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치서핑
여행 전, 한국에 우리 집이 있을 때 우린 여행자들에게 잠자리를 무료로 제공하는 '카우치서핑(couch surfing)'을 했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여 무료로 잠을 재워 준다는 게.. 내 상식에선 용납이 되지도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도난뿐만 아니라 영화에서처럼 어떤 사이코가 와서 강간할지 살인을 할지.. 늘 걱정 많은 나에겐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카우치서핑으로 잠자리를 제공하자! 했을 때 내가 수락한 이유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남편이 간접적으로라도 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고 세계에 대한 궁금증 그 욕구를 해소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처음으로 우리 집에 카우치서핑으로 온 손님은 독일인 남자 ‘닉’이었다. 도난이 걱정되어 그 친구가 오기로 한 전날 미리 온갖 귀중품과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차에 다 넣어두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더군다나 남편이 퇴근이 늦어 나 혼자 독일인을 맞이하게 되었다. 서툰 외국어로 인사를 하고 집을 안내해주고 방을 보여줬다.
남편이 미리 닉에게 주소, 현관문 번호, 와이파이 비번 등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긴 했지만, 그 외 궁금한 걸 물어보는 닉에게 나는 쭈뼛쭈뼛 미소만 지을 뿐. 내가 이해한 게 맞나? 동문서답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하며 배시시 웃는 나와 그 사이의 적막함이 아직 생생해 쥐구멍을 찾고 싶다.
닉 외에도 우리 집에는 중국인 커플, 아이를 둔 스페인 가족, 러시아인, 멕시코 사람 등 다국적 사람들이 다녀갔다. 점점 많은 사람이 오가면서 귀중품을 매일 차로 옮기는 게 귀찮아 그냥 집에 두었지만 없어지는 물건은 없었다. 생각보다 집에는 훔쳐 갈게 없었고 나쁜 이도 없었다. 여전히 그들과 영어로 말하는 건 진땀을 빼는 나였지만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나는 온전히 남편의 욕구 해결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고 카우치서핑을 승낙했지만 남편의 목적은 달랐다는 걸 여행하면서 알았다. 카우치서핑을 제공하게 되면 사이트에 나의 정보가 입력되고 호스트로서 어땠는지 게스트가 코멘트를 달아준다. 그런 정보가 쌓이면서 나중에 우리가 외국에서 카우치서핑을 신청했을 때 우리를 좋게 봐주고 수락해주는 확률이 늘어나는 그런 시스템이다. 남편은 우리의 이력을 만들기 위해 카우치서핑을 시작했다. 그것을 여행하며 남편이 카우치서핑을 신청하는 걸 보고서야 알았다.
역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선 철저한 사람이다.
설마, 나 빼고 모든 사람이 낯선 이에게 방을 내어주고
'welcome'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남편의 롤모델
여행 중 우리는 총 2번의 카우치 서핑을 경험했는데 그 첫 번째가 물가 비싸기로 소문난 싱가포르에서였다.
