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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벗 Mar 15. 2021

살다 보니 잊고 지내며 먼지가 쌓인 소중한 것들

열심히 살다 보니 이렇게 살아집니다.

잃어버린 시간 속에 찾아지는 것들..

코로나로 인해 지난 1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답답한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 다니며 생활을 했습니다.

때로는 오랜만에 반가운 지인이 연락을 해도

"우리 오래간만에 얼굴 한번 봐야지?"라는 말을 할 것이 두려워 전화를 피하기도 했습니다.

혹시나 전화를 받고 만나지 못한다는 말을 하면 그 사람이 상처 받을 일이 미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낸 1년이었는데 이것도 적응이 되었다고 이젠 대놓고 이야기합니다.

"뭐하러 와! 전화로 안부나 물으면 되지! 요새는 찾아가지 않는 게 서로에 대한 예의야!"라고 너스레를 떨면

"그래! 그래! 맞아! 하하! 나중에 식사 한번 꼭 하자고!"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이제는 이런 대화가 자연스러운 대화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그 가벼운 식사 언제쯤이나 할 수 있을는지..

<숨길수록 새로운 것이 나타남으로>

처음에는 마스크를 쓰고 사람을 보면 못 알아보는 것이 다반사였는데 요새는 눈만 봐도 단번에 알아보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몰랐던 사실이지만 눈이 아름다운 사람들도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스크를 쓰다 보니 얼굴에 가려졌던 아름다운 눈을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너 참 눈이 예쁘네! 하하!"

생각해보면 코로나 이전에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할 때 눈을 보지 않고 어디를 보고 대화를 나눈 거지?라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마스크로 가려지고 난 뒤에야 눈을 보며 대화를 하게 되면서 눈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동안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면서 그 사람의 첫인상과 표정 그리고 얼굴의 생김들로 가려져 진심이 담긴 아름다운 눈빛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동안 주변에서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건 아닌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꿈마저 무거워져 주저앉는 것은 아닐까?

가장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노력하면 그것은 곧 꿈이 되고 현실이 될 거라 믿었습니다.

이 믿음은 아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고 아들은 그것을 잘 받아들여하고 싶은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작은 축구였고 롤모델은 손흥민 선수였습니다.

<언제든 뒤돌아보거라.. 그곳에 늘  아빠가 있을테니>

코로나로 인해 축구를 한동안 하지 못하고 집에서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게임을 많이 하게 되었고 아들은 날이 갈수록 살을 찌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는 원격수업,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먹는 시간과 앉아있는 시간이 움직이며 활동하는 시간보다 상대적으로 많아지기 시작했고 날이 갈수록 새로운 살을 찌워가는 아들의 모습을 칭찬해주었습니다. "듬직해졌는데?", "남자다워 진건가?", "힘이 세진 것 같.. 은데.. 대단한걸.." 그렇습니다. 대단했습니다. 지금도 점점 더 대단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 마음이 아픈 걸까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조정되면서 다시 축구를 나갔습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듬직해진 아들은 다른 아이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예상대로 이는 곧, 자신감과 자존감 저하로 이어진 듯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축구를 그만두고 수학학원을 보내달라고 하는 아들이 안타까웠습니다. 수학학원은 왜 보내달라고 하는 걸까? 원격수업에 따라가기 힘들고 이해가 힘들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결국 공부인가? 축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부모로서 기뻐할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도전해보지도 못하고 주저앉는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도 아팠습니다.

물론 표현은 아들의 생각을 존중한다고 했지만 결국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하고 싶지 않아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을 하는 사회적 수준을(누가 정한 것인가..?) 따라가게 된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어떻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해도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이라고 아들이 스스로 이야기하니까.. 남들이 하는 만큼은 해야 하지 않냐며 남들에게 뒤쳐지는 것이 싫고,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해졌으니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아들에게..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하던 축구를 포기하는 것이 쉬웠는지..

<뿌리가 단단히 박혀있으니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음으로>

수학학원을 다니는 것은 원격수업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족한 부분을 학습하기 위한 필요에 의한 수준 유지의 수단이며, 꿈이나 하고 싶은 일은 절대 아닙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마음이 아파오기는 했는데 다른 꿈이 생겼다며 말하는 아들의 말을 듣고 또 다른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제 아들의 꿈은 프로게이머이자 유튜버입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빠는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뒤늦게 깨달은 사실이지만 꿈은 현실과 항상 함께 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던 것은 아들의 게임 실력이 이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아빠라는 사람은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함께 게임을 할 때에는 늘 아들에게 핀잔을 듣습니다.

누가 네게 게이머와 유튜버의 꿈을 심어준 것이냐.. 코로나 너냐?


