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과 마주하다

느린 일기 - 사실상의 돈좌

by 블랙스톤

2023년 10월 16일 월요일

하늘 한 편의 먹구름과 해, 비는 오지 않고 바람만 살랑살랑


이때부터의 메모는 머리가 복잡해 아주 단편적이었다.

사실상의 돈좌,

어쩌면 지금까지도.


홍천 마지막 날. 어차피 우리 팀만 들어온 현장이기에 오래갈 일은 아니긴 했다. 삼일 만에 온 현장소장이 말하기를 우리 작업이 끝나면 다른 작업을 위한 작업자를 부를 예정이라고 했다. 현장이 협소하다 보니 작업 하나를 할 때마다 한 팀씩 따로 부르고 있다고. 보통 큰 현장은 시일이 늘어지면 그게 다 돈이라서 좁은 곳이라도 작업자들을 한 번에 몰아넣고 알아서 빨리 꼼꼼하게 해라,라는 식인데 이쪽은 조금 달라서 살짝 당황했다. 사장 동생은 오히려 이런 현장이 나중에 뒷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며 더 꼼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중에 핑계 댈만한 거리도 없어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 덤터기라고.

아침에 출근하면서 미리 짐을 다 챙겨서 왔다. 일이 끝나고 바로 서울로 올라갈 계획. 큰 작업은 하나만 남아서 후딱 오전에 끝내고 점심은 올라가면서 하자고 했다. 출근하자마자 나는 작업이 끝난 방들의 청소와 뒷정리를 시작하고 사촌동생은 작은 방의 하던 작업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사장 동생은 큰 방의 천장을 마무리한 뒤 전체적으로 확인 후 집에 갈 계획을 세웠다. 출근하면서 서울 가는 길에 유명한 음식이 뭐가 있는지 찾아보기도 했다.

막상 일이 시작되자 자잘하게 마무리할 것들이 많았다. 열 시 이전에 끝나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했던 것들이 무색하게 돌아보니 조금씩 미진한 부분이 보였고 동생은 그런 것을 그냥 넘어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보강에 보강에 보강. 일은 늘어졌고 소장이 의아해하며 현장에 왔다가 동생이 마무리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동생의 일처리를 보고 욕심이 났는지 소장은 몇 가지 어려운 마무리 작업을 부탁했고 동생은 그걸 또 너무 쉽게 처리했다. 치우고 정리하고 장비를 손질하고 다시 돌아오면 또 치울 것들이 쌓였다. 그럼에도 마무리까지 깔끔해야 일 잘한 거라는 동생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소장은 이렇게 마무리해 주시면 이런 부분들은 다음 팀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다며 웃었다. 나로서는 어떤 식으로 다음 작업과 연계가 되는지 알 수 없었으나 동생이 그리는 그림이 다음 작업을 하기에 편안한 그림이었는지 소장이 몇 번이나 감탄했다. 그리고 먼저 돌아가면서 동생의 명함을 받아 갔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침묵이 가득했다. 운전을 하는 사촌 동생도 조수석에 앉은 사장 동생도 뒷좌석에 앉은 나도 크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같은 기술자임에도 작업하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랐던 덕에 생각이 많아져서인지 평소 같은 게임 이야기나 근황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오늘의 작업이 너무 오래 걸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기술자 둘, 잡부 하나. 현재 셋인 인원을 더 늘려야 하나 아니면 어떻게 해야 좀 더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사촌동생은 일의 방향성을 조금 더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 사장 동생이 현장을 보고 그린 그림을 자신도 공유를 받았다면 일이 마무리가 늘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사장 동생은 자신의 작업 지시에서 변화된 부분은 없었으나 조금 더 세세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었음을 지적했다. 현장 작업이라는 게 소장이 왔다 갈 때마다 변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둘 모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둘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들의 대화에 내 이야기는 털 끝만치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가만히 창밖만 바라보았다.

