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EPOXI 김경민
“이 팀이 이렇게까지 잘했었나?”, “이 선수가 이렇게 눈에 띄었던가?” 대회에 참가해 다른 동아리의 경기를 관전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농구 동아리 EPOXI(이하 에폭시)에게 2024년은 성장의 해였다. 이기지 못했던 상대를 꺾으며 저력을 증명했고, 굵직한 커리어를 쌓아올렸다. 에폭시의 발전과 함께 성장하며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경민 선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화여자대학교 에폭시에서 3년간 농구를 해온 교육학과 21학번 24살 김경민입니다.
33번입니다. 저희가 처음 에폭시에 들어오면 ‘폼림픽’이라고 구글폼으로 선착순으로 원하는 등번호를 뽑는 걸 하거든요.
제 생일이 9월 11일이어서 11번을 하고 싶었는데 누가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행운의 번호인 3을 선택했는데 그것도 누가 가지고 있어서 33번을 하게 됐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오래 사용하면서 33번에 정이 붙게 된 것 같아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마포구청에서 진행하는 ‘키크기 농구교실’에서 처음 농구를 시작했어요. 중학교 때 여자 농구부를 만들기도 했는데 고등학교 들어와서는 좀 놓고 있다가 대학에 들어온 후 1학년 2학기부터 에폭시에 들어가서 다시 농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포지션은 누구랑 뛰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제가 키가 164인데 뒷선이 부족하면 뒷선으로 가고, 뒷선이 많으면 앞선으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대학에 들어온 이후 왜 바로 농구를 하지 않았나요?)
제가 21학번이라 1학년 1학기 때는 코로나 시기였어요. 대면으로 전환하냐 마냐로 아직 이야기가 오가던 상황이라 저도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이제 좀 활발하게 움직여보자는 생각을 할 즈음에 에폭시 모집 공고문을 보게 된 거죠.
키크기 농구 교실을 같이 하는 친구들 중 남자들은 남자 농구부에서 활동했는데 여자 농구부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 같이 만들게 된 거죠. 사실 아마추어이기도 하고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어요.
대회를 나가서 기억나는 게 하나 있긴 한데, 상대팀 선수분의 등판에 이름 대신 ‘터미네이터’라고 쓰여 있었어요. 그분이 저희를 전부 부숴버리고 엄청난 점수차를 만들었던 게 생각나네요.
에폭시는 생각보다 얼마 안 된 동아리예요. 2020년에 창단이 됐거든요. 처음에는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소모임처럼 길거리 농구를 하자는 느낌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발전해서 코치님도 섭외하게 된 것 같아요. 제가 들어갈 때만 해도 초창기였어요.
팀명의 뜻은 ‘에너지가 폭발하는 시간’의 줄임말입니다.
저희가 대회에 나갈 때마다 그런 질문들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학교 원칙 상 같은 카테고리에 있는 동아리는 중앙 동아리로 중복될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바운시라고 이전부터 오래 있던 동아리가 있어서 저희는 중앙동아리로 전환할 수가 없더라고요.
(중앙 동아리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을 텐데요.)
아무래도 동방이 진짜 큰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 학교 동방이 지금 꽉 차 있어서 바운시도 동방이 없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모두 없으니까 괜찮다는 마인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폭시는 정흥주 코치님께서 운동을 봐주고 계십니다. 동호회판에서 비선출 탑이라고 유명하신 분이에요. 저도 이런 분을 어떻게 섭외했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숨고라는 앱에서 구했다고 하더라고요.
정흥주 코치님이 올린 모집글을 보고 연락을 드렸고, 지금까지 페이를 드리면서 쭉 코칭을 부탁드리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는 주 2회 진행합니다. 저희는 전술반과 기초반으로 나누어서 훈련을 해요.
화요일은 정규운동이라 모든 부원들이 한 자리에서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고, 토요일은 전술반 친구들이 대회를 목적으로 훈련하는 시간입니다. 보통은 동호회 팀들을 불러서 교류전을 하거나 경험을 쌓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어요.
(기초반과 전술반은 어떻게 나누나요?)
