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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Jul 04. 2020

위기의 부부

이불밖은 위험해!

새벽 공기가 습하고 후덥지근하다.

이 습한 공기가 새삼 내가 한국이 아닌 동남아 말레이시아에 와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게 했다.


가장 싼 비행기를 타고 떠났으니 도착하는 시간도 어중간한 새벽 5시. 온몸이 찌뿌둥하다.


분명 앞 가방 뒷 가방으로도 다리가 후들후들했는데.. 이제 내 두 손 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나에겐 세계여행이 그저 해외여행처럼 느껴졌다. 캐리어를 끌고 리조트에 가서 잘 차려진 식탁에 앉아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을 찍고 먹는 그런 여행을 생각했다. 나는 세계여행에 진짜 필요한게 무엇인지 모르기에 호캉스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나의 착각 속에 인터넷 면세점에서 주문했던 물건들이 공항 출국심사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주 귀고리, 목걸이, 핸드폰 짐벌, 화장품, 선글라스... 내가 무엇을 샀는지 기억도 안나는 물건들이 양손 가득 내 손에 쥐어져 있다.


정신은 멍했고 빨리 숙소에서 쉬고 싶었지만 숙소 체크인 시간은 오후 3시..

무작정 찾아갈 수도 없었고 공항에서 아침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택시를 타고 가도 될 것을 남편은 처음부터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려 한 것일까 돈을 아껴보겠다고 한 것일까 무식하게 끝까지 대중교통을 고집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나와 전철로 갈아탔다. 출근길 붐비는 열차 안에서 우린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친다는 게 나는 민망하고 창피했다.

그냥 택시 타고 숙소 이름을 말하면 끝인 것을 그는 끝까지 구글맵으로 스스로 찾아가려 애썼다.  물론 그의 열정은 높이 사지만 가기 싫은 사람을 끌고 왔으니 나와 조금이라도 타협을 했다면 우리의 출발은 좀 더 순조롭지 않았을까?


뜨겁게 내려 쬐는 태양과 인생 처음 매보는 60L 배낭과 양손 가득한 면세점 쇼핑백까지.. 플라스틱 쇼핑백을 꽉 쥐고 겨우겨우 버티며 남편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플라스틱 손잡이가 손을 쓰라리게 했다. 한 발짝 때는 것이 곤욕이었으나 나는 애써 참고 있었다. 아니, 남편이 실수하기만을 그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남편이 ‘어? 잘못 왔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폭발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못된 말을 고르고 골라 남편에게 쏟아부었다. 내가 뱉는 말에 남편이 상처를 입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야! 이혼해!, 내가 이럴게 뻔히 보여서 가기 싫다고 한 거야!, 내가 택시 타자고 했어 안 했어!! XX, 이게 뭐야!!’


여행을 반대했던 수십 가지의 이유들이 생각났다. 지금이라도 한국에 돌아가길 바래서 일까, 너는 이런 여자 데리고 절대 여행 못한다는 거를 보여주려고 했을까..

진짜 이혼하면 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나는 나보다 남편이 나를 좀 더 사랑한다는 지위를 이용해 여행 전에도 종종 이혼이라는 단어로 쉽게 남편을 협박했다. 이런 잘 못 된 행동은 습관이었다. 결혼 전 연애 때도 사소한 일로 ‘헤어져’라고 쉽게 말했다. 그때마다 나를 붙잡고 달래주는 사람이란 걸 알아서 인지 그 버릇은 헤어져에서 이혼해로 진화하며 남편을 공격했고 한편으론 남편이 아직도 나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에 안도했다.


 한국을 떠난 지 12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 나는 옛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길 한 복판에서 울며 욕하며 이혼하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렇게 길 위에서 30여분을 싸우다 남편과 타협을 했다.

앞으로 이동할 때는 무조건 택시를 타기로 말이다.  나름 괜찮은 소득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약속 따위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 체 말이다.


첫날부터 부딪친 이 마찰이 앞으로 계속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아서 앞으로 갈길이 더 험해 보여서 길 위해서 나는 더 크게 울었다.

누군가에게는 도전의 첫발을 내디뎌 흥분됐을 세계여행 D+1. 나에겐 인내의 시간 D+1.


평화로웠던 나의 삶이 공중분해되었다.
나는 현실에 안주하며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달리남편왈

장기여행이 처음이었던 나는, 아내를 이끌고 이번 여행을 완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여행의 D+1일 부터 끝나는 D+570일까지 어떻게든 예산에 맞춰 돈을 아껴야 했고 이런 깍쟁이 정신은 이미 뇌세포의 세포핵까지도 침투되어 단돈 천원을 아낄 수 만 있다면 몸으로 때우는 방식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 마음을 이해 해주지 못하는 아내는 늘 나를 "짠돌이"라고 원망했고 이는 곧 싸움으로 전개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한 나 때문에 생긴 것...

세계여행 D+1, 이 여행이 쉽지 않을 것임을 벌써부터 느껴 버렸다...

언젠간 내 큰 그림을 이해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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