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느린 일기 - 나이 마흔에도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구나 싶기도 하다

by 블랙스톤

2023년 10월 24일 화요일

구름 많은 하늘 사이로 해가 기웃기웃, 바람은 솔솔


평소처럼 일을 하고 평소처럼 퇴근하고 평소처럼 씻고 나왔다.

'평소처럼'이지만 평소처럼은 아니다.


이주 후면 다시 일을 그만둔다. 할머니 핑계로 일을 그만둔다. 정확히 말하면 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할머니가 아픈 모습을 보이던 팔월 말, 구월부터 혹시나 할머니의 증세가 심해지면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걸 동생과 이야기해 왔다. 동생은 할머니의 병세와는 상관없이 지금까지 들인 노력이 아까우니 계속 일을 했으면 했다. 나도 할 수 있으면 하고 싶다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일하러 나가는 것이 조금 무서워지기도 했다.


일을 하다가 실수하고 욕을 먹는 거야 그러려니 하는 문제지만 언제부터인가 일하러 나가는 것 자체가 동생에게 미안해졌다. 실수를 하면 동생을 욕먹이는 것 같아 신경 쓰이고, 그러다 보니 왠지 더 위축되고, 알던 것을 하는 데도 왠지 눈치를 보며 쭈뼛거리다가 결국 알던 것도 헤매는 상황이 왔다. 매일 내쉬는 한숨만 늘었다. 동생은 이런 순간도 지나가면 괜찮아진다며 계속 일하러 나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쉬어버리면 다시 시작하기가 어려울 거라고. 그 이야기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힘들 때 그만두면 다시 시작하기가 어렵겠지. 좋을 때 그만둬서 좋은 기억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래서 처음 이야기가 나온 구월부터 계속 의논을 해왔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나을까. 결국 할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야 할 상황이 되었기에 그만두거나 쉬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동생은 끝까지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생 보이는 그런 행동과 말들이 나를 더 미안하게 만든다.


사실 일을 배우면서도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숫자에는 약하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었는데 겨우 숫자 몇 개를 외우는 것도 쉽지가 않다. 해서 불러주는 숫자가 일정 수를 넘어가거나 조금 길어지면 무조건 적어야 한다. 그런 모습이 답답하게 보일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다. 까먹고 실수하면 안 되니까.

그렇게 간단한 숫자도 못 외우는데 이전에 배웠던 것을 기억 못 하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동생은 전에 이야기해 준 것이라며 답답해하지만 나로서는 전이라 해도 이전 현장, 그러니까 한 달 이상 된 일이고 그때 들었던 것을 어떻게 완벽하게 기억하나 싶다. 동생은 어차피 비슷한 일이고 그 응용인데 아예 모르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어떨 때 보면 형은 이 일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그 부분에서는 할 말이 없다. 비슷한 계열이지만 나는 감을 못 잡고 있으니 예측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매번 틀리고 혼나니 아무래도 흥미가 떨어지는 것을 나도 느낀다. 그렇기에 더 노력해보려고 하지만 그게 참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나는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일을 하면서 바보가 아닌 척하던 바보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니, 바보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공간지각력이나 숫자에 관련해서는 정말 절망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아니라면 지난 시간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보통 간단한 일들을 전담한다. 다만 공사현장이 후반기로 갈수록 간단한 작업은 거의 사라지기에 이후부터는 내가 도울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어지는 게 문제다. 이때부터는 자재를 나르고 부품을 조립해서 작업에 쓸 바탕을 만드는 정도에서 일이 끝난다. 이후의 작업은 복잡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손을 거드는 것 밖에는 없다. 복잡한 작업을 하면서 내게 뭔가를 가르칠 수도 없고 가르친다 해도 짧은 시간에 잠깐 이야기한 것으로 그 복잡한 작업을 내가 이해할 리도 없다.


해서 잠깐이지만 청라에서 같이 일하는 팀과 함께 물량 현장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하루 일당이 아니라 작업한 수량에 따라 돈을 주는 것이 물량 현장이다. 우리는 나를 뺀 여섯 명 전원이 기술자라서 둘씩 나뉘어 세 방씩 한 번에 작업했고 나는 거기에 자재만 나르면 되는 일이었다. 셋으로 나뉘어 일을 하다 보니 쉴 틈도 없이 계속 물건을 날라야 했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이런 일이야말로 부지런하기만 하면 되니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하지만 동생은 이런 현장은 자신과 팀에게는 편하지만 나에게는 나쁜 곳이라 했다. 배울 것이 없다고. 괜히 혼자 좋아하던 나만 조금 뻘쭘해졌다. 게다가 손이 빠른 기술자들이 모두 노리기에 물량 현장은 잘 나오지도 않는다고. 실제로 물량 현장 작업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주도 되지 않아 일이 끝나고 다른 현장을 찾아봐야 했다.