이게 올해부터 만들어진 시스템이에요. 기초반은 농구를 아예 처음 시작하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가고 전술반은 애초부터 경험이 있던 사람들이 들어가거나 동아리 자체를 오래 해서 실력이 늘은 사람들이 들어가요. 처음 동아리에 입단하면 2주 정도 양쪽을 체험할 수 있어요. 그때 코치님이 보시고 이 친구가 여기서 뛸 수 있는지 판단해서 반을 확정합니다.
(기초반 연습은 누가 진행하나요?)
코치님이 번갈아가면서 시간을 나눠서 진행해 주십니다. 코치님이 전술반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는 운영진 친구들이 기초반 친구들을 도와줘요.
2-3년간은 학관 공사로 외부 코트를 빌릴 수밖에 없었는데 올해를 기점으로 공사가 완료되어 학교 학관을 사용하고 있어요.
티켓팅을 해야 하기는 한데 아직까지는 잘 되고 있어서 크게 문제는 없어요. 대관한 시간이면 언제든 가서 연습이 가능합니다.
제가 이 질문을 보고 고민을 되게 많이 했어요.
저희는 체대생은 없지만 언제든 어느 팀에게든 까다로울 수 있는 성격을 가진 팀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저희 팀의 장점은 누구든 나가서 1인분 이상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점이거든요.
(쿠스프에서 같은 학교는 같은 조로 붙는 경우가 많았는데.)
맞아요. 처음에 쿠스프 대회에 나갔을 때는 그런 제도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생겼더라고요. 이제는 모두 익숙해진 것 같아요. 늘 보던 사람들이고, 동아리를 오래 하다 보면 경기를 많이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긴장도 덜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중앙동아리인 바운시, 체대 동아리인 EFS랑 삼파전을 해 본 적은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는 없는 것 같아요. 대회에서 너무 자주 만나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개인적으로 교류하는 친구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처음 대회가 2021년 2학기 쿠스프였어요. 그때 횡성에서 진행했는데 저는 대회에 나갈 생각이 크게 없었거든요. 그런데 에폭시 언니가 갑자기 밤에 카톡을 한 거예요. 같이 나가자, 네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해주니까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전날 고속버스를 예매해서 갔어요. 저는 그때 규칙도 잘 몰랐어요. 세 경기 중 딱 한 경기를 이겼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고, 그때를 기점으로 농구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개인적으로 농구에 대한 큰 동기부여가 되어서 지금까지 농구를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요약하자면, 대회를 딱히 안 나가도 된다는 정도의 마음가짐이었는데 그때 이후로 오래오래 농구를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즐농을 하고 싶고, 가볍게 운동한다는 마인드였는데 사람이 한 번 대회를 나가보니까 승부욕이 엄청 생기더라고요.
웃음 담당이 아닐까 싶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제 모습을 보고 웃더라고요. 몸개그를 나도 모르게 한다든지, 이상한 짓을 하다 걸려서 사진이 찍힌다든지.
(보내주실 수 있나요?ㅎㅎ) 비방용이라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는 아까 말씀드린 2021년 쿠스프 예선입니다. 거의 3~4년 전인데도 그때의 감정이 남아있을 정도로 저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기억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는 2024년 서울대배입니다. 올해 마지막 대회였는데 많은 친구들이 졸업하다 보니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거든요. 4강에서 EFS를 만나서 불안했는데 현아가 3점을 많이 터트려주고 다들 너무 열심히 뛰어서 결승전에 진출했어요. 유종의 미를 거뒀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억에 남아요.
기본적으로 코치님이 결정하시지만, 코치님이 안 오시는 대회의 경우에는 스타팅만 결정해 주시고 그 이후로는 오로지 벤치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벤치 멤버들끼리 생각해서 조절해요. 예를 들어 상대방이 중요한 득점이 터질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벤치에 있는 친구들끼리 ‘지금 불러?’, ‘지금 부르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서 바로 타임 부르고 재정비하는 것 같습니다.
(팀원들끼리 발언권을 나눠 가지는 건데 마찰은 없었나요?)
