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일기 -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2023년 10월 5일 목요일
새벽에는 뼈를 때리는 추위, 낮에는 머리 벗겨지는 듯한 더위
연휴가 끝나고 새로운 현장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강원도 원주. 벌써 새벽에는 영하에 가까운 기온이 나온다. 현장의 땅이 살짝 얼고 물에 살얼음이 끼었다. 웃기는 건 아침이 되면 금방 다시 기온이 올라서 물이 된다는 건데 최전방까지 올라간 것도 아닌데 벌써 기온차가 난리다. 물이 얼었다가 다시 녹는데 사람이라고 멀쩡할 리 없다. 새벽에는 턱을 달달달 떨면서 일하다가 낮이 되면 땀을 훔친다. 몸을 움직이는 현장이기에 가벼운 옷을 몇 겹으로 입어야 한다. 가벼우면서도 따듯한 옷을 찾다 보니 작업복으로 비싼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냥 얇은 옷을 몇 개나 걸쳐 입은 나는 그 비싼 옷을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낮이 되어 벗을 수도 없는 얇은 티들이 땀에 젖어 몸에 붙은 상태로 찬바람에 마르기 시작하니 이래서 나처럼 안 입는구나 싶었다. 적응이 된 사람들은 가볍고 따뜻한 점퍼와 바람막이 같은 얇은 점퍼를 활용했다.
-십분 정도 넘게 차 타고 나가면 시내가 나오는 곳인데도 인적은 없고 추위와 더위만 가득하다.
첫날이라 그런지 뭔가 조율할 것도 많고 자재만 나르다가 오전 근무로 끝이 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하는 동선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우리가 작업할 곳은 현장 곳곳에 퍼져 있는데 자재는 단 한 군데에 쌓아놓고서 다른 작업들이 시작된 상태였다. 자재를 나르려는데 동선이 너무 복잡해 그저 다른 곳에 쌓아놓는 것만으로도 한나절의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심지어 오후에는 우리가 지나다니던 길마저 작업으로 막을 예정이라고 해서 더 이상 자재를 나를 수도 없게 되었다. 한참이나 이야기하던 팀장님과 소장은 아무리 머리를 맞대도 답이 나오지 않자 내일 다시 하는 걸로 합의를 봤다.
이제 좀 날이 따뜻해지니 퇴근한 셈인데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뜻하지 않게 생긴 자유 시간에 뭘 할까 고민했다. 팀장님은 일단 점심 먹고 자유시간을 즐기면 된다고 했는데 밥과 함께 반주거리를 시키셨다. 밥 먹으며 한두 잔 마시고 나니 안주가 새로 나오고 연달아 몇 병의 술이 따라 나왔다. 술을 많이 마셔도 회복할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쉬는 시간이 굴러들어 온 느낌에 들떠서인지 혹은 그저 술 마실 기회가 생겨서 그런 것인지, 우리는 그 자리에서 두 시간 정도 머무르며 꽤 많은 술을 마셨다.
-많이 마시고 열 시간 정도 자도 출근까지 시간이 남는다는 팀장님의 농담에 다들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무슨 생각으로 주는 술을 넙죽 다 받아먹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다들 흥겨워하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방에 돌아와 겨우 씻고 이불을 펴는 둥 마는 둥 바닥에 던져두고 그 사이로 몸만 끼워 넣었다. 거의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다가 일어나 보니 내 상태가 아주 가관이었다. 베개는 겨드랑이에 끼워져 있고 펴지도 않은 이불 사이로 파고 들어서 바닥으로 머리를 떨어뜨린 상태로 잠이 들어서 목이 뻐근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장 동생은 이불을 잘 펴고 그 안에서 자고 있었다. 아, 이런 부분에서도 경험 차이가 드러나는구나. 뻐근한 목을 돌리며 일단 뜨거운 물로 몸을 좀 지지며 씻었다. 방에 들어서니 동생이 벌써 저녁 먹으러 나갈 시간이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 할 것 같아 잠시 앉았다가 밖으로 나섰다.
숙소는 시내의 살짝 외곽에 있어 낮에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한산했다. 너무 조용하고 한적해서 고요하고 정적인 느낌까지 있었는데 해가 지고 밖을 둘러보니 주변이 온통 번쩍번쩍했다. 위아래 양옆 할 것 없이 네온사인이 엄청나게 매달려 있었고 밤이 되길 기다렸다는 듯 각자의 존재감을 경쟁하듯 뽐내고 있었다. 게다가 주변 거리 여기저기에서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음악에 맞춰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니 휘청거리며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밥 먹으러 거리에 나왔다가 살짝 당황한 내가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런 나는 신경 쓰지 않고 팀장님과 동생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앞서 걸었다. 일단 너무 거리가 벌어지지 않도록 그 등을 따라 걸음을 내디뎠다. 아까까지는 잘 몰랐는데 낮에 먹은 술 때문인지 속이 살짝 쓰려왔다. 울렁거리는 느낌도 조금 있었다. 숙취 때문인지 걷는 내내 길이 유독 시끄럽고 눈이 부셨다. 꼭 내가 길을 밟을 때마다 길이 비명을 지르고 몸을 비트는 느낌이었다.
