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꼰대가 된 당신이 주인공으로 살던 법
꿈을 꾸고 있다. 꿈속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고 있다. 오늘 하루가 천천히 재생되고 이후에는 어제 일이 재생되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빠르게 지나간 어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그의 인생을 전부 보여줄 듯이, 빠르게 되감아지는 인생 속에서 그는 점점 어려지고 있었다. 너무 익숙해서 지루하기까지 한 일을 서투르게 처리하고 있는 그는 지금과 다르게 주름하나 없이 팽팽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너무 뻔한 일이라 시작하는 순간에 결과가 보이는 일에서도 실수를 하고 회사일에서 신기한,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있는 그는 젊다 못해 어려 보였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돌아보는 자신의 삶은 좌충우돌이었다. 저쪽으로 가서 부딪히고 이쪽에서 깨지고.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들이받고 받아들이고 밀어붙였다.
그렇게 자신이 살아갈 영역을 조금씩 조금씩 넓혀냈다. 젊어지고 어려질수록 더 최선을 다해 세상에 달려들고 있었다. 그런 자신을 보며 작은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된 것은 아마도 지금은 얻어낸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려진 그는 아픔 따위는 모른다는 듯 당당하게 행동했지만, 사실 그는 매일이 불안했다.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지? 이게 안되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이제라도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나? 별의별 고민이 머리에 맴돌았다. 하지만 그걸 밖으로 내보여주진 않았다.
보여주더라도 농담처럼 휘익 던지고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때는 부모님에게 당당하고 싶어서, 애인에게 믿음직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생각했었다.
하나 그때의 자신을 이렇게 다시 바라보니 불안함을 표출하는 것이 무서웠던 것 같다. 불안해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에게 불신과 자괴감을 줄까 봐 두려웠다. 그렇기에 가슴을 펴고 당당한 척하며 턱을 치켜세웠다.
나 자신을 부풀려서 불안한 마음을 감추려 했다. 그렇게 당당한 모습 뒤로 멈춰 설 때마다 발바닥으로 땅을 비비는 모습이 보였다.
디디고 있는 현실이 불안한 것인지 서있는 자세가 불편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당당하게 보이고 싶어서 상체는 꼿꼿하게 세운 상태로 아주 조금씩 발만 문질러서 선 자세를 바꿔보고 있었다.
젊다 못해 어려지고 이제는 요령조차 없어서 겁먹지 않은 척하는 것까지 배우고 있는 자신을 보며 그는 다시 한번 웃었다. 이번에는 미소가 아니라 조금 큰 웃음이었다. 괜히 눈이 시큰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지금은 아닌 척하는 것이 익숙해져서 전혀 티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이쪽에는 신경도 쓰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척할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숨과 잠깐의 사색으로 자신의 감정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단단하게 닫아서 불안한 마음이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도록 마음을 덮어 둘 수 있었다.
그 시작점에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면 다리를 달달 떨기도 하고 손톱을 깨물기도 하는 자신이 귀여워 보였다.
아직 다 빠지지 않은 젖살이 저렇게 다리를 떨어대고 주변을 살핀다고 고개를 휙휙 돌려대다가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린 그에게 자잘한 불안은 떠안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때의 그에게는 이렇게 말해주는 어른이 없었다.
저 불안들을 모두 떠안고 있다가 삼십 대가 되어 한순간 터지는 날이 왔었지만 어릴 때의 그는 그것을 몰랐고 지금의 그는 그저 그랬었던 일이었다. 그렇기에 또다시 어린 자신에게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다음으로 흘러간다.
인생 되감기는 한참이나 더 이어졌다. 보고 있는 그조차도 이렇게나 많은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젊을 때를 보며 좌충우돌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린 시절로 넘어가자 젊은 시절은 좌충우돌도 아니었구나 싶었다.
이쪽은 전력질주였다. 앞에 벽이 있는지 아닌지 신경도 쓰지 않고 냅다 들이받고 있었다. 그러고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서 다른 쪽으로 달려간다.
신기할 정도로 상처를 많이 받고 연약하다. 하루는 친구의 가벼운 말에 좌절하고 하루는 무관심한 부모님의 말에 상처받는다.
아이의 살처럼 포동하고 부드러운 마음이 매일같이 세상에 부대끼며 생채기가 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달려가 쾅하고 부딪혔다.
친구와 말투 때문에 싸우고 이내 화해했다. 친구가 사과하는 것에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짝사랑하는 아이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다. 그리고 친구들은 그것을 가지고 놀린다. 괴롭고 힘들고 창피하지만 이내 다른 친구가 차인 것에 동조하며 웃으며 놀린다.
그들의 진심은 나를 위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것에는 상처받지 않아야 한다고 느꼈기에 웃으며 넘어간다.
가끔은 수줍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 부모님에게 사랑을 전하기도 한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는 아기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여서, 행복해 보여서, 그냥 한 번 마음이 내킨 덕이었다.
효과는 좋았다. 엄마는 다시 한번 해달라고 매달리고 아빠는 용돈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쑥스럽고 부끄럽고 괜히 창피하면서도 어린 그의 기분은 좋았다.
