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마지막 일탈

느린 일기 - 아주 조금만 더 삐뚤어져보기로 했다

by 블랙스톤

2023년 10월 29일 일요일

하늘은 맑음 바람도 솔솔


출근했다. 원래 일요일은 쉬는 날이지만 현장에서 공사기간이 빠듯하다고 주말도 일하기를 원했다. 우리 팀은 모두 쉬었지만 특별히 할 일 없는 나는 출근했다. 출근하는 길에 유난히 하늘이 맑고 높았다. 바람은 차갑지 않았고 살짝 살랑이는 것이 햇볕이 따갑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딱 놀러 가기 좋은 날씨. 출근 시간이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뻥 뚫린 도로를 신나게 달리면서도 이 길의 도착지가 현장이라는 것을 외면하고 싶은 날씨였다. 차에서 내리면서 내가 정말 여행지에 도착한 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만약 쉬었다면 진짜 내가 여행을 떠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웃음이 나왔다. 절대 그럴 리 없지. 집에서 쉬었다면 이불밖으로 나오지도 않다가 오후쯤 일어나 창 밖을 보며 날씨에 감탄하고 베란다 문을 열어 그저 밖을 내다보았을 것이다. 뭐든 구경이 제일 재밌는 법이다.

오늘의 현장은 사람이 많지 않아 조금 마음이 편했다. 사실 내가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주말이든 평일이든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사람이 많든 적든 그것 또한 다를 바가 없다. 나는 그저 나와 조를 이룰 짝꿍이 하라는 대로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이 적어 마음이 편한 건 그만두기로 한 이후 어쩔 수 없이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늘어지면 그럼 그렇지, 하는 시선이 느껴지는 느낌이라 괜히 나 혼자 더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 면에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청라에 다시 들어온 이후부터 어려운 일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뒷마무리나 세팅 정도만 주어졌다. 이제는 팀에서 내가 그만두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고 처음에는 설득해 보려고 하던 이들이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건 어딜 가도 똑같다. 시간이 지난 이후에 나는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도 있더라.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저도 오래 할 줄 알았어요, 하며 웃어주었다. 웃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일일이 붙잡고 내 사정과 그동안의 적응 과정을 이야기하기도 힘들고 그런 노력을 할 생각도 없다.


오늘의 짝꿍은 홍천에서 함께 일했던 나이가 지긋한 기술자 아저씨다. 경력이 굉장히 길고 일을 할 때 급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서 차근차근 내게 해야 할 일을 먼저 알려주고 일이 시작됐다. 오늘은 말만 짝꿍이지 인원이 적어 다른 기술자 조수도 곁들여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인 일조든 삼인 일조든 어차피 내가 할 일은 비슷하니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거부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거부할 이유도 없다.

짝꿍 기술자가 일할 곳에 먼저 자재를 옮겨주고 사다리까지 세팅한 후에 몇 가지 부자재를 준비해 둔다. 그리고 다른 기술자가 일하는 곳에 오니 성격 급한 이분은 바퀴 달린 이동형 비계를 탄 상태로 죽죽 밀고 다니고 있었다. 현장에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속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기에 더 빠르게 움직여줘야 한다. 물론 다치지 않을 선에서 서두르는 것이 기본이다. 저렇게 성격 급한 사람들에 맞추다가 다치면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일단 비계를 붙잡고 해야 할 일을 확인했다. 해머 드릴로 타공작업을 한 후 그 구멍에 부품을 조립해 박아 넣는 일을 미리 해주면 된다. 그러면 기술자가 이후의 작업을 이어나가는 형식인데 요점은 손도 빠르고 성격도 급한 기술자가 오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둬야 한다는 점이다. 급하게 천장 몇 군데에 구멍을 뚫고 구멍에 넣을 부품을 조립해 천장 구멍에 박아 넣으면서도 간간이 이동형 비계를 내가 옮겨준다. 성격 급한 기술자를 계속 주시한 상태로 일을 해야 해서 조금 불편했지만 내가 하는 일 자체가 간단한 일이라 크게 무리는 없었다.

