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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Aug 02. 2020

도시파 여자의 탈선

사람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

싫어하는 여행을 억지로 나와 투덜대며 여행하던 내가 반해버린 여행지 미얀마의 바간.
그곳에서 고요함, 적막함이 주는 평온을 알게 되고 일출과 일몰에 반해 눈물을 흘리는 여자가 되었다.



'시골 싫어, 무조건 집 밑에 바로 편의점이 있고 카페도 있고 모든 편의시설이 다 갖춰있어야지'


연애 때 남편에게 했었던 말이다. 화려한 도시 야경을 좋아하고 동네에 백화점, 마트가 있고 병원도 가깝고 맛집도 많고 모든 게 다 갖춰진 곳에서 살아가길 원했던 도시파 여자는 사실 시골 소녀였다. 깡촌까진 아니지만 서울은 20살의 나에게 우물 밖 세상이었다. 오죽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서울 나라'라고 했을까...

처음 타 본 지하철은 내리실 문이 왼쪽이라는 방송이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오는 열차를 타야 하는지 알게 되는데 한참이 걸렸다. 모든 게 신기했던 서울살이는 낯설었지만 편리했다. 밤에도 사람들로 가득하고 밝게 켜진 가로등은 안전하게 느껴졌다. 늘 시끌 버쩍한 서울이 마음에 들었다. 잔병이 많은 탓에 건물 층층이 병원이 있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서울에서 10년 가까이 살다 보니 도시 여자가 되었다.






'이곳에서 4박 5일을 어떻게 버티지?'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스쿠터에 올라타 달린다. 호스텔에서 알려준 일출 명소를 찾아 탑에 오르고 해를 감상하기 좋은 장소를 선택해 벽에 기대어 조용히 일출을 기다린다. 사람들은 있지만 누구 하나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숨죽여 오늘의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구름이 바다처럼 펼쳐져 신기루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내가 느끼는 감동을 함께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해가 다 떠오르고 날이 밝으면 모였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라진다. 몇 백년 전에 지어진 탑에 오로지 나 홀로 남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이곳에 그 고요함을 뚫고 새소리,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 온 느낌이다. 이렇게 감동적이어도 되는 건가. 혹시 나는 전생에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 사람이었나? 생각이 들었다.



길게만 느껴졌던 4박 5일을 나는 생각보다 잘 버텼다. 아니, 누구보다도 잘 즐기고 있었다.

바간에 있는 동안 이상하게 잠을 제일로 좋아하는 내가 새벽에 부지런히 일어나 오토바이에 올랐다. 처음엔 남편에게 이끌려 졸린 눈을 비비고 하품을 쩍쩍하며 피곤해하던 내가 하루 만에 스스로 일어나 일출을 보러 갈 준비를 했다. 처음으로 본 바간의 일출과 일몰이 퍽 마음에 들었다. 일출, 일몰 명소라고 정해진 곳은 있지만 굳이 거기로 가지 않아도 된다. 지나가다 봐둔 곳, 동쪽으로 텅 비어 있어 해가 떠오르는 게 잘 보이는 곳이면 된다. 그리고 무너지지 않아 오를 수 있는 탑이면 된다.


멍하니 바간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제대로 된 상점 하나 없이 아스팔트도 깔려있지 않아 흙먼지를 뒤집어써야 하는 이 곳이 마음에 든다.


 마침 우리가 갔던 때는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축제인 '빛의 축제'기간이었다.  현지인과 관광객이 모두 모여 탬플을 촛불로 가득 매우고 풍등을 날리며 소원을 빌었다. 서울 야경과 다른 탬플의 야경은 화려한 야경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수천, 어쩌면 수만 개의 촛불들이 모여 넋 놓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렇게 행복하려고 지금까지 힘들었나 보다. 내가 전혀 관심 없던 뜻밖의 장소에서 위로를 받고 감동을 받는다.


 그때부터였을까... 사람이 붐비는 곳에 가면 어지럽고 답답한 느낌이 든다.. 말 그대로 기가 빨리는 것 같다. 바간은 그렇게 날 조금씩 바꿔 놓았다.





어쩌면 방콕이라는 소음으로 가득한 곳에 있어서
 고요함이 절박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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