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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Aug 01. 2020

실용주의 아내, 낭만주의 남편

어긋난 이벤트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그리고 너와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 여자가 있다. 유독, 배고픈 걸 잘 견디지 못하고 특히 아침에 밥을 못 먹으면 예민한 여자다. 역사, 문화, 여행, 그림 쪽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집에서 뒹굴고 영화 보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게 되는데 남자는 스위스-프랑스-영국 루트로 자유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에 관심이 없던 그녀는 모든 여행의 일정을 남자가 혼자 짜도록 내버려 두었고 쇼핑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만 했다. 쇼핑을 한번 시작하면 한 번에 사는 법이 없고 A부터 Z까지의 가게를 둘러보고 선택하느라 6-8시간이 걸리는 것을 알고 있는 남자는 11일간의 일정 중에 쇼핑을 가장 마지막에 집어넣었다.


파리에 도착해  하루라도 빨리 유명 아울렛에 가고 싶던 그녀는 남자에게 쇼핑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남자는 모든 일정을 계획해 두어 일정을 바꿀 수 없었다. 세상에 궁금한 게 많은 남자는 공부를 좋아했고 박물관을 좋아했다. 그래서 파리에 모든 박물관을 가볼 생각이었다.


이른 아침, 조식을 급하게 먹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오늘 남자의 일정은 오르세 미술관을 관람한 후에 루브르 박물관을 보고 조르쥬 퐁피두 미술관까지 둘러봐야 하는 쓰리 박물관 패키지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여자는 오르세 미술관을 본 지 2시간이 지났을 때부터 칭얼대기 시작했다. 남자는 알겠다며 달래고 2시간을 더 둘러보았다. 미술관에서 나온 여자는 이제 밥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벌써 행복감이 밀려왔다. 신고 나온 웨지힐이 다리를 딱딱하게 굳게 했지만 곧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참고 있었다.


하지만 오르세 미술관을 나와 남자가 입장을 바꿨다. 시간도 없고 저녁에 근사한 곳에 데려갈 테니 조금만 더 참으라고 여자를 다독였다. 그리고 남자는 두 번째 루트인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예약 시간 때문에 밥을 먹을 시간이 부족했던 남자는 식욕 말고 지적 욕망 채우기를 선택한 것이다. 화가 난 여자와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여자가 이해되지 않는 남자는 입구에서부터 말다툼을 했다. 결국 6시간 동안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따로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날이 저물어 버렸고 아쉽게도 남자는 세 번째 박물관까지는 가지 못했다.  


이제는 여자의 텅 빈 뱃속을 채워주어야 할 때다. 남자는 계획대로 미리 찾아 놓은 맛집으로 안내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요리인 달팽이 요리와 푸아그라를 먹는 곳이었다.

눈앞에 달팽이 6마리가 녹색 소스를 바른 채 놓여 있고 스팸 한 조각으로 보이는 거위 간이 빵과 함께 놓여 있다. 달팽이를 후벼 파 보니 홈런볼만 한 크기의 달팽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전부터 배고픔을 참아 온 여자는 너무 황당했다. 개눈 감추듯 달팽이 6알과 푸아그라를 먹고 나니 메뉴판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메뉴판의 가격을 보고 여자는 눈물을 참으며 내려놓았다. 온종일 굶으며 기다려온 대가가 고작 달팽이 6마리와 한 입거리 거위 간이라니.... 레스토랑을 나와 여자가 불만을 토했다. 남자는 열심히 검색해 찾아낸 달팽이 요리 맛집을 여자가 무척 좋아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은 봐주지 않고 배가 고프다고 우는 여자에게 실망했다. 여자의 얕은 참을성은 이미 바닥나고 없었다. 결국 남자와 여자는 따로 호텔로 돌아왔다. 그 둘은 결국 프랑스를 떠나는 날까지 서로 등을 돌린 채 프랑스를 떠났다.


그 남자와 여자는 2015년 8월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간 우리 부부의 이야기다. 나는 아직도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남편은 여전히 내가 원하지 않는 이벤트를 계획해 나를 화나게 한다.