우리에게 방 하나를 내어준 ‘리’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터미널까지 나와주셨다. 아저씨 집은 위치 좋은 곳의 고층 아파트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좋은 방 컨디션에 깜짝 놀랐다. 리 아저씨 집에는 우리뿐만이 아니라 스위스 브라질 커플이 먼저 머물고 있었는데 벌써 한 달째 무료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역시 있어야 베푸는 건가.. 아저씨는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분이셨고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음으로써 보람과 재미를 찾는 분 같았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중국어와 영어를 모국어로 할 수 있는데 남편은 리 아저씨와 중국어로도 영어로도 소통이 가능했다. 아저씨가 나는 어떤 언어가 편하냐고 물었다. 둘 다 불편한 게 사실이지만 중국어가 편하다고 말해버렸다. 하지만 나는 겨우 HSK 4급 정도의 실력이다. 중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기란 너무 버거웠다. 다들 영어로 얘기하다 내가 못 알아듣는 걸 알고는 아저씨는 따로 중국어로 말해주셨다. 하지만 그것도 못 알아듣는 나는 진땀을 빼며 또다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
리 아저씨는 우리에게 잠자리 제공뿐만 아니라 음식까지 제공해주셨다. 서툰 한국어로 "아침 식사"라고 써주신 포스트잇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저씨는 우리가 싱가포르를 떠나는 날까지 우릴 챙겨주셨고 남편은 아저씨가 베푼 친절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우리가 카우치서핑으로 무료로 잠자리를 제공할 때 우린 스스로가 잘 대접해준다고 생각했다. 비싼 음식을 사주진 못했지만, 한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치킨 정도는 사줬으니까.. 근데 리 아저씨를 만나고 신랑은 느낀게 많아 보였다. 앞으로 자신도 저렇게 베풀 거라는 남편의 말에 나는 아저씨만큼 벌면 베풀라며 자본주의 사상을 드러냈다. 남편은 여행을 마친 지금도 리 아저씨와 자주 연락을 하면서 다시 싱가포르에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두 번째 카우치 서핑은 터키에서 하게 되었는데 '야무르'라는 20대 초반의 여자 호스트였다. 그녀의 집에 대한 첫인상은 상당히 더러웠다. 모두가 깨끗하고 멀끔한 집에 초대하는 건 아니구나 생각했다. 야무르 역시 영어를 잘했다. 그리고 또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온 여자 서퍼도 있었다.
남편과 미국인과 터키인이 만국 공통언어인 영어로 쏼라쏼라 대화를 하는 동안 나는 더 위축되고 작아졌다. 아마 성별이 여자인 친구들이었기에 내가 더 작아졌을까? 도무지 대화 주제가 무엇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상황이지만 나는 애써 억지웃음과 알겠다는 '음흠'의 추임새를 넣으며 대화에 참여하려 애썼다. 하지만 억지 미소에 입꼬리가 아파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너무 힘들고 불편했다. 그녀들도 알았을까? 내가 대화 내용도 모르는데 분위기에 따라 너희가 웃으면 따라 같이 웃었다는걸...
야무르가 알려준 터키의 문화 중 하나가 터키에서는 국민이 죽으면 매장을 할 수 있도록 땅을 준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묻는 것은 고사하고 납골당 가격도 비싸다는 것을 알려주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고 농담 삼아 말했다.
그런데 이 내용은 내가 어떻게 알고 있을까... 나는 여행을 하면서 못 알아듣고 따라 웃기만 하다가 밤중에 남편에게 무슨 이야기 했냐고 묻거나, 아까 식사 때 무슨 이야기 했어? 하고 다시 물어 뒷북을 쳤다. 내가 대답을 해야하는 상황에서는 남편의 옆구리만 쿡쿡 찔러댔다. 이런 상황들은 또 부부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나는 대화에 참여하고 싶어도 남편이 대놓고 번역해주는 건 또 창피했다.번역을 안하면 안해줬다고 난리, 해주면 또 나 영어 못하는거 자랑하냐며 난리. 도대체 어쩌란 걸까?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지만 번역을 안해주는 남편도 짜증나고 대놓고 티나게 통역해줘서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 걸 상대방에 알리는 남편도 짜증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진짜 남편에게 짜증이 났던 걸까, 영어도 못하는데 밖에 나온 내 자신이 짜증났던 걸까?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상황인가. 나는 나 대로 작아지고 위축되고 불편하고 속상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귀찮고 답답하고...내가 영어를 못하는건 남편 잘못이 아닌데 말이다.
터키에서의 카우치서핑이 너무 고단했던 기억으로 남아, 남편에게 다시는 카우치서핑같은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남편의 노력 덕분일까, 운일까... 그 이후로 카우치서핑을 신청해도 아무도 우릴 받아주지 않았고 다행스럽게도 터키가 마지막 카우치서핑으로 남게 되었다.
왜 나는 영어를 못 하는 것일까.
근데 왜 또 외국에 나와 이렇게 곤란한 상황에 놓여야 할까.
휴대용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