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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Jun 19. 2020

이 여행을 반대합니다

오! 나의 숙주님


세계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가는 것일까?
낯선 곳에서의 모험 혹은 새로운 만남 그리고 여행 후 성장한 자신.. 이런 것들이 세계여행을 계획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이 좋다며 환호할 때 죽상을 쓰고 ‘no’를 외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라는 사람이다.



고장 난 숙주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고 늘 밝았다.

연애기간 2년. 그동안 우린 남편이 1박 2일 워크샵에 간 하루를 제외하곤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다. 퇴근 후 항상 나를 만나 저녁시간을 보내고 늘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은 언제나 다정한 사람이었고 일도 사랑도 열심인 사람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은 여의도 본사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남편이 원하지 않는 부서였고 그곳에서 일하며 남편은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퇴근은 늘 밤 12시를 넘겼다. 심하면 새벽 3시가 되어야 도망치듯 나올 수 있었고 늦게 퇴근해도 출근은 늘 오전 8시까지였다.  얼굴 볼 시간이 없으니 서로 대화는 줄어갔고 몸도 마음도 서로 멀어져 싸움이 잦았다.

1분 1초가 귀한 출근시간엔 차 안에서 먹을 수 있는 빵을 주로 아침식사로 싸줬고 ,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라며 신발장까지 숟가락을 들고 쫓아다녔다. 둘이서 함께 밥 먹을 시간 조차 없이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주말엔 주중에 쌓인 남편의 피로를 풀어야 했고 나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본사는 가정적이었던 남편을 사라지게 했고 부부생활까지 망가뜨렸다. 그리고 남편의 몸에도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혈압은 올라가고 잦은 회식과 스트레스에 살을 계속 쪘다. 일주일에 2,3번꼴로 코피가 흘렀고 남편의 몸도 부부관계도 위태해져만 갔다.

그렇게 6개월을 버텼던 본사에서 남편은 어렵게 탈출에 성공해 다시 지점으로 옮겨졌지만 한번 마음이 떠나버린 직장에 다시 마음을 억지로 붙이기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예전만큼 일하면서 행복을 느끼지 못했고 식혜 사업을 하겠다는 둥 중식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둥 다른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라는 기생충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했고 아늑하고 안정된 내 삶이 좋았다.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내가 이뤄낸 것이 아닌데도 놓기 싫어 아등바등 버텼다. 어쩌면 쉽게 얻은 꿀 같은 행복이라 더 놓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가 해준 식혜를 먹고서 맛있다며 식혜 사업을 해야겠다고 말했을 때 웃어 넘겼지만 회사에 마음이 떠난 걸 알기에 퇴사한다는 말이 아닌 것에 감사하며 천천히 준비하라고 응원하는 척했다. 함께 식혜 공장을 찾아가 견학을 다녀온 후 쉽지 않음을 알았는지 식혜 사업 소리가 쏙 들어가서 내심 안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은 로망이 없냐고 물었다. 없었다. 지금 이 좋은 복지와 급여를 두고 어디를 간다는 말인가. 그렇게 처음 세계여행이라는 단어를 듣고 며칠 후 남편이 세계여행을 가자고 말했을 때, 이러다 말겠지 넘겼고 금방 마음을 잡을 줄 알았다. 그냥 식혜 사업처럼 한 번 해보는 소리겠지 생각했다.


어느 날은 남편이 4개월 뒤 출발인 비행기 티켓을 결제했다. 조금 당황은 했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었다. 어차피 갈 수 없는 걸 알기에 그걸로 남편이 위안을 삼으며 한편으론 현실의 벽에 부딪치기를 바랐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남편은 또다시 비행기 티켓을 결제했고 이번엔 필요한 비자까지 받았다. 남편은 계속 탈출을 시도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남편의 실패를 보고 속으로 환호를 외쳤지만 너무 티가나면 오기가 생길까 벽면 한쪽에 세계여행지도를 붙여 핀과 끈을 선물하고 맞장구쳐주며 남편이 퇴사하지 않도록 어르고 달랬다.  


물론, 여행을 가지 않기 위한 가장 극단적인 방법 ‘임신’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예전엔 아이가 너무 갖고 싶어 지나가는 유모차만 봐도 눈물이 났다. 그만큼 아이를 너무 원하고 좋아하지만 임신이라는 축복이 여행을 막는 수단이 되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혹여나 아이가 생기면 남편이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 행복이 덜 할까, 족쇄라고 여기면 어쩌나 걱정도 되는 부분도 있어 그 방법은 고이 마음속에 묻어 두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혼 4년 차가 되었다. 그냥 꿈만 꾸다 말겠지 이제 포기하겠지 했는데 그땐 내가 남편을 제대로 몰랐다. 언젠가부터 남편은 나의 관심사를 여행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갑자기 여행학교(여행 관련된 강의를 듣는 곳)를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나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포기하나 싶었는데 어느 날은 제발 소원이니 여행 강의를 들으러 같이 가자고 했다. 그 강의는 세계여행을 다녀온 부부 여행자의 강의였는데 정말이지 여행에 관심이 없는 나는 들어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질문받는다는 소리에 어린이 마냥 손을 번쩍 드는 모습이 저리도 좋을까 생각이 들었다. 또 차를 타고 이동할 때와 잠을 자기 전에는 여행 관련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아재 개그와 여행 썰을 들으며 호탕하게 웃는 남편이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렇게 남편은 내 관심사를 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남편은 외동아들에 10년 넘게 유학생활을 하고 혼자 살았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해왔고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익숙했던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 나라는 사람을 만나 가장이 되어 묵묵히 직장생활을 견뎌왔었나 보다.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온 남편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안겨 울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원하는데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안된다고 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남편은 소파에 앉아 있는 나에게 안겨 눈물을 흘리며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래?