내가 맡아서 한 부분에 크게 잡음이 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그 속도가 심각하게 느렸을 뿐이다. 마무리 확인에서 내 작업부를 보고 나쁘진 않은데 조금 더 정교하고 빠르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 동생이 다른 곳을 둘러보기 위해 떠난 이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가 작업한 곳을 치웠다. 숙제 검사라는 건 언제나 가슴이 떨린다. 이건 한대 맞거나 학점만 펑크 나면 그저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숙제이기에 더 심하다.

어떤 현장에 가든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한다. 그러면서도 매번 현장이 다르기에 우리는 항상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할 순 없다. 1을 하고 2를 하고 3을 해야 하는 것은 같으나 결과적으로 3을 만들기만 하면 되기에 3이 정상적이고 단단하게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1과 2의 단계에서 조금 유연한 작업을 하기도 한다. 변수가 있는 현장에서는 당연하게도 조금씩 임기응변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한데 미리(mm) 단위로 한치의 틈도 없게 짜 맞춰야 하는 일이니 임기응변으로 한다 해도 대충 할 수는 없다. 다만 대충 해도 되는 부분이 나오면 더 빠르게 속도를 내는 식이어야 한다. 나는 아직 그런 걸 판단하는 센스가 없다. 대충 때워도 되는 부분에서도 정석대로 하고 있다고 혼나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기초를 대충 해서 다 뜯어내는 사태가 오면 작업이 더 늘어지기에 그저 배운 대로 혹은 물어가며 할 수밖에. 심지어 그렇게 확인해 가며 작업했는데 틀리기도 한다. 틀리면 다시 해야 하니 더 느려진다. 만약 중간을 파내고 수정해서 몇 번이고 덧칠을 하면 겉보기에는 멀쩡하겠지만 내구도가 떨어진다. 당연히 다시 해야 하고 그러면 작업이 더 느려지는 거다. 결국 숙련도의 문제고 경험이 쌓여야 하는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경험 없이도 눈치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비교대상이 있으니 눈치 없는 사람은 어딜 가도 힘들고 피곤하다.


이들의 문답은 결국 사람을 하나 구하는 쪽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애초에 내가 작업에 속도를 더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결론이 정해진 상태로 이루어진 의견 조율이었다. 그리고 잡담을 시작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살짝 답답해졌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혼자 작업하고 실수하고 다시 고쳐보는 경험은 꽤 귀중한 것이었다. 우리 팀만 있고 시간이 걸려도 좋다고 말하는 현장이었기에 부릴 수 있는 사치였다. 아마 기술자가 더 늘어나면 하나 있는 잡부인 내가 직접 연장을 잡고 작업을 해볼 시간은 더 줄어들겠지. 워낙에 발전 속도가 느리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인정하면서도 괜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 자신에게 짜증 난다. 이걸 짜증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조차 모르겠다. 짜증은 나는데 짜증을 부리거나 티를 낼 수가 없다. 시선을 창 밖에 고정한다. 내가 도대체 무얼 바라보고 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괜히 동생들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짜증 난 속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일을 할 땐 막내였지만 일이 끝나고 나면 가장 큰 형이었다. 분명 나이로는 그러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나 스스로 작아지기 시작했다. 의견을 내지 않았고 속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팀을 위한다는 생각이었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자 의견을 내고 싶어도 그러기가 힘들어졌다. 일을 배우는 것이 늦어지고 헤매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왠지 모르게 위축되고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런 나 자신을 느낄 때마다 작아지는 모습을 동생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더 크게 웃고 쾌활하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연기하다 보니 때때로 동생들과의 자리가 불편할 때가 있다. 그리고 가끔씩 그런 불편한 공기를 사장 동생이 눈치챌 때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괜히 그 불편함을 지적해서 공론화하기 싫었다. 어찌 됐던 내가 일을 잘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그저 평소처럼 우스갯소리를 해가며, 애써 불편한 부분으로 눈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 분명히 그 불편함은 가끔씩, 그리고 왔다가도 눈을 돌리면 금방 사라져 버리는 순간적인 느낌이었다.