그로부터 3년 후.

나는 또 화가 나있고 남편은 또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섭섭해한다.

남자와 여자가 애초에 다르고 그중 너와 나는 너무 달라 부부 이름까지 '달리부부' 라고 이름 지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세계여행을 시작한 후, 밥은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라 허기를 채우는 것, 식당에서 음료를 시켜 마시는 것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특혜로 자리 잡았다.

이 날 역시도 우린 오늘의 일정이 있었고 호스텔에서 제공해주는 식빵에 잼을 발라 몇 조각 먹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부실하게 먹은 터라 배가 고픈데 남편이 이상하게 점심을 사주지 않았다. 저녁에 멋진 곳에 가서 먹으니 그곳에서 많이 먹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경험에 의해서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설마, 달팽이 6마리는 아니지?'

'응, 아니야 뷔페야, 뷔페'


뷔페라는 말에 엔돌핀이 샘솟았다. 오늘만큼은 비싼 식재료를 공략해서 양질의 음식을 먹으리라 다짐했다.

들뜬 마음으로 저녁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남편은 완벽한 이벤트를 위해 나를 로비에 두고 혼자서 뷔페 입장 티켓을 사러 갔다. 4시 반 타임 입장에 먹을 수 있는 시간은 2시간 제한. 시간이 되어 남편의 손을 잡고 입장한 곳은... 고기뷔페도, 해산물 뷔페도 아닌 과일 뷔페였다.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제 서로를 알았을만한데 남편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저번보다 더 화가 났다. 여태 배고픔을 참아가며 밥 한공기도 나눠먹으며 버텨왔는데...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이 과일 뷔페로 날아간다니... 울화가 치밀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한바탕 울고 욕을 한 바가지 한 후 현실을 받아 드렸다.


그래도 무제한이지 않은가...

 맛있는 망고, 익숙하지 않지만 매력 있는 두리안, 달콤한 과일들로 하루 종일 텅 비어 있던 뱃속을 채워 넣었다.

배가 부른 건지 물린 건지 모를 이상한 포만감이 들었다. 배가 부른데도 배가 고팠다. 아무리 과일들로 꽉 채워도 채워지지 않을 허기가 느껴졌다. 밥을 먹고 싶지만 예산이 부족해 더 먹을 수도 없었다.


알고 보니 이곳의 뷔페는 방콕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와 세트 상품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맛있는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아름다운 방콕의 야경도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을 텐데...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나를 만나 낭만 찾기가 참 어렵다.


 동남아를 여행하던 6개월이라는 시간이 우리가 가장 열심히 그리고 자주 싸웠던 때이다.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해주기만을 바래서 계속해서 싸웠던 것 같다. 그냥 포기하면 편한 것을... 그때는 맞춰야 사는 줄 알았다.


 




만약 내가 배고픔을 잘 견뎌내는 사람이었다면
너의 이벤트는 성공이었을까?




달리남편 한마디


지금도 나의 "낭만주의" 행위에 대해 변론을 늘어 놓고 싶은 것을 보면 아직도 내가 한 행동을 정당화 시키려고 하는 버릇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설령 나의 "낭만주의"를 위한 행동이 정당화 되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나의  낭만은 고스란히 전해 질 수 있을까? 


부부관계에 있어서 때론 포기가 정답일 때가 많다

이번 일로 하여금 원만한 부부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 "포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혼의 첫날부터 백년해로를 하는 날까지 "부부"라는 한 단어로 표현이 되지만 "남""남"이라는 두 단어의 의미도 내재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문제로 모순이 생기고 해결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쪽, 또는 양쪽에서 상대방을 이해시키려는 것을 포기 하고 서로의 다름을 마음속으로 인정을 한다면 부부관계는 어느순간 더욱 단단해 지고 사소한 충돌도 더이상 두 사람 사이에 생겨 날 틈새도 없어 질 것이다.


그래서, 나의 "낭만주의"행위에 대한 변론은 더이상 안 하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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