여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 그렇게 사는 거야’


‘왜 나까지 그렇게 살아야 해...’


끝도 없이 떨어지는 남편의 눈물, 콧물 그리고 흥건히 젖은 내 어깨. 두 손으로 감싸지지도 않는 듬직한 어깨를 가진 남편을 안고 애써 토닥토닥였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면 나에게 기대 이리도 울어댈까.. 얼마나 참아왔고 고단했을까..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내가 누리는 이 삶의 행복이 너라는 사람의 노동으로 빚어진 안식처라는 걸 깨달았다. 나를 위해 그동안 애써 참아 왔다는데 이젠 내가 희생해야겠다.  나를 설득하는데 무려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미 갔다 왔을 수도 있는 만큼의 긴 시간이 흘렀다. 나는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기생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하며 남편 덕에 즐겁게 살았던 것처럼 이젠 남편도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자 결심했다. 미안해 너무 늦게 알아서.




그렇게 나의 각성 끝에 남편에게 퇴사를 허락하고 본격적인 세계여행 준비가 시작되었다.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는 우리는 결국 떠나는 날까지 짐 때문에 실랑이를 해야 했다. 배낭은 작았고 욕심은 컸다. 잠기지 않는 배낭 위에 올라가 배를 꾹꾹 누르며 지퍼를 겨우 잠가냈다. 욕심 많은 여자인 걸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배낭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박음질 사이사이가 벌어졌다. 억지로 잠가진 배낭이 흡사 끌려가는 나의 모습 같았다.

이제 남편에게 기생하며 살지 않기 위해, 남편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즐겁게 살기를 바라며,  노년에도 함께 곱씹을 잊지 못할 둘 만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정말 어렵고 힘들게 결심하고 떠나온 여행.


하지만 아쉽게도 난 그의 여행에 함께 가기로 했을 뿐 동참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세계가 몇 개국이고 얼마나 넓고 긴 땅을 가졌는지 출발해서도 여행 중에도 궁금하지 않았다. 여전히 Tv가 좋았고 이불속이 제일 좋았다. 비록 못 이겨 한국을 떠나 왔지만.. 몸은 한국에 없더라도 내 마음은 끝내 한국에 있으리라. 이상하게 말도 안 되는 오기가 스믈스물 생겨나며 늘 궁금하지 않고 아무것에도 흥미 없는 이상한 세계여행이 시작되었다.



 내가 이렇게 끌려왔지만 결국 넌 내 관심사까지는 바꿀 수 없어. 날 여행자로 만들 수 없을 거야.
난 끝까지 여행을 싫어할 거야. 여행은 아주 귀찮은 거니까!!





내가 숙주였다고?
아니, 나야말로 기생충이야!


숙주란?

기생생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생물.

하지만 내가 숙주라고 불리기엔 한톨의 영양분도 나오지 않는 그런 빈 껍데기였다.

어쩌면 나야말로 양분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찾다가 찾은 고농축 된 최고의 양분이 바로 가정이었다. 그렇게만 본다면 아내가 아닌 나야말로 이 둘이 이룬 가정에서 영양액을 빨아 먹어치우는 기생충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나에겐 끊임없이 공급 되는 양분이 필요했다. 달리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 그리고 함께 만들어 나가는 수많은 추억들... 이러한 양분들을 만들고 축적하기 위해서 세계여행이란 큰 결정을 하게 된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릴적, 세계여행에 대한 로망이나 꿈을 꾼 적은 없었다. 물론 여행을 좋아했지만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 그런 존재였다.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선 "퇴사"란 아주 극단적인 선택외엔 별 다른 방법이 없었고, 추억을 만들어 나가는 좋은 방법은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이런 의외로 간단한 로직속에서, 나는 양분을 찾아 떠나는 대장정에 아내를 끌어들였다. 물론, 지인들은 입을 모아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와 세계여행을 간다는 걸 이해해 주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양분을 받지 못하는 기생충은 죽기 마련일테고,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평생 먹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영양창고"를 만들기 위한 무모한 도전이 필요했다.

나의 무모함 때문이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아내는 이런 나를 이해 할 수 없었고, 그렇게 1년 반이란 시간에 걸쳐 설득을 해야만 했다.

2018년 8월, 드디어 아내는 "억지 승낙"을 하게 되었고, 우리는 전세계에 퍼져있는 우리만의 양분을 찾아 떠나는데 성공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지만, 이불속을 좋아하는 아내를 억지로 끌고, 그것도 단기여행이 아닌 세계일주를 시작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서로 생각과 가치관이 너무 달라서 "달리부부"란 부부이름도 정하고, 남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만의 여행길을 떠나본다.

                                                                                                                             

                                                                                                                                     By.달리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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