모든 것에 진심인 시기였다. 전력으로 뭔가를 하던 시기였다. 지금은 필요한 만큼의 힘만 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요령이란 말이 지금은 긍정적인 느낌이지만 어릴 때의 요령은 지름길만 찾는 꼼수처럼 느껴졌다. 아주 사소한 것에도 최선을 다해 달려드는 저 모습들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때가 묻은 것처럼 부끄러워지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자신을 감추고 싶으면서도 계속 저 어린 모습을 보고 싶었다. 모든 순간에 집중하고 있는 저 모습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열정. 그래, 그리고 정열. 마음이 끓어오르던 시기. 마음이 항상 임계점에 도달해 있어서 아주 작은 계기에도 뜨겁게 불타오르고 한순간에 집중해 달려 나갈 수 있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주변의 아이들 모두 각자의 임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달려 나가는 아이도 있고 아직 방황하는 아이, 준비하는 아이, 그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마음이 터져버려서 끝없이 우울한 아이까지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서투르게 다독이면서도 진심을 느낄 때면 상황과 관계없이 진심을 나누곤 했다. 상황은 중요한 것이지만 상대의 진심이 느껴진다면 그리 크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마음이나 행동, 아주 작은 변화로 인해 주변의 환경이 바뀌곤 했다. 부모님의 행동이 바뀌고 어울리는 친구가 바뀌기도 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세상이 바뀌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어릴 때의 그는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럴 리가 없다고 느끼면서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매일같이 불쑥 일어났다.
선생님이나 어른들은 너희들 인생의 주인은 너라고 말해주었다. 주인공이 많으면 그만큼 분량은 쪼개지기 마련이다. 그랬기에 그는 진짜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 방법을 찾고 싶었다. 행복한 영화의 결말이 빠르게 다가와주길 원했다.
어른들은 대학에 가면 행복해지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에 속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속지 않았다. 조금만 찾아봐도 대학생 형들이 하소연하는 이야기들이 널려 있었다.
속지 않았음에도 일단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주변의 압력에 굴해서 공부를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것을 어릴 때의 그는 주인공이 되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진심으로 느끼지 못한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그 ‘준비’는 대충 이루어졌다. 다행히 그는 미리 주인공이 되기 위해 준비가 꼭 필요하다고 느꼈기에 공부에도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저 때 죽어라 공부를 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는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도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찾지 못했다.
어쩌면 자신은 체념을 잘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딱 봐서 아닐 것 같거나 너무 큰 노력이 들 것 같으면 시작도 전에 마음을 접곤 하니까. 하지만 어릴 때의 자신을 봐서는 그건 선천적인 재능은 아닌 듯싶었다. 세상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스킬이라고 봐야 할 듯했다.
꿈은 점점 더 어린 자신을 보여줬다. 어린이가 된 그는 매일 최선을 다해 뛰어놀았다. 학교를 들어가기 전에서야 학원이나 공부에서 해방된 그는 시간을 쪼개가며 놀고 있었다.
저 때의 주인공은 엄마와 아빠였다. 무조건 내편인 엄마와 아빠가 나만 바라봐주길 원했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블록을 쌓아서 탑을 만들고 엄마를 부른다. 아빠처럼 배를 내밀고 걸은 후에 아빠를 바라본다. 엄마와 아빠가 떠드는 것을 보다가 그 말투를 따라 한다.
순간순간이 모두 엄마와 아빠에게 고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엄마와 아빠는 아이의 모든 순간에 집중하려 한다. 서로에게 집중되어 있기에 가족은 더 단단해지고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기에 따뜻해진다. 그 행복한 순간은 전염되며 미소를 동반한다.
그는 한참이나 미소를 지으며 작고 서투른 가족의 행복을 바라보았다. 자연스럽게 집에 있을 아내와 두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다.
조금이라도 더 잘해줘야지. 관심을 줘야겠다. 오늘도 술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빠들이 하는 다짐을 하고 있음을 알지만 그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술이 깨고 나서도 계속 잘하면 되니까.
그렇게 수백 번도 더 했을 다짐을 한다. 집에 돌아가면 술 먹고 친한 척한다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혼날 테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시 웃음이 터졌다. 그것마저도 좋다고 느껴졌다.
웃으며 갓난아이인 자신을 본다. 순간순간을 넘어서 모든 시간을 쪼개고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자신만을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의 젊은 시절을 보았다.
한숨을 내쉬는 것조차 놓치지 않고 간단한 단어를 뭉개지게 발음했다는 것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뻐하는 그들을 바라본다.
아기가 몸을 뒤집는 것에 행복해하고 그저 바라보다가 한번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얻은 듯한 기쁨을 보이는 이들을 바라본다.
아기가 된 그는 그저 그들이 좋아해 주니까 다시 한번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려 한다. 그렇게 아기는 행동을 배우고 단어를 배우고 있다.
좋아하는 감정, 사랑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아기와 젊은 엄마, 아빠에게는 그것만이 모든 것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가 아기를, 그를, 인생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더없이 행복한 그 순간을 통해서 이 서투른 가족은 서로가 주인공이 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는 하염없이 아기와 젊은 엄마와 젊은 아빠를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알았다. 이유 모를 그 눈물이 흐르는 것을 그냥 그대로 두었다. 굳이 닦아내고 싶지 않았다.
이 감정에서 억지로 헤어 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한참이나 더 작은 가족의 행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