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느린 일기 - 비우는 것 같아 겁이 난다

by 블랙스톤

2023년 10월 3일 화요일

구름은 살짝 햇볕도 따갑지 않고 바람도 살랑이는 중


연휴의 마지막은 오늘이지만 나는 내일도 하루 더 쉴 예정이기에 내 연휴는 내일까지. 덕분에 할머니를 시골집에 모셔다 드리는 것도 내가 하게 되었다. 이번 추석 연휴는 꽤 길어서 빈둥거릴 시간도 넉넉했고 할머니와 함께 있을 시간도 덩달아 길어졌다. 할머니와 함께 하며 좋은 시간도 많았으며 반대로 나쁜 시간도 분명히 있었다. 그 모든 시간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할머니는 확실히 예전의 강고한 모습이 아니셨다. 사소한 것에도 불안해하고 당황하셨다.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우리를 쳐다보고만 있는 일도 있었다.


조금 느리긴 했어도 지팡이 없이 잘 걷던 할머니는 이제 지팡이 없이 걷기가 힘들어 보였다. 시골에서는 그래도 살살 걸어 다니셨으면서 이곳이 낯설어서인지 베란다와 집 앞 복도까지만 나가보시고 금방 들어오셨다. 노인회관이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 알려드렸음에도 나가실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 어딘지 모르게 주눅 들어 보이기도 했다. 외삼촌에게 미리 귀띔을 받은 어머니는 미리 휠체어 하나를 빌려다 두었다. 처음에는 휠체어를 보고 어디 환자가 왔냐며 타는 것을 질색하던 할머니는 산책을 나가서 한 번 타보신 이후부터 나들이 시간을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였다. 아니, 기다리다 못해 우리에게 눈치를 주곤 하셨다. 오늘 날이 선선하더라, 하늘이 참 맑던데? 티브이에 나들이 가는 사람들이 많더라, 한강변이 그렇게 좋다며? 하면서 은근히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가 계속 풍경과 날씨 이야기를 하면 한참이나 웃으며 대답하던 어머니는 곧 주섬주섬 외출해서 먹을 간식을 챙기셨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할머니는 큰외삼촌의 집에서 몇 년 살다가 독립하셨다. 그렇게 혼자가 된 할머니는 복지관에 나가 한글을 배우고 가방 하나 둘러매고 나들이를 다니셨다. 등산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꽃이 만발한 식물원을 찾아다니기도 하셨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시대에 따라 살아온 세월을 보답받기라도 하듯이 좋은 풍경을 보고, 하고 싶은 것들을 배우며 자신을 위해 사셨다. 명절에 할머니 집에 모이면 새로운 사진들을 보여주기 바쁘셨다. 외삼촌들은 처음에는 신기해하더니 곧 시들해져서 티브이를 봤고 어머니는 새로운 사진을 꺼내오는 할머니의 곁에서 한참이나 여행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멋지게 사는 인생을 할머니가 직접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곤 하셨다.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는 맞장구를 치면서 나와 동생을 다 키우면 각자 독립해서 살아야겠다며 우리를 겁주었고 우리는 한참이나 울먹이곤 했다. 그러지 말아요. 같이 살아요! 하면서.

노년이 되어 오히려 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나서던 할머니의 모습은 어린 나의 눈에도 인상적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저번에 산에 가서 단풍 사진 찍고, 막막 커다란 바위 위에서 사진도 찍고, 이렇게 하는 포크 댄스도 배우셨다? 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 기분 좋았다. 어릴 때는 그런 것들을 특별하게 여겼기에 괜히 신기해하는 친구들의 반응에 우쭐하기도 했다. 어릴 적 우리 할머니는 뭔가 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자라면서 주변을 보고 느끼는 노년이란 고요하게 그저 홀로 머무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우리 할머니는 온몸으로 그런 노년을 거부하셨다. 외삼촌과 어머니가 모두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대단하다고 하셨기에 나도 그것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 어린 나와 크게 다를 것 없이 뭔가를 계속 배우고 여전히 좋아하는 것을 찾으며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 할머니에게 노년이란 그저 나이 듦, 그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 할머니였기에 은근히 풍경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막상 나가자고 하면 너희들이 힘드니 쉬어도 좋다고 하시면서도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으셨다. 할머니가 풍경 이야기를 시작하고 어머니가 나들이 음식을 준비하면 나와 동생은 혹시나 쓰일지 모르는 무릎담요와 물티슈 같은 물건들을 챙긴다. 운전할 사람을 가위바위보로 뽑고 어디로 나가봐야 할지 검색을 시작한다. 이번 명절은 할머니 덕분에 우리 가족이 서울 곳곳의 명소를 알아보고 함께 여행할 수 있었다. 우리끼리 있는 명절이라면 그저 늘어져 있고 끝났을 것이다.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북서울 꿈의 숲 전망대 가는 길에 책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하늘공원 휠체어 입장이 얼마나 힘든지,

