성분표를 분석하는 성향이 있었고, 생각보다 세상에는 음식이 별로 없다는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진짜'가 무엇인지 모호해졌다. 건강과 관련해서도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인 경우가 많아서 명확하게 자연식이거나 진짜라고 좋지만은 않았다. 이런 애매함에 나는 되려 매료되었다.
식재료에 대한 고집으로 직접 작물을 재배하고 닭까지 키우게 되었다. 항생제가 들어가지 않고, 닭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의 밭에서의 3년은 그런 실험의 연속이었다. 전회사에 대한 반감 덕분이었다. 특정 회사를 다니는 동안 계속 배달 음식에 의존해야 했다. 만성피로에 시달릴 때도 많았고 급격한 체중 증가나 감소, 혈당문제를 앓았다. 그때부터 베란다에서 식물을 재배하던 버릇이 어느덧 밭으로 확장되었다. 밭으로 가게 된 계기는 닭도 있지만, 이런 이유도 있었다. 물론 닭은 먹지 않고 달걀만 얻고 있다.
빵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도 '진짜 빵'을 알고 싶어서였다. 첨가제 없이 건강한 빵을 어느 정도까지 만들 수 있을지 궁금했다. 물론 취지는 좀 달라졌고, 연습 과정에서 이루지 못한 부분도 많지만, 홀로 집에서 연구하며 알게 된 부분이 있다면 결국 통밀이라고 모두 건강하지 않고, 빵이라는 '본질'을 고려하면 완전한 통밀은 빵과는 되려 멀어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프리미엄 건강빵이 많아지는 추세긴 하지만, 아무래도 직접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나는 항상 진짜나 근원에 집착했다. 일곱 살 때부터 자유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생활과 아주 밀접한 호기심이었는데, 내가 만약 돈을 벌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까지 삶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만약 산으로 들어가 홀로 오두막을 짓고 살더라도 결국 국유지나 사유지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벌금이나 세금을 내야 했다. 보호일 수도 있지만, 망으로부터 완전히 탈주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모호해도 값이 매겨졌다. 꿈도 세상에 드러내는 순간 가치경쟁에 시달렸다. 법, 교육, 자본이라는 테두리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완전한 자유'란 불가능하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음식은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에 내가 갈구하는 자유의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식량을 어딘가에서 구매하지 않고 직접 재배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적어도 사회에서 밀려났을 때 죽음의 공포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재배 이상으로 채집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최종적으로는 <월든>과 비슷한 삶을 항상 고려했다. 취직에서 요구하는 기술은 직접적인 삶과는 꽤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내 기술을 원치 않으면 언제든 생존 위기로 이어진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물로서 가장 기초적인 생존 자체에 대한 지혜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채집하고 재배하는 방식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빵을 포기하면 되지만 나는 해결책을 찾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냥 빵을 아주 좋아하는데 건강하고 맛있게 먹고 싶은 집착이었다. 그러니 비상식빵에 불쾌감을 드러내던 원장님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40분 알람이 울리고 자연스럽게 모두 발효실 앞으로 모였다. 1차 발효 중간 지점에서 펀칭을 가하고 다시 30분 알람을 맞춘 후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빵을 만들고 싶었다. 제대로 된 빵을 알고 싶었다. 만약 판매하더라도 내가 가책을 느끼지 않을 빵을 팔고 싶었다. 어쩌면 그 길을 알려줄 첫 스승이라는 생각에 물끄러미 상대를 바라봤다. 원장님은 오늘도 앞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한쪽 다리를 제 다리에 턱 올리고 집중한 모습이었다. 나도 그 앞에서 책을 펼쳤지만 머리로는 언젠가 배우게 될 호밀빵이나 통밀빵에 대해 생각했다. 일단은 우유, 그 근원이 담긴 식빵부터 만드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