마찰이라기보다는 모두가 할 말이 많은 적은 좀 있던 것 같아요.
재정비를 하려고 들어왔는데 5명이 다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뭔데’만 말하다가 다시 들어간 적도 있었거든요. 요즘은 좀 정비됐는데 초반에는 그런 경우가 좀 많았어요.
저희가 기본적으로 맨투맨 수비를 하는 여대부에서 몇 안 되는 팀인 것 같아요. 사실 이건 코치님의 철학인데, 지역 방어는 너무 쉽게 뚫리니까 맨투맨으로 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하셨거든요.
처음에는 저희도 되게 우왕좌왕했던 것 같아요.
스크린이 왔을 때 스위치 여부를 생각해야 하고, 빠른 트랜지션 상황에서 내가 누굴 잡아야 할지도 확실하게 해야 하니까요. 코트 안에서의 소통이 정말 중요한 수비 전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년도에 그걸 많은 대회와 훈련을 통해서 맞춰 나갔다고 생각해요.
저희 경기 영상을 보시면 상대방이 공격할 때나 타임 이후에 계속 콜을 해서 자기 매치업이 누구인지 공유해요 ‘내가 몇 번’, 이런 식으로요.
저도 옛날에는 지역 수비를 선호했는데 이제는 모든 경기를 다 맨투맨으로 하니까 익숙해져서 지역 수비를 하면 좀 헷갈리더라고요.
사실 저는 쿠스프 파이널이 이번 년도 대회 중에 제일 아쉬웠다고 생각해요. 이기고 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더라도 어떻게 지는지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다들 너무 긴장을 했는지 할 수 있는 것의 반의 반도 못 보여줬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다들 긴장하고 시간에 쫓기는 게 눈에 보여서 그런 부분들이 마음이 아팠어요. 벤치를 보는 입장에서 계속 아쉬웠어요.
그 경기가 끝나고 개인적으로 너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단톡방에다 장문의 카톡을 보낸 기억이 있어요. 저는 우리가 처음으로 파이널에 온 것만으로도 너무 축하해야 하는 자리인데 다들 너무 자책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죠. 그리고 앞으로는 대회에서 지더라도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는 걸 다 하고 들어와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사실 파이널에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았어요. 쿠스프 예선 4강까지가 파이널 진출 확정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진출했다고 연락이 와서 급하게 준비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신기한 게 이미 11월이 꽉 차있더라고요. 모든 주말이 대회로 꽉 차 있어서 11월을 목표로 준비를 꽤 오래 했었어요. 토요일 전술반 훈련도 그때를 준비하면서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파이널에 진출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토요일 훈련들이 11월을 소화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저희가 이번 년도 성적이 제일 좋아요. 이전에는 우승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WKBL 디비전 2에서 우승을 했어요. 국민대배에서도 3등을 했고, 이번 서울대배 준우승도 했었고요. 이렇게 굵직굵직한 커리어들이 좀 생긴 것 같아서 되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동아리 친구들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 것 같아요. 다들 이번 한 해 고생 많았다고 전해주고 싶어요: )
저는 지금도 에폭시가 상대하기 까다로운 팀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걸 넘어서, 까다롭기만 한 게 아니라 강팀들에게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는 팀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어린데 잘하는 친구들도 많아서 우승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는 팀이 될 것 같아요.
우선 ‘채현이’에게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걸 보고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생각을 많이 했는데, 저는 실력이 늘은 케이스거든요. 동아리도 처음 제가 들어왔을 때는 신생팀이었다가 이제는 꽤 굵직한 팀으로 성장했다는 걸 고려해 보면, 제 성장 속도와 비슷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좀 있었던 것 같기는 해요. 제가 스타팅이 아니었던 대회들도 사실 많고, 왔다갔다하니까 없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제가 올해 교환학생을 가면서 6개월 쉬고 돌아와서 느낀 건 출전시간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였어요.
못 뛰게 된다면 나보다는 그 경기에 더 필요한 친구가 있구나 해서 누가 뛰든 응원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혹시나 제가 들어가는 경우가 생기면 어떠한 이유로 제가 필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돼요.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구나, 하는 게 있을까요?)
