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어른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느린 일기 - 아픈 기억은 세월에 불려야 잘 씻겨 내려가더라

by 블랙스톤

2023년 11월 15일 수요일

하늘은 흐린데 습기가 별로 없어 시원하고 때론 선선한 바람


집에만 있다가 친구들의 연락을 받았다. 몇 년 전에 같이 일하며 친했던 동생과 만나기로 했다고. 오래간만에 만난 동생은 내게 잘 될 거라며 희망적인 이야기만 해주었다. 술자리에 앉자마자 친구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네가 잘 될 리 없다며 낄낄댔다. 이상하게도 그놈들이 낄낄대니까 나도 웃음이 나왔다.

가라앉은 표정으로 나온 나를 보고 동생은 멈칫하고는 말을 붙이지 못했다. 친구들은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고 내 표정이 썩었다며 손가락질을 하면서 놀려댔다. 잠자코 있던 내가 욕을 하자 친구들은 갑자기 웃어댔고 나도 따라 웃었다. 웃으며 서로 욕을 하고 또 웃어대는 우리가 이상한지 동생은 한참이나 말이 없이 눈만 굴렸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일 년에 두 번이나 회사를 때려치우고 집에만 처박혀 있는 내게 욕을 해대도 되는 것인가 분위기를 파악하는 듯했다.

며칠이나 집에 틀어박혀 나를 다독인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의 말이 거슬리거나 낄낄대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들의 말은 평소와 같았고 쪼그라든 내 마음도 그 거친 말투나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행동에서 어떠한 악의도 느끼지 못했다. 새삼 달라진 것은 없고 그저 나만 겁을 잔뜩 먹은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내 상황을 심각하게 말하지 않는 녀석들 덕분에 나도 조금 가볍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만 더 나를 편하게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워야 할 자리에서 즐겁지 않은 이유가 나일 필요는 없으니까.


잠시 후 동생도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슬쩍슬쩍 나를 놀려가며 이야기에 참여했다. 나를 칭찬하는 기본자세는 두되 눈치껏 견제와 유머를 섞었다. 한참이나 서로의 허물을 들추다가 과거의 허물까지 찾아대던 우리는 이내 본 주제로 돌아와서 여행 이야기를 시작했다. 갑자기 내 이야기는 뒷전이 되어서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자니 동생이 슬쩍 오늘 위로하러 모인 거 아니냐고 물었다.

친구들은 지 일인데 자기가 제일 잘 알아서 하겄지, 하며 그래서 여행을 갈 거냐 말 거냐, 국내냐, 해외냐, 날짜는 어떻게 해야 하냐, 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보니 나도 거기에 끼어들어서 여행 가서 먹을 메뉴를 정하고 있었다.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이게 맞다! 싶었다.


곱씹어서 소화가 되는 것들은 곱씹는 게 맞지만 어느 정도 곱씹어도 소화가 안 되는 것들은 훌훌 털어야 한다.

그것들은 나중에 언젠가 어? 하고 기억이 날 때쯤 다시 한번 곱씹으면 소화된다.

그릇을 물에 불려야 설거지가 잘 되듯이 아픈 기억은 세월에 불려야 잘 씻겨 내려가더라. 불지도 않은 그릇을 죽어라 문지르면 닦이긴 해도 그릇에 상처가 남기 마련이다.


친구들은 여행을 가자면서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들만 해댔다. 등산은 평소에 하지도 않으면서 소백산 종주를 해보자는 둥, 한 일주일 정도 휴가 내서 여행 가고 싶다는 둥.

-마트 계열은 교대근무가 기본이기에 신혼여행이 아닌 이상 사나흘 빼기도 힘들다.


이번 여행에서는 술을 최대한 자제하자는 둥.

-동생이 빵 터졌다. 이십 대 초반부터 시작된 우리의 여행은 그야말로 술의 역사라고 봐도 된다. 오늘도 술을 마시며 여행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저번에 식대만 백만 원이 나왔으니 이번엔 반으로 줄이자는 둥.