집에 가는 날 받아놨다고 대충 할 생각은 없다. 여전히 조금 더 빨리 출근하고 최대한 움직이기 위해 노력한다. 여전히 현장에서 버벅대기도 하고 그걸로 인해 욕을 먹기도 한다. 동생과는 항상 같은 조로 움직였는데 그만두겠다는 것을 함께 하는 팀에게 알린 이후부터는 다른 이들과 조를 짜서 움직이기도 했다. 동생과 사이가 나빠져서 그만두는 것으로 느낀 듯 은근슬쩍 동생 험담을 하며 따로 팀을 꾸릴 건데 같이 하자는 사람도 있었다. 그저 웃으며 다시 일하게 되면 연락드리겠다고 말하고 넘겼다. 굳이 동생에게 말할 생각도 없었다. 어쨌든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인데 괜히 감정 상하면 일 끝날 때까지 귀찮아진다.

가끔 주말이면 함께 하던 동생과의 술자리가 줄었다. 여전히 웃으며 지내지만 어느 정도 취기가 올랐을 때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앉아있는 그 시간이 묘하게 어색해졌다. 동생은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당을 올려줄 테니 요양원을 먼저 알아보라고. 나는 임금까지 올려 받은 상태로 계속 일을 못하는 사람으로 있고 싶지 않았다. 돈을 받으면 그 돈값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한데 일단 돈부터 올려 받은 후에 일을 배우는 건 나 스스로에게 너무 부끄러운 일이라 싫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동생은 돈 많이 받으면 좋은 거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나는 급하지 않은 거라고.


어쩌면 내가 돈에 절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것저것 따지는 것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돈에만 매달려 사는 것은 지난 십 년으로 충분했다고 느꼈다. 그 세월에서 내가 느낀 것은 그저 출근과 퇴근, 그리고 일하기 싫다는 감상뿐이었다. 그때는 오히려 책을 읽고 싶다거나 글을 쓰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꽃이 아름답다 생각하지도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오는 회사일에만 집중했다. 어떻게 일을 처리해 둬야 쉬는 날에 연락이 오지 않을까 고민했고 출근하면 눈을 돌릴 때마다 보이는 일거리들에 내적비명을 지르며 살았다. 매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생활에 적응되고 일상이 되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떠올리는 것마저 그만두게 되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한 달이 지나가고 어느 날 깨달으면 일 년이 지나있는 식이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로 시간만 지나고 있었다.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시간이 엄청 빠르네 정도의 감상뿐. 그런데 어느 날 나이를 헤아려 보고 깜짝 놀랐다. 상상만 하던 사십 대가 눈앞이었다. 마흔이면 결혼도 하고 가족이 탈 큰 차도 한 대 굴리고 집도 전세든 자가든 준비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가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어떻게 그것들을 얻어야 할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일이 바빠서, 일단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느낀 이후 일을 그만둔 내 모습을 상상했을 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상상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기에 아무런 욕망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자 외면할 수가 없게 되었다. 불편해졌다. 그렇게 회사는 나에게 새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법도 모르면서 밖을 소망했다. 그리고 지금 나의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내게 회사는 새장이 아니라 섬이었고, 그 섬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었다. 그 제한된 자유의 조건이 나와는 맞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한 번에 하나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고 쉬는 날에 연락을 받는 것만으로도 온통 회사일이 머리를 지배해 버린다. 누가 나쁘다기보단 그저 상성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나를 알게 되었기에 휴식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시 살아가야 할 섬의 조건을 잘 찾아봐야 한다. 상상할 수 없는 삶은 이제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술자리의 그 묘한 어색함은 내가 동생에게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생기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일을 그만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할 때부터 동생은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나도 어차피 나중에는 일자리를 구해야 할 텐데 상황만 따라준다면 동생과 함께 하는 게 편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결국 그만둬야 하는 상황임을 인지하고 결정을 내릴 때, 동생은 아쉬워했고 그런 동생을 보면서 나는 미안했다. 함께 한 반년의 시간이 그저 버려지는 것 같았고 괜히 동생의 시간을 소모시켜 버린 것만 같았다. 아는 형 데려다가 가르친다고 반년 간 고생만 한 동생이 어쩌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왠지 동생의 눈을 마주치기도 부담스러웠다.


씻고 나와서 텅 빈 방 안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제 그만두게 된 일에 대해서 미련을 떨쳐내야 한다. 끝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일하겠지만 일단 일을 그만두게 되면 나는 할머니와 지내야 하니까. 일을 그만두고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저 뜬구름 잡듯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가 그저 사라졌다.

