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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Jul 19. 2020

겁쟁이 세계여행자

트라우마 덩어리

내가 싫어하는 걸 강요하는 남편. 내가 할 수 없는 걸 무리하게 요구하는 남편.

남편은 내가 여행을 좋아하길 바라며 억지로 여행 다큐멘터리를 보게 하고 여행도 끌고 왔다. 여행을 시작한 후에도 남편은 내가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들을 익숙해지게 하거나, 좋아하게 하려고 애썼다.


나는 벌레도 무섭고 귀신도 무섭고 개도 무서워서 싫다. 그리고 또 하나 물놀이도 싫다. 기억력도 그다지 좋지 않은 내가 유독 잘 기억하는 부분은 공포에 대한 것이다. 어릴 때 나보다 6살 많았던 큰언니는 공포물을 좋아했다. 전설의 고향이나 여고괴담, 처키 같은 공포물을 언니는 억지로 보게 했다. 어린 나이에 못 볼 것들을 봐서 그런지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겁이 많다. 혼자서는 일요일 아침에 하는 서프라이즈도 보지 못하고 투니버스 채널에서 방영하는 학교괴담이라는 어린이 만화조차 보질 못한다. 한 번 들었던 귀신 이야기는 성인이 되어서도 잊히지가 않아 혼자 잠자는 것도 무섭다. 내가 아는 괴담 중에는 물놀이에 관한 이야기도 많은데 뭐 대충 물속에는 물귀신이 산다. 더 자세하게 괴담을 풀어내고 싶어도 무서워서 담을 수가 없다... 


아무튼 나는 수영을 못한다. 내 키가 넘는 곳에 보호장비 없이 들어 간 적이 없어 물에 뜰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물속이 무섭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여행 중 계속해서 물놀이를 강요했다. 아마도 내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액티비티를 함께 즐겨주길 바라서겠지.


물에 대한 트라우마 추가요!


수영도 못하는 나에게 물에 대한 공포는 밑으로 가라앉아 숨을 못 쉬고 죽는다라는 것도 있지만 의문의 사고나 물 밑의 무언가가 발목을 잡아끌어 당길 것 같은 어릴 적 들었던 괴담들이 떠오른다.


랑카위 세븐시스터즈 폭포란 유명한 물놀이 하는 곳이 있는데 남편은 그곳에서 내게 수영을 가르치려 했다. 철없는 남편은 깊은 물에 들어가 물에 빠진 척 연기하며 내 속을 까맣게 태웠다. 그러다 수영을 알려주겠다며 나를 안고 깊은 곳으로 향했다. 키가 180센티가 넘는 남편에게는 발이 닿았을지 모르지만 160센티인 나에겐 발밑에 아무것도 닿지 않아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곧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잡을 수 있는 거라곤 남편밖에 없는데 남편은 물속 한가운데서 나를 떼어 놓았다. 곧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바닥에 돌들이 발에 닿았다. 돌들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돌들은 우르르 무너지며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보내는 것 같았다.


몇 초였을까. 길면 10초 짧은 면 3초. 내 체감시간은 1분 정도. 그 짧은 찰나가 생생하다.


그렇게 물에 빠진 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니 몸이 계속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미끄러지는 돌들이 아직 내 발바닥에 생생히 닿는다. 물속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 목소리가 웅성웅성 들린다. 그날 밤 나는 악몽을 꾸었다.

물속에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



 너마저 내가 만만하니


동남아에서 어떻게 물놀이를 안 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남편은 물속 마니아다. 여행 전부터 나에게 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말했었다. 나는 진작에 혼자 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같이'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남편은 절대 혼자 할 생각이 없었다.  


태국 꼬리뻬라는 섬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많은 걸 해보고 싶어 했다. 동남아 여행지 중 가장 기대를 많이 하고 온 곳 중 하나였으니까.. 물놀이가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바다를 보는 건 좋아했다. 혼자 바다에 나가 스노클링을 하더니 너무 예쁘다며 보여주고 싶다며 눈을 번쩍이며 발을 동동 구르는 남편을 보며 안쓰러워 오늘은 함께 스노클링을 해줘야지 결심하고 따라나섰다.