-반으로 줄이면서 지역 맛집은 빼놓으면 안 된다고, 이건 뭐, 가서 먹고 접시 닦자는 건가.


이런 멍청한 놈들, 에휴, 싶으면서도. 고마웠다. 일부러든 일부러가 아니든 아무런 일이 아닌 듯 아무렇지 않게 대해줘서 나도 툭, 앞으로 나 한동안 술값 못 낼 거야 좀 얻어먹어야 될 시기가 왔다, 했고 친구들은 그래, 그런데 여행 어디로 갈 거냐고!로 이어졌다.


서로 욕하고 일상적으로 서로의 흑역사를 꺼내고 웃고 떠드는 그 시간이 조금씩 나를 수습하고 있다. 과거를 꺼내고 웃어대는 이 시간이 있기에 어제까지 아파하던 내 시간도 조금만 더 지나면 웃으며 놀려댈 이야깃거리라는 걸 알았다. 나 혼자 나를 보듬고 추스르던 시간도 분명히 필요했지만 이제 친구들과의 시간이 더 필요한 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처음 나를 돌아보지 않고 친구들을 만났다면 농담도 받지 못할 상태의 나를 보고 함께 가라앉았을지도 모른다. 위로라는 이유로 함께 슬퍼했겠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내 상태를 직시하지는 못했을 거다. 친구들을 봐서라도 대충 털고 일어나려 했을 테니까. 하지만 내 상황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시간을 들여 내 마음을 토닥거린 지금은 친구들의 농담이 오히려 기껍다. 평소처럼 대해주는 것이 고맙다. 친구들에게 너무 바닥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느꼈다.

아, 너무 놀림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술자리에 앉기도 전에 벌써 내 표정이나 자세가 잔뜩 쫄았다고 비웃었는데 나중에는 엄청 심하게 놀려질 것 같다. 빨리 정신 차려야지.


첫 번째 느린 일기는 여기서 끝이다.

그리고 다시는 실패하고 싶지 않다. 실패 이후 나를 추스르는 시간이 너무 아프더라. 어렸을 땐 넘어졌다 일어나는 것처럼 가볍게 툭툭 털고 일어났는데 나이가 드니 짊어진 세월이 함께 무너져 그것 하나씩 주워 담는 시간이 필요해졌다. 나라는 사람은 그 기억들을 대충 주워 담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하나씩 주워 담을 때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고 내가 잘못한 것들을 후회하느라 더 시간이 걸리더라.






이후에 11월은 할머니와 함께 집에서 앉아 한참이나 멍하니 있었다. 가끔 시골에 다녀왔다.

12월부터 여행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가끔씩 멍하니 있었다.

외할머니와 집에서 한참이나 떠들기도 했다. 보청기를 바꿔드려야 하나 목이 너무 아팠다.


단기 알바를 시작했다. 바 동생이 멍하니 있으려면 가게에 나와서 멍하니 있으라 하더라. 덕분에 주방에서 웍질이나 하면서 멍 때렸다.

-내 기나긴 마트 경력에는 즉석조리 코너와 수산 코너가 있다.


단기 알바기에 한두 달 정도 일했다.

-동생도 사람을 지속적으로 쓸 만큼 장사가 잘되지는 않는다.


동생의 말대로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단골들과 한참이나 수다를 떨곤 했다. 주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생계를 고민하면서도 음악은 놓지 않았다. 공장을 다니며 밴드를 결성하고 공연을 하고. 혹은 회사원으로 살면서도 시간을 쪼개 연습을 하고 무대에 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형편이 넉넉해서 취미로 음악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끔은 철학을 하거나 카이스트에 다니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쿠팡에서 일하는데 전직 드러머인 사람도 있었다. 술은 잘 못하는데 소주 공장 생산 라인에서 일하며 매일 일하는 라인에 서서 소설을 구상하는 사람도 있고 게임 방송 MC를 꿈꾸는 전직 선원도 있었다. 세상의 다양한 꿈들이 홍대 지하의 바에 모여 제각기 꿈꾸는 세상을 떠들어댔다. 때론 웃고 때론 짜증 내고 어느 날은 떠나간 꿈들의 잔해를 치우며 사장이 꿈꾸는 사람이니 단골들도 여직 꿈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오는구나 싶었다. 역시 끼리끼리는 진리인가.