미리 시간을 벌어 둔 후에 해머 드릴을 붙잡고 천장 전체 타공작업을 먼저 시작했다. 긴 장대에 매단 해머 드릴로 천장을 뚫기 위해서는 위치를 잡고 뚫릴 때까지 천장으로 막대를 밀어 올리고 있어야 한다. 위를 쳐다보면 먼지가 눈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먼저 위를 확인한 후에 구멍을 뚫는 순간에는 고개를 숙이고 팔에 힘을 주고 위로 밀어 올린다. 혹은 올린 상태로 붙잡고 버틴다. 그렇게 지속적 반복하다 보면 팔이 뻐근해지고 머리는 멍해진다. 혼자 한창 힘을 쓰다가 팔이 떨리고 아파오면 한 번씩 팔을 털어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빨리 구멍을 다 뚫고 조금 쉬면서 부품을 조립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마지막 구멍을 뚫고 해머드릴을 내려 전원을 껐다. 그리고 이동형 비계를 옮겨주고 바닥에 앉아 부품을 조립하다가 첫 번째 짝꿍이 생각나 가서 부자재와 자재를 챙겨다 주었다. 그러고 돌아오니 성격 급한 기술자가 어느새 내 밑작업을 거의 따라와 있었다. 얼른 비계를 다시 옮겨주고 그 앞에 천장에 부품을 박아 넣는 밑작업을 이어서 했다. 가만히 나를 보던 성격 급한 기술자는 왜 그만두냐며 그냥 나랑 같이 딴 데 가서 일해 볼래? 하고 물었다. 나는 그저 씩 웃으며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기술자는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일하다 도망갈 사람으로는 안 보이는데,라고 말했다. 나는 그냥 고개를 숙이고 천장에 부품을 박아 넣기 위해 망치질을 시작했다. 쾅쾅쾅.


난 정말 그런 사람인가. 끝까지 하지 못하고 힘들면 도망가는 사람인가. 벌써 두 번째 퇴사를 앞두고 나니 별생각이 다 든다. 이십 대에 첫 직장을 구할 때는 몇 번이나 퇴사를 했다. 하루 이틀 다녀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다른 직장을 구하기도 했고 괜찮은가 싶어 시작했다가 한 달 만에 그만두기도 했다. 첫 직장을 구하는 것은 사회 초년생인 내게 너무도 어려웠다. 내게 경험이 없었기에 이곳에 좋은 곳인지 나쁜 곳인지 주변의 자문을 구해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나는 괜찮아 보이는데 그건 아니라는 주변의 말을 듣다 보면 정말 아닌 것도 같아졌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지원해 서류가 합격했던 곳들은 대부분 대우가 열악했고 조금이라도 직원 덕을 보려고 하는 곳이 많았다. 그렇게 거르고 거른 후 나름 대기업에 처음 입사했을 때 정년을 꿈꾸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일을 그만두고 나왔다.

어쩌면 나는 힘들면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변명을 하고 조건을 달지만 결국 그만두는 것은 같다. 멀리서 보면 나는 아주 끈기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끈기 없는 사람도 조건만 맞으면 십 년 정도는 일할 수 있더라. 그 조건도 영원하지는 않았다는 게 함정이긴 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원하는 조건이 십 년 사이에 변하기도 하더라.

