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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씨드 Jun 13. 2022

티셔츠, 지우개, 실뜯개

신축성 있는 편직 원단으로 만드는 모든 편안한 옷들은 일용할 양식과도 같이 긴요한 필수품임과 동시에 초보들을 당황하게 하는 난관을 여럿 품고 있는 시험대이다. 


티셔츠의 특성은 신축성에 있고 바로 그 때문에 편안함을 주지만, 또한 그 때문에 봉제에 일정한 테크닉을 요한다. 그중에서도 네크라인은 티셔츠 봉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로 탄성이 강한 립(rib) 원단을 따로 길게 재단하여 반으로 접어 두 겹으로 만든 다음, 늘려가면서 네크라인에 봉제한다. 재봉하는 이들이 주로 ‘시보리’라고 부르는 이 조각이 깔끔하게 달렸는가 그렇지 못한가가 티셔츠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시보리를 충분히 늘리지 않았거나, 혹은 반대로 너무 심하게 늘렸거나, 봉제선이 삐뚤어졌거나 하면 새 티셔츠 특유의 짱짱함은 물 건너가고, 새옷을 만들어놔도 새옷 같지 않은 최악의 결과가 나타나고 만다.


2019년 5월에 처음으로 티셔츠 만들기를 시도했을 때, 의외로 단정하게 나온 네크라인에 나는 굳이 만족감과 우쭐함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시보리로 쓰이는 원단에 따라 난이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작 한 달 뒤 탄성이 덜한 원단으로 네크라인을 봉제했을 때 참담한 결과를 마주하고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완전히 기가 죽어버린 나는 시보리 방법을 피하고 또 하나의 대안적인 방법인 바인딩을 연습해보았지만 아무래도 티셔츠의 맛은 네크라인에 예쁘게 안착된 시보리에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깔끔한 시보리 네크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기까지는 1년이 걸렸다. 


티셔츠 네크 연습 (2019. 6.)
바인딩으로 처리한 네크와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시보리 네크 (2019. 가을)
훨씬 나아진 티셔츠 네크 (2021. 4.)


하지만 난관은 시보리에만 있지 않았다. 22년 1월에 보라색 스웨트 셔츠 두 벌을 만들었을 때 계속된 끝없는 삽질은 풀어놓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대략의 사건을 시간순으로 정리해보면 이러하다.


크게 입을 오버핏 티셔츠 2벌을 뽑을 계획으로 2야드의 원단을 주문함.

트렌드에 맞게 손등을 덮는 소매 길이 확보를 위해 빠듯하게 재단하느라 천신만고를 겪음.

분량이 아슬아슬하게 모자라서 눈에 잘 안 띄는 부분(네크라인과 소맷부리 밴드)의 덧댐 천은 두 조각으로 재단해 이어 붙임.

어느 정도 모양이 나왔을 때 입어보니 소매가 손등을 덮는 정도가 아니라 승무 의상 수준이었으므로 눈물을 머금고 잘라냄.


소매 길이 확보를 위해 다른 부분을 이어 붙이는 수고를 무릅썼는데 소매가 너무 길어 잘라내야 할 때, 우리는 그걸 삽질이라 부른다. 잘은 모르지만 직업 분야마다 '삽질'에 해당하는 전문용어가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아마추어 바느질꾼들의 용어로는 '뜯박'이라는 것이 있다. 박은 것을 뜯고 다시 박는다는 뜻이다. 


몇 년 전에 스커트를 만들 때 겪은 뜯박은 이러했다.


잘 맞게 입기 위해 허리에 고무 밴드를 넣지 않고 콘실 지퍼(겉에서 보이지 않는 스커트 및 원피스용 지퍼)를 달기로 함.

그런데 내 허리는 표준 사이즈보다 굵으므로 패턴(옷본)에서 허리를 늘려 수정함.

난생처음 콘실 지퍼를 다느라고 뜯박을 거듭함.

입어보니 허리가 너무 커서 결국 눈물을 머금고 허리 안쪽에 고무 밴드를 덧대 박음.


그 당시에는 치수상으로 말이 안 되는 이런 모순이 왜 초래되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안다. 보통 스커트 허리선은 바이어스(사선) 방향으로 놓이게 되는데, 바이어스 방향으로 재단된 천은 신축성이 좋아 잘 늘어나게 된다. 절대로 엉덩이가 통과할 수 없을 것 같은 허리 치수를 가진 플레어스커트를 지퍼 없이도 입고 벗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여곡절과는 별도로 완성 전부터 벌써 예쁘고 난리였던 보라색 스웨트 셔츠에는 직접 주문 제작한 전사지로 ‘habilis’ 문구를 찍어 넣었다. (2022. 1.)
‘확찐자’가 된 지금까지도 잘 입고 있는 항아리 스커트. 그날의 삽질은 새옹지마가 되었다. (2019. 3.)


나의 스웨트 셔츠와 스커트는 어쨌든 해피엔딩을 맞았지만, 무서운 것은, 보통 한 번에 끝나지 않는 뜯박이 무한히 반복될 것 같은 예감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이다. 뭔가 일이 술술 풀려 산뜻한 기분으로 작업을 계속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싸한 느낌이 온다. 무의식이 보내는 불길한 징조다. 불안감을 다스리며 애써 객관적 관점을 장착하고 작업물을 검토한다. 그리고 치명적 실수를 발견한다. 