몸을 흔들며 걷는 사람들과 길마저 몸을 비트는 듯한 이 흥청망청 시끄러운 거리.
함께 온 이들은 익숙하게 이 거리를 걷는다. 오늘의 일과 내일의 일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다가올 휴일에 서울에 돌아갔다 올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서 술을 한 잔 하고 쉴 것인지를 상의한다. 이야기를 하며 음악에 흥겨워진 것인지, 빠른 비트에 맞춰 점점 빨라지는 발걸음.
그 흥겨운 뒷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직 어질어질한 정신을 부여잡는다.
울렁이는 길에 발이 걸리지 않게 내 발도 신경 써야 하고 저 앞의 따라갈 등도 신경 써야 한다.
잠깐씩 시야에서 길과 함께 둠칫둠칫한 그들을 놓칠 때마다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문득,
끝까지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처럼 한결같이 서툴렀다
사람이 사람을 에워싼다
둘러싸는 사람과 둘러싸이는 사람이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어색해한다
사람인데 사람인 게 어색하다
여기서 울던 사람이
길에 매달려 가까스로 걷는다
집이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집에 가는 길에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
익숙한 냄새가 난다
안녕
어떤 말들은 안녕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속이 상한 것은
겉은 멀쩡하기 위한 거지
겨우내 겨우 내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봄은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오은, 『유에서 유』, 문학과지성사, 2016, 「미시감」중에서
저녁에는 반주를 곁들이지 않았다. 얼큰한 찌개를 먹고 나니 속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조금은 적응한 화려하고 시끄러운 길을 다시 돌아와 숙소를 향했다. 팀장님은 맥주 몇 개와 소주 몇 개를 구입했다. 씻고 시원하게 입가심만 하고 주무신다고 하셨다. 나도 팀장님 방으로 이동해 잠깐 술을 마시며 장기를 뒀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술을 모두 비우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동생은 방에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양치를 하고 가볍게 씻고 먼저 자겠다며 이불을 덮었다. 이번엔 제대로 이불을 펴고 베개를 베고 누웠다. 따뜻하고 편안하며 포근했다. 이제야 조금 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다시 술기운이 올라왔다.
눈을 감은 상태인데도 세상이 뱅글뱅글 돌았다. 이번에도 마다하지 않고 술을 다 받아먹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뭔가 속이 답답했다. 마음처럼 되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 마음처럼만 됐다면 벌써 부자 되고 책이나 읽으며 유유자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잘 풀리지 않는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으니까. 일을 시작한 지 반년이 넘어간다. 그동안 무엇이 내게 남아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앞으로 내가 가지게 될 것도 잘 모르겠다. 돈만 벌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는데. 나는 다시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물론 내 성격상 일에 적응을 마친 후에 무언가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일에 적응하는 시간이 속절없이 길어지니 도대체 뭘 원하고 있었는지 처음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지금에 와서는 가끔 떠오르는 처음의 결심에 아, 그랬었지 정도의 감정만 남아 있을 뿐이다.
도대체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거기서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 더 생각하면 뻔하게 나올 결론이 무서웠다. 그저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으려 노력했다. 처음의 결심, 더 늦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그 생각을 다시 벼르기 위해 노력했다. 궤도에 오르지 못해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뿐 궤도에만 올라가면 그때부터는 주변을 둘러보며 내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퇴사하던 날 느꼈던 그날의 살랑이며 움직이던 바람, 나른하게 한발 한발 내딛다가 가만히 그루밍을 하던 그 화단 밑의 고양이, 도서관 계단 아래에서 햇살을 받으며 둘이서 꼭 붙어 함께 그림책을 보던 작은 두 꼬마까지. 그 평화로움이 내 미래에 언제까지고 머무를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지금을 궤도에 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조금만 더 노력하자.
내일은 벗기 편한 두꺼운 옷과 수건 한 장을 챙겨 땀을 닦으며 일해야겠다.
내일은 자재를 나를 때 긴 쇠가 너무 휘청이지 않게 살살 걸어봐야겠다.
내일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커피포트에 물을 데워둬야겠다.
그리고 내일은, 내일은, 내일은.
까무룩 잠이 들면서 아주 문득,
더 늦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주 조금 얼굴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