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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씨드 Jun 07. 2022

옥상에서 빨래를 말린 3일간의 기록

팬데믹이 시작되고 세번째 맞는 봄이었다. 집에 머무르는 것이 지루해질 대로 지루해진 22년 봄, 나에게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사건은 우연히 갑작스레 찾아왔다. 어느 일요일, 여느 주말처럼 어머니 댁에서 함께 점심을 준비하고 식사를 하던 중 어쩌다 모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어머니께서 외할머니의 모시옷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고인이 된 외할머니께서, 역시 지금은 고인이 된 나의 아버지에게 아주아주 오래 전에 지어주셨다는 모시옷. 결혼 후 처음으로 장인, 장모님이 계신 먼 곳을 찾아간 사위에게 외할머니께서 손수 지어주셨다는 모시 바지, 저고리, 조끼. 잘 모르고 있었던 이야기여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갑자기 이야기를 멈추시더니 장롱 서랍을 열어보라고 하셨다. 잘 쓰지 않는 옷가지와 생활용 천들이 겹겹이 보관되어 있는 서랍 바닥 깊숙이에 외활머니의 모시옷, 모시 조각보, 광목이 고이 잠들어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그 오래된 천들을 꺼내보라고 하시더니 선뜻 나에게 가져가라고 하셨다.


뜻밖에 받은 귀중한 유품을 소중히 안고 집에 돌아와, 그것들을 펼쳐놓고서 어떻게 써야 할지 골똘히 생각했다. 나는 그것들을 아주 잘 활용하고 싶었다. 광목은 꺼내놓고 늘 볼 수 있도록 뭔가를 만들어 사용하고, 모시 조각보는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놓고, 모시옷은 외출복으로 입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세탁이다. 광목과 모시 모두 잘 보관되어 있었지만 세월의 흔적을 피해갈 수는 없어서 약간의 곰팡이 얼룩이 눈에 띄었고, 광목은 풀기가 완전히 빠지지 않아 정련이 필요해 보였다. 우선 광목을 세탁하기로 했다.


90x223cm의 두 폭을 이어 붙인 것과, 가장자리를 두 번 접어 박아 무엇인가에 썼던 것으로 보이는 90x90cm 한 조각. 외할머니께서 엄마에게 이불 호청 하라고 주셨다는 아주 오래된 천들. 계산해 보니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40년은 되었을 듯했다.


15수는 되어 보이는 두툼한 두께, 옛날 원단에서 볼 수 있는 90cm 폭, 풀기 머금은 빳빳함, 요즘 쉽게 볼 수 없는 탄탄함과 치밀한 조직감. 균일하지 않은 짜임과 군데군데 보이는 올 튐. 드문드문 박혀 있는 까만 목화씨 껍질 조각들. 한 마디로 요즘 원단들과는 다른 투박한 튼실함. 그리고 오래된 천 특유의 곰팡이 얼룩들. 


정련이란 재래식 직물, 특히 광목이나 소창의 풀기를 빼는 작업을 말한다. 이런 직물들은 공장에서 직조하기 전에 원사에 풀을 먹이는데, 풀기가 남아있으면 흡습성이 좋지 못하고 뻣뻣하며 색이 누른 빛을 띤다. 풀기를 빼기 위해서는 삶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하지만 나는 세탁물을 삶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커다란 원단을 삶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솥도 없었다. 나름대로 쉽게 정련을 하기 위해 머리를 짜냈다. 온수 세탁, 락스 표백, 네 번의 헹굼을 모두 세탁기로 진행하기로 했다.


내친 김에 날을 잡아서 미뤄뒀던 이불 세탁까지 해치우기로 마음 먹었다. 다음은 사흘에 걸쳐 세탁을 하고 옥상에서 건조를 한 기록이다. 



5월 25일


황사와 송화가루가 잦아들고 볕과 바람이 좋은 시기. 몇 주 전부터 생각했던 것을 실행에 옮겼다. 다름 아니라 이불과 베개를 세탁해서 옥상에서 말리는 것. 옥상 바로 아래층에 사는데도 여태껏 옥상에서 빨래를 말릴 생각은 못했는데, 점점 심해지는 호흡기 알러지를 근본적으로 없앨 해결책을 찾다가 결정한 일이었다.


아침 일찍 세탁기를 돌려 구스 이불과 베개를 세탁해 옥상에 널었다. 날이 흐린데도 저녁이 되기 전에 거의 다 말라 있었다. 습기를 빨아들여 뭉쳐 있었던 깃털들은 바람을 받아 방방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이 정도라면 세탁 전문가 유튜버의 조언에 따라 건조기에 넣어주지 않아도 될 듯했다.