어느 날 문득 돌아본 십 년을 단 두 문장, '십 년 동안 회사에서 열심히 돈 버느라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여자 친구도, 취미도 없고, 어떤 것에도 큰 흥미가 없습니다.'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내 생활이 앞으로도 변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 회사를 더 다니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 일상에 대한 꿈이 생기지 않았다면 아마 더 다닐 수도 있었겠지. 혹은 회사를 다니며 내가 일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더 다닐 수 있었을 거다. 그저 나라는 사람의 성향이 쉬는 날이 고정되지 않고, 출근 시간도 오전 조와 오후 조로 나뉘고, 퇴근 이후에도 계속 연락이 올 수밖에 없는 구조의 회사에서 일상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같은 회사를 다니며 취미생활을 즐기고 연애하고 심지어 투잡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을 뿐이다. 이런 성향의 문제는 아예 몰랐으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어떤 선택을 해도 힘들어지면 불안해하며 후회하게 될 거란 걸 아주 잘 안다. 항상 선택은 후회를 동반해 왔으니까. 알면서 겪은 고통도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그나마 내게 덜 고통스러운 것을 찾아야 하는 법이다. 그게 내겐 퇴사였다. 회사를 견뎌내는 것은 이미 익숙해져 어렵지 않았다. 다만 지나버린 시간을 인식했을 때의 놀라움과 그 긴 시간을 지나왔음에도 그저 맨주먹만 꼭 쥐고 있었다는 허탈함을 다시 마주하는 순간이 두려워졌다. 그것을 안다고 해도 달라질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무서움이었다. 더 나이가 들어 회사가 없는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내가 웃고 있지 않을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유에 행복함을 느끼기보다는 어색함을 느낄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아직 철이 덜 든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지금이,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다가 얼떨결에 깨달은 지나간 시간을 발견한 지금이, 저지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더 나이가 들면 지나간 시간조차 그러려니 해버릴 것 같아서, 도망가 내가 좋아하는 새로운 것들을 찾아볼 결심을 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몸이 힘든 것은 상관없으나 그것으로 인해 내가 처음 퇴사를 하며 결심했던 것들이 다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 시간을 들여 적응하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너무 길어져 내가 그저 순응해 버리고 좋아하는 것들을 찾는 것에 소홀해질까 봐 겁이 났다. 심지어 일하는 동안 아예 잊고 지내기도 했고. 그렇기에 환경적인 기회가 왔을 때 나는 다시 도망을 택했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나는 힘든 일에서 도망가려는 중이며 앞으로도 해보고 싶은 것을 하는 삶을 살기 위해 도망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작정이다. 나는 아직 철이 들지 못한 어른이기 때문에 저지르는 비행이라고 나를 다독인다. 그렇게 나를 설득한다. 철들면 안 하겠지.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조금만 더 하고 싶은 걸 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보고 싶다. 이제와서라도.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는 것.

들이박다 보면 언젠간 하게 된다. 그래. 언젠가.

하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고 고통스러울지 아주 잘 안다.

실제로 겪기도 했고 심지어 적응해 가는 중이었다. 아픈 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출근하고 있었다.

난 그게 무섭다. 그렇게 아픔에 적응하고 순응해 가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것이. 당연해질 것들이.


나이 마흔,

젊은이 소리 듣기도 힘들고 늙은이 소리 듣기도 쉽지 않은 걸친 나이. 혹은 둘 다 듣는 이상한 나이.

사회 경험은 어느 정도 쌓았고 본격적으로 돈을 번다는 시기.

하지만 나는 더 늦으면 그저 현실에 안주할 것 같아 변화를 택했다.

사실 직장에서 돈을 벌다가 정년을 맞는다 하더라도 재정적으로 넉넉할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그렇게 정년을 맞이한 노년에 뭘 하면서 살고 있을지 도저히 상상되지 않아 쉽게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일을 배우며 견디는 시간 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잃을 것 같아 무서워졌다.

그걸 잃으면 십 년이나 잘 다니던 회사를 정말 아무런 이유 없이 퇴사한 셈이 되는 거니까.






“잘 가라고 안 해?”

승민이 물었다. 나는 조명탄을 꺼내 쥐고 절벽 끝을 가리켰다.

“저기 가서 할게. 불빛을 보고 곧장 달려와.”

승민은 손을 내밀었다. 머뭇머뭇 맞잡았다. 손을 떼자 손바닥에 승민의 시계가 놓여 있었다.

“이제 빼앗기지 마.”

승민의 눈이 고글 속에서 웃고 있었다.

“네 시간은 네 거야.”
“이건 순전히 호기심입니다만,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단순히 퇴원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이토록 긴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혹시 우리가 이수명 씨 귓속에 살던 놈으로 보인 건 아니겠죠?”

다섯 사람의 표정 위로 잔물결 같은 웃음이 번졌다. 나는 함께 웃을 수가 없었다.

“제게도 활공장이 필요했습니다.”

