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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Jul 10. 2020

이건 분명 꿈이야!

남편의 빅 픽쳐!


지상낙원 마리나베이샌즈


세계여행 계획을 세울 때 남편이 나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싱가포르에 마리나베이샌즈라고 있는데, 여기 봐봐, 어때?’

‘와! 멋있다! 나 여기서 잘래!’


마리나베이샌즈 루프탑에서 즐기는 멋진 야경과 풀장의 사진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 나도 한번 누려보고 싶었다.

하루 숙박비가 40만 원에 달하는 가격이지만 인생에 있어서 단 한 번쯤은 나도 이런 곳에서 몸을 뉘어봐도 되지 않을까?

더 늙기 전에 이런 야경이 펼쳐지는 곳에서 비키니를 입으며 칵테일 한잔 마셔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1박이라도 하자고 의견을 내놓았다.

그렇게 생각 없이 쉽게 예약한 마리나베이샌즈..


오지 않을 것 같이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이 한 걸음씩 쿵쿵 다가오더니 나는 어느덧 정말 구름 위에 누워있다.


구름 같은 침대와 폭신한 배게, 내 살을 보드랍게 휘감는 포근한 구스 이불, 둘이 들어가도 넉넉한 사이즈의 욕조 크기와 동동 떠다니는 장미잎 그리고 욕조를 둘러싼 촛불들까지..

로맨틱하고 야릇한 분위기를 뿜는 욕조에서 금방이라도 사랑에 빠질 것 같았다. 비록 마리나베이에 투숙하는 동안 편의점에서 파는 빵과 우유로 뱃속을 채우는 웃픈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호텔에 입실하자마자 짐을 풀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는 루프탑 수영장을 향해 뜀박질했다. 부르주아의 상징! 영화 속 한 장면! 심장이 두근두근 나대기 시작했다. 오늘 내 인생 역사상 최고의 인생 샷이 탄생할 것이야. 인스타 셀럽처럼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도 연습해 갔다. 남편은 한 껏 들뜬 나를 예쁘게 찍어 주기 위해 DSLR 카메라와 삼각대까지 들고 수영장으로 올라왔다. 흡사 잡지 촬영이라도 하는 듯 위풍당당 수영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풀장 안에서 물에 몸을 맡기고 바라보는 싱가포르의 야경은 지구 밖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세련되고 화려한 도시 야경에 두 눈이 행복하고 입이 떡 벌어졌다. 입에서 ‘여행 오길 잘했다’ 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지금 나만큼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눈을 감으면 난 구름 위에 떠있는 듯했다.



눅눅한 현실세계



눈을 뜨고 다시 보니 나는 후줄근한 골방 안에 있다. 곳곳에 거미줄이 으스스함을 더하고 나방인지 나비인지 모를 번데기들이 날아오르기 위해 몸을 꽁꽁 싸매고 부화를 기다린다. 눅눅한 침대와 쾌쾌한 이불, 침인지 얼룩인지 알 수 없는 얼룩덜룩 누런 배게가 나를 맞이했다.

 

어제는 분명 고급 호텔에서 여유를 즐겼는데 단 하루 만에 모든 게 바뀌었다.

방의 컨디션을 보고 나는 경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복도에 문만 달고 침대만 놓으면 방이란 말인가. 나는 도저히 몸을 뉘을 수가 없었다. 어제의 그 달콤한 순간들이 생각나 또 눈물이 났다. 앞으로 이게 나의 현실이란 말인가. 현실을 부정해도 난 창고 같은 방에 있었고 이런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에 나는 또 남편에게 분풀이를 해댔다.


이건 나의 실수이기도 했다. 남편이 사진을 보며 여기 괜찮지라고 숙소를 보여준 기억이 있다. 분명히 나는 귀찮아서 제대로 보지도 않고 ‘OK’ 하고 수락했을 것이다.


아마 여행에 좀 적응이 된 나라면 감수했을 숙소의 컨디션이지만 여행을 갓 시작한 나에겐 큰 쇼크였다. 결국 남편이 한국에서 챙겨 온 에어매트를 침대에 깔아주고 누런 이불과 베개를 치워버리고 침낭과 베개를 꺼냈다. 자야 하는데 눈이 감기지 않았다. 불을 끄면 무서운 일이 펼쳐질 것 같았다. 귀에 벌레가 들어가진 않을까.. 화장지를 돌돌 말아 귀를 틀어막고 침낭 속으로 쏙 들어가 잠을 청했다, 에어컨, 선풍기 하나 없는 방 안에서 온 몸이 땀에 젖을지라도 침낭의 보호가 필요했다.


이틀 사이 천국과 지옥을 맛본 기분이었다. 확연하게 달랐던 숙소 컨디션에 또 부부싸움을 했지만 덕분에 ‘이게 현실이구나’ 주제 파악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날을 계기로 서로의 여행 스타일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숙소가 여행의 90%를 차지한다. 숙소만 좋다면야 볼 게 없어도 집에만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여행을 할 수 있다. 반면 남편에게 숙소란 그저 눈감고 누워 자고 다음날을 시작할 수 있는 곳이면 된다. 서로 다른 점을 알았으니 이제는 좀 더 편안한 여행이 되지 않을까.


극과 극 숙소 체험
이것도 그의 큰 그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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