옥상에 빨랫줄에 걸린 구스 이불



5월 26일


전날 거둬들여 실내 건조대에 펴놓았던 구스 이불과 베개를 한 번 더 가지고 올라갔다. 하루종일 햇볕을 쬐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 7시부터 세탁한 수건들을 함께 널었다. 여태껏 오후 늦게 세탁기를 돌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실내 건조대에 널곤 했었는데, 오전 10시에 이 모든 일이 끝나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둘쨋날의 옥상 빨랫줄


야외 건조를 위해서는 실내 건조나 건조기를 사용하는 경우와는 다른 생활 리듬이 필요하다. 저녁이 되기 전에 거둬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 일곱시에 세탁기를 돌린 것은 이것이 아마도 생애 최초인 듯하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은 많지만 하루의 많은 시간 동안 나에게 집이란 가사노동의 장소라기보다는 강의를 준비하고 원고를 쓰고 번역을 하는 작업실이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주부든 프리랜서든 직장인이든 그 누구도 가사노동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내 일과표가 가사노동에 잠식당해서는 안되었다. 그것은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워서, 나는 그릇이 쌓여 있는 씽크대라든지 빨래 바구니가 포화 상태인 다용도실, 머리카락이 굴러다니는 거실을 애써 못본 척 외면하곤 했다. 거기 매달리게 되면 그날 하루의 작업 진도표는 엉망이 되어버리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른 아침의 빨래와 옥상 건조는 지금까지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될 정도로 상쾌했다. 사실 상쾌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고, 도시살이 하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특혜가 아닐까 싶을 정도.


이 좋은 기분을 조금 더 누리고 싶어서 바느질 커뮤니티 게시판에 사진을 올렸다가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날은 전국이 맑았다는 것.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주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 내가 올린 글에 많은 이들이 댓글을 달아주며 자신의 빨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댓글을 읽다보니, 야외 건조를 하는 주부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아침 이른 시간에 세탁을 하며, 맑은 날엔 심지어 정오에 거둬들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로 주부에 대한 존경을 표하며 정오에 게임 셋이군요, 라고 답글을 달았더니, 세탁물을 걷은 다음 한 차례 더 세탁한 옷들을 넌다고 했다. 게임 셋이 아니라 2차를 뛰는 것!


헐, 프로 주부님들...... 그들은 역시 넘사벽이다.  


댓글을 달아주신 다른 분의 말에 의하면 그날은 ‘대기질'이 좋았다. 그렇다. 그들은 아는 것이다. 일기예보를 흘끗 보기만 해도, 그 전날의 날씨와 그날 살갗에 와 닿는 바람의 감각만으로도 정확히 알아채는 것이다. 오늘은 놓치지 않고 빨래를 널어야 하는 날이라는 것을.


사실 나도 이차를 뛰고 싶었다. 얼마 전에 어머니가 주신 오래된 광목들을 빨아서 표백하고 햇볕에 건조할 계획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경험치가 워낙 일천하다보니 오후에 널어도 저녁 전에 다 마를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후 네시쯤이 되자 이 재미있는 일을 한 번 더 하고 싶어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작은 조각 하나만을 빨아 말리기로 했다. 광목을 주시면서 어머니께서 함께 주신, 외할머니께서 손수 만드신 모시 조각보를.


물속에서 나긋나긋 풀어진 외할머니의 모시 조각보


모시는 말랐을 때는 빳빳하고 물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부드럽게 나긋나긋 풀어진다. 이 사랑스러운 천을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성스레 손빨래로 이 가벼운 천을 살랑살랑 세탁해서 또 다시 옥상으로.


둘째 날의 빨랫줄


바람은 점점 거세졌고 날씨는 조금 변덕스러웠다. 외할머니의 모시 조각보가 마르는 데는 채 1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빨랫줄에 걸린 외할머니의 모시 조각보
그날의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빛과 구름과 바람이 이렇게 자극적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바람에 나부끼는 조각보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가라앉는 것도 같고 흥분되는 것도 같고, 하늘 높이 날아가는 그네를 타고 있는 것도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녁에 인스타그램을 보니, 지인의 얘기가, 오늘은 희귀한 밭고랑 구름이 나타났다고 기상청 트위터에서 알려주면서, 이 구름이 나타났으니 강풍이 불 거라고 예보했다고 했다. 역시, 예사로운 날이 아니었던 것.


낮에 다이소에 가서 빨래집게를 더 사오길 잘했다.


빨래집게 부자가 되었다.



5월 27일


모시 조각보를 다려서 끈을 달아 문 위에 설치하면서 창밖을 보니, 강풍은 서울에선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아서, 조금 늦었지만 광목 세탁을 시작했다. 온수 세탁을 먼저 한 다음 표백을 하고, 락스를 깨끗하게 헹궈내기 위해 탈수와 헹굼을 여러 번 반복하다보니 오후 네시가 되어서야 건조를 시작했다.


옷방 겸 재봉방 문 위에 외할머니의 모시 조각보를 달았다.
셋째 날의 빨랫줄
셋째 날의 빨랫줄과 북한산


전날의 경험으로 이제는 알고 있는 것이다. 맑은 날의 옥상 건조로 천이 마르는 데에는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강풍은 아니지만 강한 바람으로 빨래가 뒤집어지는 것을 보면서, 어제 느꼈던 감정의 정체를 조금 더 구분할 수 있었다. 불안감과 안정감과 흥분이 공존하는 그 느낌. 그네를 탄 듯한 현기증. 찢어질 듯 나부끼며 뒤집히는 그 비명들. 혹은 구호들. 하지만 아직 정확히는 모른다. 여전히 신비롭다.


이렇게 멋진 경험을 지금까지 프로 주부들은 자기들끼리만 하고 있었던 거야? 라고 잠시 생각하다가, 그게 아니라고 고쳐 생각했다. 거기에 어떤 경이로움이 숨어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었냔 말이다.




[이 글은 22년 6월에 발행한 글을 22년 10월에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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