창 밖에는 아스라이 먼 곳으로 저녁노을이 지고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하늘이 어둡게 물들어오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하늘은 성큼성큼 사위를 물들이고 있었다. 문득 그 빠르고 커다란 걸음이 언제인지 모르게 내 가슴에 들어와 이미 내 마음을 까맣게 물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내가 처음 그 걸음을 쳐다봤을 때였을지도 모르지. 까맣게 식어버린 가슴을 뒤늦게 발견한 나는 처음으로 동생들과 동행하는 차 안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 불편이 이제는 때때로가 아니라 항상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동생들은 서로 웃으며 가족 이야기와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까맣게 변한 내 가슴에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그저 창 밖만 바라보았다.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어느새 밖은 저녁노을이 사라지고 온통 어두컴컴해졌다. 그 사이 산길이 끝나가는지 저 멀리에 밝은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빛은 어둠에 저항하듯 아주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주아주 멀리서. 나와는 닿지 않을 아주 먼 곳에서.





이곳 사람들은 ‘혼자’라는 단어를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만지고 또 만졌다. 몸에 좋은 독이라도 먹듯 날마다 조금씩 비관을 맛봤다. 고통과 인내 속에서, 고립과 두려움 속에서, 희망과 의심 속에서 소금처럼 하얗게, 하얗게 결정화된 고독…… 너무 쓰고 짠 고독. 그 결정이 하고 고유해 이제는 누구에게도 설명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입을 잘못 떼었다가는 한꺼번에 밀려오는 감정과 말의 홍수에 휩쓸려 익사당할지 모르니까.
김애란,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17, 「침묵의 미래」중에서





다음 현장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서울의 아파트 현장으로 가게 될 것 같다고. 가기만 하면 겨울을 나고 잘하면 여름 이후까지도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사촌동생은 페이와 환경에 대해 물었다. 귀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창 밖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내가 알아야 할 것은 출근 장소와 출근 시간이다. 그 외에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어떤 환경이든 내가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고 어느 정도 한 사람 몫을 하기 전까지는 금액도 크게 달라질 일이 없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갑자기 휘몰아치기 시작한 어두운 마음을 내려 앉히는 것이다. 왠지 아무리 지나도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다는 무력감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한마디라도 입을 열면 나중에 후회할 이야기가 튀어나갈 것만 같았다. 입을 더 굳게 닫고 창밖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애초에 이 일은 내가 먼저 인테리어 쪽 일을 해봐야겠다고 동생과 상의하고 동생이 나를 생각해 불러주면서 시작된 일이다. 일을 못하는 건 내 탓이지 동생의 탓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생은 어떻게든 나를 데리고 다른 현장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 감성이 잘 다스려지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느끼는 실망감이 왜 갑자기 지금 폭발한 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처음으로 느낀 동생들과의 불편함이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번져갔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뿐이다.

매일 열심히 해보자고 결심하는 것도 조금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열심히는 그저 내 기준이며 나만의 감상이다. 나만 느끼는 열심히 한다는 말은 전혀 의미 없다. 그 열심히가 다른 이들이 느끼는 부족함을 덮어버릴 만큼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열심히 하는 데도 쟨 안돼 정도가 보통이다. 얼마 전의 술자리에서 겪어보고 또 새롭게 느끼기도 했고.


언젠가 조금씩은 생각했지만 굳이 돌아보지 않고 깊숙이 넣어두었던 '실패'라는 생각이 절망감과 함께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이미 오기는 부리고 있었다. 처음 일을 배우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는 오기를 부리고 있는 거다. 그래도 버틴다. 버티고 버텨서 언젠가 기술자가 되면 이때를 돌아보며 아 그때 그만뒀어야 했는데, 하며 너스레를 떨 거다. 지금의 이 오기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 같이 버티는 팀의 오기가 된 이상 나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창 밖은 여전히 어두워서 저 멀리의 불빛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불나방처럼 그 불빛만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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