웃음을 멈췄다. 설명해보라는 듯, 여자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출소 후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볼펜 한 자루와 초등학생용 노트 한 권을 샀다. 심판위원회의 현장 심사를 받을 목적으로 산 것이었다. 사람들은 꿈 깨라고 했지만 나는 끈질기게 꿈을 꾸었다.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내돌려지면서도 언젠가는 심판위원회에 서는 날이 올 거라고 믿었다. 그날이 오면, 내게 세상으로 귀환할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일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준비를 해야 했다. 횡설수설하다 기회를 놓쳐버리지 않도록. 밤마다 노트를 채워나갔다. 조금씩, 남몰래 한 장씩, 어떤 밤엔 십수 장씩.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나를 위한 변론을 쓰고 있는 게 아니었다. 승민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볼펜 한 다스가 사라졌다. 노트는 열 권으로 불어났다. 그 사이 나는 무한히 자유로웠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온전히 나 자신이었다. 인생의 표면을 떠돌던 유령에게 ‘나’라는 형상이 부여된 것이다. 그것이 내 안에서 나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럼 우리는 이수명 씨의 첫 비행을 지켜본 사람들인가요?”

위원장이 물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정리 발언 같았다. “네”라고 대답했다.
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 은행나무, 2009, 「4부 내 심장을 쏴라」중에서





신입생 시절 사발식을 하며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작가가 못되더라도 좋은 독자가 되도록 도와주시겠다고. 십 년의 회사원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독자도 되지 못했다. 대학 졸업 이후 읽은 책이 스무 권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꿈이 어디 한적한 곳에서 책이나 읽으며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으면서도 독서 자체를 하지 않았다. 가끔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 때에나 가끔 도서관에 들러 만료된 회원증을 새로 발급받고 책을 읽고 또다시 만료되고 발급하는 시간이 반복됐다. 일 년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회원증이니 나는 독서의 텀을 일 년 이상 두었던 거다.

처음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인생에 여유를 두고 싶었다. 여유롭게 책을 읽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 낮잠을 자며 나 자신을 충전해야 한다고 느꼈다.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둔다는 건 큰 결심이었다. 그런 큰 결정을 하고 난 후에 다가오는 후회를 알기에 나는 더 여유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좋은 기회였던지라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고 급하게 일을 하면서 읽은 책은 초기에 한 권뿐이다. 심지어 한 번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은 것뿐이다. 일이 끝나면 집에 와서 쓰러져 잠들기 바빴고 지방으로 일하러 가면서 옷가지 사이에 책을 챙기기는 쉽지 않았다. 어쩌면 인생의 결단일지도 모를 그런 일을 한 지 겨우 반년 만에 나는 다시 독서를 하지 않고 있다. 여유를 다시 잃어버린 것이다. 결국 일을 다시 그만두기로 결심하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좀 쉬자는 것과 책을 좀 읽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려 글을 조금 써보고 싶어졌다.


아직 좋은 독자도 되지 못한 나는 독서며 글쓰기를 잊고 지냈음에도 그저 독자에서 끝내고 싶은 마음은 없나 보다. 뭔가를 쓰는 행위 자체가 상상이 필요한 것이기에 무엇보다 지금의 내게 필요한 행위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다. 내가 나를 설득하고 있을 정도로 다시 글을 써보고 싶다. 해보고 싶은 것이 예전에 해봤던 것이란 게 조금 슬프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다.

사실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대학 등록금도 아깝고 거기에 바친 내 청춘의 시간도 아깝더라.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것 중에 할 줄 아는 거니까, 그 억울함에 작살나더라도 그냥 한 번 좀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쉬는 시간에 하는 거니까. 지금 시간이 주어졌을 때 해보지 않으면 앞으로는 절대 시도해 볼 일이 없는 일이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하는 오기도 들고. 하고 싶은 거 하는 김에 잘되면 더 좋은 거 아닌가. 글을 쓰는 거야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다. 신나게 써보고 실패하면 교수님이 공언하셨던 대로 좋은 독자는 될 수 있겠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 잘하는 것들을 찾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나마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좋아하는 것이 혹시나 잘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독자든 그냥 독자든 나중에 글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든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나겠지. 지금도 늦은 느낌이지만 더 늦으면 해보지도 못할 거 같으니. 그래서 어차피 내 인생 마지막 일탈인 거 아주 조금만 더 삐뚤어져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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