하지만 호기심 강한 남편은 자꾸 더 멀리 더 멀리 바다 안쪽으로 향했고 겁 많은 나는 결국 함께 놀기를 포기하고 내 발이 닿는 정도의 물 높이에서만 혼자 놀고 있었다.  물속을 구경하던 중 물고기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응? 쟤는 도망 안 가네?'

생각하는 순간 손바닥만 한 녀석이 나에게 돌진해 왔다.

"꺄악" 소리치며 해변을 향해 허겁지겁 뛰었다. 수심이 허리 쪽으로 닿는 곳에 도착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따돌렸는지 주변을 살폈는데 녀석이 또 옆에 떡 하니 나를 노려보는 게 아닌가...

"끼야야야야야야야악" 비명을 지르며 해안가까지 도망을 왔다. 

 그 후 더 쫄보가 된 나는 어쩌다 몸에 닿는 해조류나 내 머리카락에도 스스로 놀라 혼자 비명을 지르며 난리 치기 일쑤였다. 


물놀이는 나랑 정말 맞지 않는다. 아무리 사람들이 좋다고 한들 내가 싫은데 굳이 극복해서 좋아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인생을 뭐 그렇게 힘들게까지 살아야 할까? 남들이 다 좋다 해도 그냥 내가 싫으면 피하고 안 하고 다른 것에서 재미를 찾으면 되는 거 아닐까?


물고기마저 나를 우습게 보다니...
바닷속도 육지도 어느 한 곳 안전한 곳이 없구나.





- 달리남편 왁자지껄


여행의 A to Z를 보여주고 싶었다. 세상엔 다양한 비경(秘境)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물속 세상이 아닐까?

에메랄드 빛 바다, 형형색색의 산호초, 그리고 그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무수히 많은 열대어들... TV속에서만 봐왔던 신비로운 것들을 이젠 직접 접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동남아의 바다뿐일까? 유럽의 별빛이 쏟아지는 것 처럼 눈부신 지중해와 모히또 한잔 하며 즐기는 중남미 카리브해 까지... 앞으로 우리에게 펼쳐질 무궁무진한 바닷속 세상은 내 여행세포를 자극하기엔 벅찰 정도로 충분했다. 나의 이런 행복감과 기대감을 아내와 나누고 싶었지만 아내와의 공감대를 형성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수영을 못해. 나는 물이 무서워. 난 물에 안 들어갈래."


아내의 이런 생각은 아주 견고했고, 나는 어떻게든 그런 아내를 바꾸고 싶었다. 내 입맛대로, 그리고 나를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대부분의 부부는 각자의 교육환경과 그로부터 형성된 가치관에 따라 살아오다가 서로 만나 결혼을 하게 되는데 100% 똑같은 가치관을 가진 부부는 극히 드물것이다. 아니, 어쩌면 50%도 찾기 어렵지 않을가? 그렇기 때문에 옳은 것에 대한 생각차이로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는 버릇이 생겨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기에 물을 싫어하는 아내를 강요해서 물을 좋아하고 수영을 하고 본인이 싫다하는 물속 세계를 나와 함께 즐기기를, 그렇게 변하기를 바랬다.


사람은 쉽게 바뀌는 동물이 아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또는 아무리 멋진 풍경이라도 당사자가 좋아해야만 그것은 진미이자 절경일 것이다. 즉, 그토록 화려할 것만 같은 산호바다세계는 아내에게 그저 각종 무서움이 도사리는 세계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 아내에게 나의 바램을 이해하고 바뀌라고 강요를 했다는 것은 정말 우매한 행동이었던 셈이다. 제 아무리 좋은 취지가 깃들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결코 나의 우매함을 합리화 해 보기 좋게 포장 할 수는 없다.


싫은 건 싫은 것이다. 싫다는 걸 억지로 좋은 것이라고 강요하지 말자.


이것은 내가 여행중 얻은 첫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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