저는 공격보다는 수비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누구를 악착 같이 막아야 하는구나, 그렇게 다짐하고 들어갑니다.
그날의 조합이 가장 큰 것 같아요. 뒷선의 공백이 있으면 스타팅으로 뛰는데 앞선으로 가야 할 때는 교체선수로 시작합니다.
호불호를 따지자면, 저는 앞선을 조금 더 좋아하긴 하거든요. 속공을 뛰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요. 그리고 뒷선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계속 뒷선만 하면 노하우가 생길 것 같은데 왔다갔다 하다 보니까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벤치에 있으면 경기 중에 있는 친구들보다는 제가 조금 더 객관적으로 경기를 볼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저는 부상 등으로 벤치를 온전히 봤던 적이 꽤 되는데 그럴 때마다 저만의 노하우를 쌓아갔던 것 같아요.
요즘 이건 좀 신경 쓰는 건데 벤치에서 계속 떠들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애들이 기가 죽어도 벤치는 기가 죽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할 수 있어, '너 꺼야, 너가 하면 돼' 하고 아무 말이라도 떠들어요.
그때, 제 기억으로 경기 종료 1분까지 1:6인가 1:7이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솔직히 1:7은 뒤집기 힘든 점수 차니까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채현이가 2점을 넣어줬어요. 그럼 또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 이거 해볼 만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때부터는 흘러가는 시간을 보지도 못했고 제 공격하기에 바빴던 것 같아요. 그 경기가 연장까지 갔거든요. 그런데 제가 신발끈이 풀려서 나가야 했고, 결국 그렇게 경기에 졌어요. 같이 나갔던 친구 중 한 명이 제가 이렇게 해주는 경기가 많지 않은데 자신이 잘하지 못한 것 같다고 울더라고요. ‘괜찮아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라고 하면서도 그 애가 너무 미안해하니까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되게 재밌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 하고 나온 경기라고 생각해서 뿌듯하고 후련했습니다.
지금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농구에 소극적이었다가 점진적으로 올라가고 있거든요. 성적도 성적이지만 마음가짐의 면에서 ‘농구를 오래 하고 싶다’고 바뀌었다는 점에서 커리어 하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무 많아요. 대회를 나가고 농담 따먹기 할 때도 즐거웠고, 밥만 먹어도 너무 웃기고 재미있어요.
(특별한 추억을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WKBL 2차 대회를 아산 이순신 체육관에서 했어요. 그래서 전날에 미리 가서 잠을 잤거든요. 그날 밤에 다들 농구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공포 영화를 보고 보드게임하고 서로 간지럽히면서 놀았어요. 근데 그날 다들 너무 잘 잤는지 다음날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우승을 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저는 초창기 일인데 제가 쿠스프 전날 손가락이 부러진 적이 있어요.
훈련 도중 공을 잡는다고 갔는데 거리 계산을 잘못해서 손이 꺾여서 금이 갔어요. 그게 전날이라서 진짜 마음이 아팠어요.
어쩔 수 없이 벤치에 있었는데 경기 막판에 점수 차이가 좀 났어요. 그때 제 손을 보고 애들한테 뛰어도 되냐고 물어봤죠. 그러니까 애들이 저를 노려보는 거예요.
될 거라고 생각하니?’ 딱 그런 느낌으로… 그래도 꿋꿋하게 테이핑 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1분 정도 뛸 수 있었죠. 애들이 공을 잡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뛰게 해 줬거든요ㅎㅎ
또 한 번은 트리플잼 대학부 3대 3을 뛰다가 광고판에 밀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점수판이 제 손으로 떨어져서 살점이 뜯겨 나갔어요. 하필 그날이 일요일이라 병원이 하는 날이 없었죠. 그래서 참고 다음날 병원에 가니까 어떻게 참았냐는 거예요. 한 달 동안 또 농구를 못했습니다.