초보부터 고수까지 수많은 바느질꾼들이 교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온다. 뜯박은 기본이다. 작은 실수들은 귀여운 편에 속한다. 그러나 도저히 수습할 수 없어 보이는 굵직한 것들이 있다. 심혈을 기울여 안감까지 넣은 재킷 소매에 트임 방향이 반대로 만들어진 것을 깨달았을 때, 또는 심지어 오른 소매와 왼 소매를 바꿔 단 것을 알았을 때, 손이 많이 간 외투에 최종적으로 단추 구멍을 내는 단계에서 힘 조절이 잘못되어 단추 구멍이 쭉 찢어져버렸을 때, 작업자의 머릿속은 순간적으로 새하얘진다.


나의 바느질 친구들은 이런 때 아무 말 없이 작업물을 팽개치고 조용히 재봉 방 문을 닫고서 커뮤니티 포럼에 접속한다. 대번에 상황을 파악하고 이것이 얼마나 참담한 상태인지 뼈저리게 공감하며 아낌없는 위로를 퍼부어주는 바느질 친구들에게 절망감을 토로한다. 그리고 짧으면 한 나절, 길면 몇 주 동안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서 완성작을 보여준다! 현명하게 처리된 땜빵으로, 혹은 비록 완벽하진 못해도 제대로 마스터한 스킬로 꼼꼼하게 마무리된 완성작을. 


꼼수에 능한 나는 패턴을 딱 봤을 때 내 실력으로 도저히 예쁘게 안 나오겠다 판단되면 아예 시작을 안 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부지런한 바느질 벗들은 그런 거 없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고 이 옷이 필요하다 생각되면 일단 시작해서 막 간다. 하다가 잘못했으면 뜯는다. 한 가지를 해결한 다음 막히면 또 살펴보고 잘못됐으면 또 뜯는다. 뜯박 뜯박 뜯박, 무한 반복으로 매번 완성까지 간다.


직접 패턴을 그려 티셔츠를 만든 적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페이퍼-핏에서 쏘잉핏님이 기초 패턴 강좌를 온라인으로 열고 있을 때였다. 때마침 오버록을 구입한 직후여서, 과제를 하나하나 착실히 하면서 강좌를 따라갔다. 


제도용 모눈 전지를 구입하고, 돌돌 말린 커다란 종이를 펴고 제도자와 제도용 샤프를 무기 삼아 기본 원형에서 출발해 네크라인을 조정하고 소매를 변형하는 일은 놀랍고 흥분되었다. 기본 소매를 래글런 소매로 변형하면서 나는 무수히 많은 선을 그렸고 그 때마다 먼저 그린 선을 지우개로 박박 문질러 지웠다. 쏘잉핏님은 적절하고 아름다운 선을 찾는 일은 공식처럼 완전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패턴에는 그리는 사람의 ‘손맛’이 있다는 것도 일러주었다. 나는 가장 마음에 드는 선을 찾기 위해 무수히 많은 지우개질을 했다. 


처음으로 직접 그려 만들어본 래글런 티셔츠 패턴과 그 패턴으로 만든 스웨트 셔츠 (2019. 5.)


어쩌면 패턴을 그리는 것은 연필보다는 지우개인지도 모른다. 티셔츠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바늘이 아니라 실뜯개인지도 모른다. 해마다 필요한 티셔츠를 얼마든지 괜찮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데 그처럼 많은 수고를 들여가며 티셔츠를 만드는 것은 시간의 낭비일 지도 모른다. 옷을 만들어 입는 일은 결코 기회비용의 측면에서 남는 장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계속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 동네 골목을 지나가다 보면 빨간 고무 다라이나 파란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흙을 채워 상추, 고추, 토마토들을 심어놓은 미니 텃밭을 심심치 않게 마주칠 수 있다. 여러 도시에서 살아보진 못했지만, 얕은 경험으로나마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를 곁다리로 귀띔하자면, 이런 텃밭들은 예를 들어 전주의 신시가지보다 서울의 주택가에서 더 자주 만날 수 있다. 


매년 봄 다시 개장하는 이 고무 다라이 텃밭은 이 골목 할머니들의 모임 장소다.  사진 바깥에 의자 한 개 더 있다. (2022. 6.)


어디선가 봤던 글에서 내게 알려준 대로, 나는 이런 걸 일컬어 도시민들의 ‘농업 본능'이라 부른다. 


이 허접스러워 보이는 텃밭을 왜 일굴까? 조금만 섬세한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답을 알고 있다. 그건 텃밭 가꾸기가 우리에게 매 순간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행위와 결과의 인과관계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면서도 뻔하지 않고 변화무쌍하다. 흙과 식물들은 가끔 수수께끼를 낸다. 잘 풀지 못하면 1년 농사가 망할 수도 있으므로, 긴장감 속에서 그걸 푸는 재미가 쏠쏠하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매번 나의 소소한 행위에 반응하는 걸 지켜보는 것은 수많은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텃밭만 그러할까? 반려동물을 보살피는 일도, 음식을 만드는 일도 그러하다. 집에서 담근 발효 음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매일 관찰해보면 알 수 있다. 보글보글 기포를 올리며 하루가 다르게 들큼한 냄새를 뿜어내는 막걸리는 마치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뜯박을 거듭하는 아마추어 바느질꾼의 옷 만들기도 그와 꼭 같다. 물질을 다루는 일이 우리에게 주는 원초적 풍요로움이 거기에 있다.


거듭된 실수로 천신만고 끝에 완성한, 처음으로 만든 후드 스웨트 셔츠 (2021. 4.)



[이 글은 22년 6월에 발행한 글을 22년 10월에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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