어느 날부터 방에 앉아 사부작사부작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냥 멍한 날은 바에 가서 앉아 있었다, 어떤 날은 웍질도 했다.

-동생은 부담스러워했지만 지인의 무료 봉사라는데 마다하는 사람은 없다.

-덕분에 멍한 날이면 가서 웍질 몇 번 하고 칵테일 몇 잔과 소주를 먹을 수 있었다.


곧 두 번째 느린 일기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실패를 실패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하드코어 인생, 원 코인 클리어로 가는 인생이다. 도대체가 끝을 모르고 계속 이어지는 게임이다. 가다가 자빠진다고 게임 오버가 뜨지도 않는다. 기록은 엉망이 되었지만 게임은 계속 돌아가고 있고 리셋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저장 포인트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템이 생기거나 좋은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도 하고, 의식하지 않았던 눈뭉치가 조금씩 구르더니 어느새 눈덩이가 되어 내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내가 그만두려 하거나 포기해도 계속 돌아가는 게임인데 내가 편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 이 게임은 자비도 없어서 웅크리고 있으면 계속 더 때리더라.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찾고 있다. 더 높고 먼 곳만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 중에 하고 싶은 것들을 찾으며 나를 토닥 인다. 실패 덕에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고 슬쩍 내게 헛소리를 건네기도 한다. 소소한 재미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소소한 것들이 생각지도 못하게 뭉칠 때 예상하지 못해서 그런지 더 즐겁더라. 꼭 누군가 주는 공짜 보너스 받는 기분. 사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 인생게임의 나중에 보게 될 뒷부분이 두렵고 무섭기는 하지만 사실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곧 퇴직금을 다 까먹으면 생활비를 위해서라도 다시 일을 해야겠지만 지금은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고 있는 현실이 꽤 만족스럽다. 돈만 있으면 인생 살기 편하다고 하는 이유를 꼴랑 퇴직금을 까먹으며 체험하고 있다.


글은 어차피 계속 써오던 거기에 실패라고 느끼고 싶지 않다. 게다가 일이라고 느끼지도 않는다.

그저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시기가 유예되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이십 년이 지나도 포기할 수가 없다. 이십 년이나 때려 부어서 그런 걸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작은 마이크로 육각형 인간이었다. 뭐든 초보자에서 머무는 사람, 그래서 모두를 질투했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질투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신경 쓰느라 나만 피곤해진다.

-그중에 그나마 글쓰기가 가장 뾰족했기에 포기할 수가 없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는, 혹은 해본 것들 중에 제일 덜 질리고 재밌는 일이기도 하다.


그냥 글은 숨 쉬듯이, 생각날 때마다 적어왔지만 조금만 본격적으로 일기가 아닌 글을 써보고 싶었다. 언제나 꿈만 꾸던 거 그냥 꿈으로만 끝나면 그 달콤함에 계속 꿈만 꿀 테니까 조금 현실을 보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현실을 봐도, 조금이나마 현실로 겪어도 꿈이 너무 달다. 차마 눈을 돌릴 수가 없다.


마흔이 되어서도,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으면서도,

나는 꿈이 너무 좋다.


그래서 나는 실패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실패가 익숙해지면서 그것도 그것대로 그냥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빠진 상태로 보는 세상도, 꿈도 생각보다 이쁘다. 무조건 이쁘지는 않지만.


첫 번째 느린 일기.

-마흔, 아직도 어른이 되는 방법을 모르는 사십춘기 어른이의 투정 일기.


아마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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