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스토리 Aug 11. 2020

리턴 투 코리아

98일 만의 뜻밖의 귀국

인정해라.
내가 다친 거 네 탓이잖아.


뜻밖의 귀국행


기뻐해야지! 떠나던 순간부터 한 시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적이 없잖아.
매일 그리워하고 소망했던 꿈이 이뤄졌잖아! 비록 걷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어야 하지만 누워있는 거 잘하잖아! 웃으렴, 한국이란다.


'MRI 결과 골절입니다. 꼬리뼈에 금이 갔어요. 꼬리뼈 골절은 병원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세요. '


한국인 의사가 한국어로 말한다. 꼬리뼈 골절이라니... 내 생애 단 한 번도 어디 골절된 곳 없이 통뼈로 태어나 튼튼하게 자랐는데 처음으로 골절상을 입었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100일도 못 넘기고 꼬리뼈 골절로 어쩔 수 없이 여행이 중단되었다.


 


'배틀 트립'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라오스 방비앵을 소개한 적이 있다. '블루라군'의 인공 풀인 '시크릿 라군'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뚝배기 라면'을 먹는 장면이 있었는데 여행 중 늘 한식을 그리워하던 나는 물놀이는 싫었지만 '뚝배기 라면'은 먹고 싶었다. 라면에 눈이 멀어 구불구불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40분을 달려갔다.

물놀이도 하고 원하던 라면도 먹고 이제 안전히 숙소로 돌아가면 오늘의 일정은 끝이었다. 주차장으로 가려던 찰나 남편은 시크릿 라군 뒤쪽에 '전망대'라고 쓰인 표지판을 보고 뒷산을 올라가자고 했다. 하지만 난 거절했고 남편 혼자 올라갔다. 20분쯤 지났을 무렵  남편이 오지 않아 찾아 나섰는데 그게 문제였다.



뒷산에서 남편을 찾아 내려오는데 남편이 불러 세웠다.


'여보~ 일로와 봐! 여기 신기한 물고기가 있어'

'싫어~ 귀찮아~ 안 볼래~'

'아 왜!!! 빨리 와봐! 안 보면 후회해!!'

'싫다고~ 안 궁금하다고!!'

'아 진짜!! 안 오면 나 삐진다!!!'


한번 삐지면 오래가는 남편을 감당하기 힘들어 몸을 돌려 남편이 있는 물가로 향했다.


!!!!!!!!!!!!!! 빢!!!!!!!!!!!!!!


물고기를 보러 가던 중 바위에 자란 이끼를 밟고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몸에 전류가 흘렀다. 처음 맛보는 고통에 비명 지르는 것조차 잊었다. 몸이 움직이질 않는데 경사가 있어 몸은 물가로 계속 미끄러져 내려갔다. 남편이 간신히 물 안쪽으로 내려가는 나를 잡아끌어 올렸다.


'괜찮아?'

'아.... 아니... 너무 아파'

'일어날 수 있겠어?'

'아니...'

'119 부를까?'

'헬기... 헬기 불러줘...'

'그건 보험이 안돼'



돈이 없어 가장 좋은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그 서러움을 이렇게 물가에 누워 눈을 질끈 감고 고통은 참아내며 견디고 있어야 할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정말 헬기가 필요한 순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병원에 가려면 다시 비포장도로를 40분을 달려야 했다. 그리고 병원에 가던 도중 2번째 사고가 났다.


!!!!!!!! 쿵!!!!!!!!!


급히 몰던 오토바이가 또랑에 걸려 넘어지면서 우린 미끄러져 날아 땅에 내동댕이 쳐졌다. 아파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점점 현지인들이 구경하려 모여들었다. 그 창피함에 아픔도 잊고 벌떡 일어나 오토바이에 올라타 다시 달렸다.


그렇게 액션 영화 한 편을 찍으며 방비앵 시내의 한 병원에 도착해 X-ray를 찍고 결과를 기다렸다.

'괜찮아~. 약 먹고 쉬어. 3일 후면 나아질 거야. '


한국에 오니 꼬리뼈는 저 자세로 찍지도 않더라... 저렇게 눕느라 얼마나 아팠는데...



 나는 이런 고민을 한다. 아파 죽겠지만 다른 사람은 참을 만 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 정도의 아픔은 견뎌내야 하지 않을까. 엄살 부린다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은데... 내가 아픔도 참아내지 못하는 엄살쟁이 일까봐, 참을 만큼 참을 수 있는 만큼 버티고 참는다. 그래서 버텼다. 하지만 나아질 거란 의사의 말과는 달리 혼자선 눕지도 뒤집지도 못했고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니 허리 쪽이 부은 듯 올라왔다. 쉬면 괜찮아진다고 했는데... 혹시 오진이 아닐까 불안해졌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린 결국 한국행을 선택했다.


여행 98일 만에 돌아온 한국 땅. 내가 그렇게 바라던 한국행이니 기뻐 날뛰어야 할 테지만 난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누워 있어야 한다. 기쁘면서도 안 기쁘다. 이렇게라도 돌아온 게 다행이라고 하기에 고통이 너무 크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었다. 차라리 큰 이상이 생겨서 이제 배낭을 멜 수 없다고 오래 걸으면 안 된다고 정상적인 생활은 가능하나 여행을 그만하시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해줬음 하고 바랬다. 다시 한국에서의 삶을 살아가고 남편도 그것을 받아들여 묵묵히 적응하는 상상을 해봤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충분한 휴식'이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남겼다. 도대체 '충분한' 은 얼마를 말하는 것일까? 1년에서 2년? 아님 반년? 우리 부부에게 그 '충분한'이라는 단어의 차이는 너무 컸다.




보기 싫다는데 억지로 오게 만든 남편이 밉다.
끝까지 내 고집대로 하지 않고
왜 남편에게 다가갔을까...



이전 05화 겁쟁이 세계여행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