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혼자서 모든 걸 담당하던 남편에게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한 처음은 내 기억으론 저녁 10시 비행기를 예매하려고 했는데 오전 10시 비행기를 끊어 놓고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서둘러 공항으로 나가 보았지만 비행기는 이미 하늘을 날아가고 없었다.
또 다른 한국인
터키를 렌트카로 여행한 우리는 자유롭게 여행을 다녔다. 터키에서의 첫 목적지는 성모 마리아 집이 있는 '셀축'이라는 지역이었다. 어둑어둑한 밤 우린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 밤 10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알고 보니 마을 전체가 정전이라 불 하나 없이 어두웠다. 호텔 주인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체크인을 도와주면서 주인이 말했다.
'오늘 너희 말고 이곳에 다른 한국인이 또 예약했어, 하지만 그들도 아직 오지 않았어'
'와!!! 정말?? 신기하다!'
놀랄 일이었다. 이 작은 마을, 그리고 이 호텔에 같은 날 한국인이 예약을 했다니. 굉장한 우연이지 않은가.
남편과 나는 숙소를 배정받고 신이 나서 이야기를 했다. 어떤 사람들일까, 같이 여행할 수 있을까? 한국인을 갈망하는 나에게 이것은 또 다른 동행을 만드는 일이었다.
'똑똑'
문이 열리고 호텔 주인이 사인을 받으러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내민 예약자 명단엔 또 다른 KOREA 가 적혀있었다. 이름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엔 나와 같은 이름이 쓰여 있었다. 알고 보니 남편이 자신의 이름으로 예약을 하고 예약한 걸 잊고 또 내 이름으로 예약을 했던 것이다. 다행히 아저씨에게 사정을 이야기해서 숙박비가 이중으로 나가진 않았지만 너무 웃긴 실수였다. 나는 다음부턴 이런 실수 하지 말고 똑바로 살피고 예약하라며 남편을 단속했다.
같은 실수, 다른 방법
그렇게 숙소 사건이 일단락되고 며칠이 지났다. 두 번째 사건은 카파도키아에서 일어났다. 카파도키아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기 때문에 숙소비가 만만치 않았다. 때문에 우린 또 호스텔을 이용했고 그래도 하루는 인생에 있어서 여기까지 왔으니 동굴호텔에서는 한 번 자보자는 생각에 남편은 큰 마음먹고 10만 원 상당의 동굴 호텔을 예약했다. 호스텔에서 나와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옥상에 올라와 사진을 바삐 찍어댔다. 그날 밤 남편과 침대에 누워있다가 무심코 이메일을 눌렀다. 참 희한한 일이다. 이메일을 확인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여행 와서 메일함을 열어보지도 않던 내가 그날엔 신기하게도 이메일을 확인하고 싶었다.
다른 이름의 두 개의 케이브 호텔...
'여보, 이게 뭐야? 우리가 있는 데가 베드락이지?'
남편도 이메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미 호텔을 예약해두고 다음 날 같은 날짜에 또 호텔을 예약한 것이다. 이런 멍청할 때가... 분명 실수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비행기를 놓쳐 안 써도 될 돈을 썼을 때,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생기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협박했다. 그다음 실수는 금전적으로 손해 본 것은 없기에 참았다. 그런데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났다. 화가 났다. 매일 돈 없다고 적게 시키고 호스텔 도미터리에서 자면서 아낀 돈이 허무하게 날아가고 있으니... 내가 역정을 내어도 마땅하다고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남편을 혼냈다. 내 모든 화를 다 쏟아 낼 때쯤 결국 남편은 눈물을 흘렸다.
남편의 눈물을 보고서야 폭포수처럼 쏟아내던 잔소리가 멈췄다...
나도 알고 있었다. 남편은 벅차했다. 모든 여행의 일정을 잡고, 미리 예매하고, 교통수단을 알아보고, 맛집을 찾고, 갈 곳을 알아보고, 숙소를 예약하고, 사진을 찍고 블로그까지 쓰는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네가 힘들다는 거 알고 있지만 도와주기 싫었어.
나를 기어이 끌고 나온 대가라고 생각했거든.
너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무게라고 생각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