저는 동아리에 들어와서 코트를 밟고 있는 친구들을 믿지 못한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 역시 팀원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너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EFS 박하은님을 뽑고 싶어요. 제가 나름대로 공격보다는 수비를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서울대배 때 하은 님께 엄청 털렸거든요. 너무 빠르고 잘하셔서 엄청 먹히고 코치님이 바로 저를 교체시켰어요. 하은 님 오며 가며 종종 보지만 항상 너무 잘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연도엔 그 퍼센티지를 찾고 싶어서 개인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퍼센트로 계산을 하기 힘들더라고요.
그냥 계속 어느 정도라도 은은하게 제 삶 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환산할 수 없지만 0은 절대 아닐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있습니다. 제가 다한증이 있어서 손에 땀이 많거든요. 그래서 자유투를 얻어내거나 공을 온전히 만질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제가 손을 후후 불어서 땀을 말리고 있어요.
(옷에 닦지는 않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가 한 번 그렇게 불어서 말리고 자유투를 전부 넣은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게 루틴이 되어 버렸어요.
계속할 것 같습니다! 아마 동호회를 들어가서, 친구들이랑 같이 농구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올해 팀의 주축 선수들이 많이 졸업하는데, 대학 동아리 특성상 기량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잖아요.. 그럼에도 저희 팀의 기량과 팀컬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 같아요. 지금 들어온 1, 2학년 친구들이 농구를 더 열심히 하고 좋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저는 교류전을 통해 경험치를 제일 많이 쌓는 것 같아요. 물론 따로 스킬 트레이닝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번 3대 3 경기 하나만으로도 저는 제 공간이 생겼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한 번 길이 보이고 나면 그쪽으로 자신감이 생겨서 계속 파게 되고 안 하던 걸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렇게 시도할 수 있다는 부분이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제 좀 움직여야지’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코트를 밝았던 코로나 시기의 새내기는 3년간 팀과 함께 성장하며 농구를 놓지 못하는 선수가 되어 버렸다. 가비지타임 때 다친 손으로 코트를 밟기도 하고, 팀의 첫 우승을 함께하기도 했다. 스타팅 멤버일 때도, 교체 선수일 때도 진심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한 김경민 선수의 삶에는 앞으로도 농구가 은은히 남아 있을 것이다.
저 <농구하는 우리들> 하나당 세네 번씩 읽었거든요. 그런데 질문이 가볍지 않고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좀 있어서 잘 답할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지금 인터뷰하면서는 좀 재밌어요ㅎㅎ
소리 지르는 거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벤치에서 누구보다 크게 외칠 수 있어요.
코너에서 깔끔하게 3점 성공하기요ㅠㅠ 저 그거 넣으면 울 거예요!
X. 저는 제가 없어도 팀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돌아갈 것 같아요. 말씀드렸듯이 1인분 이상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포워드. 되게, 몸을 활용을 많이 해야 하고 할수록 어려운 포지션이라서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울게요. (울면서 백코트?) 그러다 눈 안 보여서 (교체당하고?) 약간, 점점 만담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그거 말고는?) 제가 카메라 보는 걸 부끄러워하는데요... 저, 소심하게 카메라에 따봉하고 돌아가겠습니다.
팀을 생각하면 5대 5가 훨씬 좋아요. 이겼을 때 정말 기쁘거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걸 더 많이 할 수 있는 건 3대 3 인 것 같긴 해요
채현이랑 하린이요. 오래 봤고 대회도 같이 많이 뛰어서 합이 안 맞으면 오히려 더 이상할 것 같아요.
EFS 박하은 님. 제가 한 번 못했으니까 다음에는 막고 싶어요.
하린이의 힘을 좀 빼앗고 싶습니다. 하린이가 포워드나 센터를 많이 보는데 키가 저랑 큰 차이가 안 나거든요. 그런데 힘이 정말 세서 그걸로 밀어붙여요.
너무 꼰대성 발언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언니들을 보면 되게 조심스러워했어요. 서글서글한 편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저희 동아리에 05년생 친구가 들어왔는데 보자마자 엄청 친근하게 굴어서 순식간에 친해졌어요. 이 친구가 정말 대단한 게 4살 차이 나는 언니들한테 먼저 연락해 주고 와서 놀거든요. 그런 게 다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