그러다 홍대에서 바를 하는 동생이 떠올랐다. 일주일에 화요일 하루만 쉬는 동생은 코로나와 함께 개업해서 그저 죽어라 버텨냈다. 현재까지 버티느라 세 번의 대출을 받아야 했고 버티다 보니 빚더미에 앉은 것은 둘째치고 제대로 쉬지를 못하다 보니 몸 성한 곳조차 없어졌다.

그럼에도

동생은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라 감수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모든 것을 감수했기에 꿈이었던 자기 가게를 운영하는 바텐더가 됐고 또 그 가게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동생이 조금 부러웠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뭐지.

뭘 해야 하는 걸까.

나이 마흔에도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구나 싶기도 하다.


쉬는 동안 글만 써볼까 하는 생각이 아주 조금 들었다.





“여행이 기대되나?”

나르치스의 질문에 골드문트는 두 눈을 깜박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대답했다.

“그래요, 기다려 왔지요. 하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즐겁지 않네요. 바보 같다고 비웃을 테지만, 저는 아직도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이 쉽지 않아요. 저의 이런 집착이 싫지만 잘 고쳐지지 않네요. 그것은 일종의 병일 거예요.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이런 집착을 모르잖아요. 니콜라우스 스승도 그랬었지요. 아, 쓸데없는 말을 지껄여서 죄송해요. 나르치스, 저에게 강복을 주세요. 그럼 갈게요.”

골드문트는 인사를 마친 다음 말을 타고 길을 떠났다. 그가 떠난 이후 나르치스는 친구를 떠올리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그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다. 골드문트는 다시 돌아올까? 새처럼 둥지를 떠났던 그가 다시 돌아올까? 그 기묘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친구는 다시 정처 없는 여정에 올랐다. 그는 다시 욕망과 호기심에 이끌려 세상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닐 것이다. 어둡고 강한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마음을 걷잡지 못해 다 큰 아이처럼 돌아다닐 것이다. 하느님이 늘 그와 함께 하시기를! 그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지금 그는 불나비처럼 날아다니며 여자들을 유혹할 것이고,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일 것이다. 어쩌면 위험한 지경에 처해서 사람을 죽여 감옥 속에 갇혔다가 그곳에서 죽게 될지도 모른다. 나이 먹는 것을 한탄하고 슬퍼하면서도 어린아이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 친구가 왜 이렇게 걱정이 되는 걸까? 영원히 금발의 소년에서 벗어나지 못할 이 친구는 어쩌자고 이렇게 남의 애를 태우는 것일까? 왜 그 친구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하지만 나르치스는 그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짓궂은 반항아를 제어해서 길들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지만, 외곬이었던 그가 또다시 굴레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뛰쳐나가 모험을 감수한다는 사실은 도리어 ‘골드문트답다.’는 생각이 들어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헤르만 헤세, 번역 김지영, 『지와 사랑』, 브라운힐, 2022, 「제19장」중에서





인생을 항해와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바람과 조류에 따라서 마음먹은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할 것이다. 노력을 하거나 멈추는 것까지는 내 결정이지만 그것이 잘 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기술을 배우기로 결정하고 학원 다닐 준비를 하다가 아는 동생을 따라 현장으로 가게 되었다. 막막했던 배움과 시작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게 된 일이었고 아주 좋은 조짐이라 잘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정작 내가 일을 잘 배우지 못하는 난관에 봉착했고 지금 나는 표류 중이다. 그저 아득한 망망대해를 떠다니며 표류하는 중에는 조그마한 빛이라도, 조그마한 바위라도 더 크게 보이고 다가가고 싶은 법이다.

내가 벗어나고 싶은 것이 지금의 바다인지 그저 표류하고 있는 내 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그 둘이 따로따로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저 한심한 내 모습이 싫었던 것인지, 정말 이 일이 나와 맞지 않았는지, 그제야 알게 되고 또 후회하겠지. 어쨌든 이번 항해는 목적지에 닿지 못했고 나는 이 표류를 끝나고 잠시 쉬려고 한다. 정착이었으면 좋겠지만 아직 머무를 수 있는 내 공간을 찾지 못했으므로 나의 항해는 계속되겠지. 그때에는 정말 항해라고 부를 수 있는 성공한 모험이길 바란다. 표류라고 부르고 그저 떠내려 왔습니다, 로 끝나는 문장이 아니기를. 그것이 그래, 네가 그럼 그렇지, 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이게 바로 나야,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문장이기를. 억지로 방향키에 매달려 있던 손을 살짝 놓으며, 표류하는 문장에 쉼표를 찍으며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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