꿈은 열심히 살다 보면 살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꾸게 되는 것인가? 그러다 현실에 맞게 자신과 타협하며 사라지기도 하고 또다시 나타나고..

 

아들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아빠의 바람은 어떤 꿈이던 네가 가지고 있는 꿈을 망설임 없이 훗날 후회됨이 없도록 자신 있게 도전하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또, 꿈이 허황되고 남들의 비웃음을 사는 꿈일지라도 부끄러워말고 당당히 꿈에 도전하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고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과 잣대가 감히 너를 평가하지 못하도록 네가 옳았음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열심히 살다 보니 지금까지 살아지고 있습니다.

인생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거라고 어딘가에서 봤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열심히 살다 보니 지금까지 살아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두려워지는 것이 많습니다. 건강문제가 두려워지고 직장에서는 상사와 후배들의 시선이 두려워지고 집에서는 아내와 아들의 시선이 두려워집니다.

두렵다기보다는 부담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합니다. 재작년 12월경 큰 아버님의 상을 마치고 서울에서 함께 버스를 타고 오면서 아버지께서 버스에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문득문득 생각이 납니다.

"아들! 창 밖좀 볼래"

"네? 왜요?"

"아파트 참 많다.. 그렇지?"

"네.. 그러네요.."

"그런데.. 저 많은 아파트 중에 우리 집이 없네.. 참 열심히 살았는데 말이야.. 참 부질없다.."

"......."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시던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시니 더욱 그러한 마음이 드셨던 것 같습니다.

다 부질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많은 아파트 중에 내 아파트 하나 있으면 좋을 것도 같습니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늘 제자리인 것 같은 기분.. 그러다 보니 나도 살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열심히 사는 건 누구나 다 열심히 사니까.. 당연한 것이고 그러니까 그냥 이렇게 살아지고 있고 그 난리입니다.. 그 참.. 그렇게 살아지는 와중에도 남들만큼 이루지 못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어쩔 수 없는 아버지들의 운명입니까? 이것이..?


먼지 속에서 찾은 기억들.

예전 사진 속에서 나의 8살 때 사진을 봤습니다. 나는 예전 사진을 보면 남들이 모르는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그 당시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를 바라보던 나의 모습 속으로 돌아가 보려 기억을 뒤적이고 뒤적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며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지 그 당시 사진을 찍기 전과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당시의 나의 기분이 어땠는지 기억을 계속 더듬어 봅니다.

<따뜻해서 좋았던, 함께라서 소중했던>

마치 엄청난 수의 책장이 무너져 내려 뒤죽박죽 뒤섞인 책들 사이에서 내가 원하는 단 한 권의 책을 찾는 듯 한 기분.. 물론 30대 이전 사진을 보면 단 한 번도 생각이 난 적이 없었습니다.

30대 이후에는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으니 크게 기억을 더듬으며 생각할 일도 없었고.. 8살 때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인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때의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아들의 성인식 날 성장 사진전을 선물할 때 꼭 사진 뒤에 날짜와 내용을 적어주려고 합니다.

기억을 더듬거리며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니까..


어머님 당신도 살아지신 건가요?

요양원에 계신 장모님께서 이젠 나를 알아보지 못하십니다. 때로는 외손자도 알아보지 못하십니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으신 살아계신 역사의 산 증인.. 어린 시절 한적한 시골마을 기와집에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시집오신 뒤 평생을 농사의 고된 노동과 끝나지 않는 집안 살림의 압박과 말로 하지 못할 모진 핍박 속에서도 홀로 저의 아내를 키워오신 위대하신 어머님.. 지금은 치매라는 병에 걸려 기억을 하나둘씩 잃어가고 계십니다.

말도 안 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손도 잡아드리지 못하고 얼굴도 만져보지 못하고 유리창으로 바라보며 안부를 묻습니다. 어머님은 밖에서 그러지 말고 연신 들어오라며 손짓을 반복하십니다. 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내의 눈가에 눈물이 고입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지나가는 말로 늘 몇 마디 말을 흘려보냅니다.


"지나온 고된 세월과 억울하게 살아오신 시간들을 다 기억하면 얼마나 가슴 아프고 한이 맺히실까.. 다 잊고 남은 여생은 그저 마음 편히 지내시라고 치매가 오신  같아.."라고 말을 흘려보냅니다.


자식과 다름없는 사위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딸이 느끼는 가슴 아픈 마음에 비할 바가 되겠는가.. 장모님께서도 그저 그렇게 열심히 하루하루 사시다 보니 살아지신 겁니까.. 이제 와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때로는 기억이 지워지는 것도 하늘의 뜻인가 보다 할 때도 있고 굳이 지난 시간 속에서 더듬거리며 기억을 찾아봐야 뭐 좋을 것이 있나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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