하늘공원 밑 메타세쿼이아 길 속 시인의 길은 사진 찍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청계천 산책로에 자전거가 얼마나 많이 다니는지,

청계천에 물고기와 새들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지,

서울숲 흙길 사이사이에 얼마나 진흙 구덩이가 많은지,

서울숲 너머 한강공원의 인도는 경사져서 휠체어 굴리기 불편하다는 것까지,

천천히 함께 걷지 않았다면 겪을 일도 없고 알 수도 없었을 일이다.

-할머니와 함께였기에 천천히 작은 것들을 돌아볼 기회였다. 사소한 것들은 기억에 잘 스며든다.


가는 곳마다 할머니가 휠체어에서 크게 웃는 사진이 남았다. 시골집에 찾아온 손주들을 볼 때보다 그 웃음이 더 크고 즐거워 보였다. 손주들과 함께 하는 햇살, 갈대, 꽃과 나무, 흐르는 강물, 저 멀리 빌딩 위의 구름들, 할머니는 때때로 휠체어에서 혼자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곤 하셨다. 휠체어에 손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는 할머니의 모습은 이번 나들이 사진들과 함께 우리에게 선물 같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시던 할머니는 다가온 우리의 손을 꼭 붙잡고 다시 휠체어 앉으셨다. 그리곤 그 손을 한참이나 꼭 붙들고 계셨다.


무엇을 보시는지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알 수는 없었다.

돌아오는 길이면 할머니에게 오늘 갔던 곳에 대해서 물었다. 할머니는 때때로 맞는 답변을 하고 대부분 언제 그런 곳을 갔었느냐 물었다. 그래도 차근차근 사진을 보여드리며 계속 이야기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기억을 떠올리셨다. 한번 기억해 내신 것을 단단하게 부여잡길 바라며 몇 번이나 기억을 눌러 다지듯이 할머니의 산책과 우리의 나들이가 함께였음을 설명했다. 사진을 통해 풍경을 다시 보여드리고 우리가 할머니와 함께여서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을 알려드렸다. 그것은 할머니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함이었지만 그 함께한 시간을 우리의 가슴에 되새기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할머니 몰래 많은 시간 동안 답답해하셨다.

-처음엔 놓치듯이 잊고 있는 거라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비우는 것 같아 겁이 난다 하셨다.


다 같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나들이를 다녀오는 날이면 늘 그랬듯이 할머니가 먼저 주무셨다. 나는 방에서 오늘 찍은 사진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사진 속 할머니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구름이 낀 하늘은 그렇게 맑지 않았다. 그럼에도 햇살은 화사했고 바람에 늘어진 가지가 살짝 움직여 할머니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 사진 안의 할머니는 평화로워 보였다. 보는 사람도 걱정이 사라질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시골 할머니 댁에 도착해 할머니를 부르면 반기며 나와 보여주었던 그 미소였다. 한참이나 그 미소를 바라보았다.

문득, 아주 활짝 웃는 할머니의 사진들이 아려왔다.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함인 것처럼, 유난히 활짝 웃는 할머니의 얼굴이 우리에게 주는 할머니의 배려인 것만 같았다.

-연휴 기간 동안의 메모는 조금 암울한 예감으로 가득했다. 지나고 나서 보니 할머니의 이상한 부분만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필요까진 없었을 텐데.

-치매 증상, 혼자 계시기 불안하다는 느낌이 온 가족에게 엄습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그저 고령이기에 당연한 건망증인 줄 알았다. 병원에서는 고령으로 인한 건망증이며 이 정도는 치매 진단이 어렵다고 했다. 우리가 느끼는 것과 병원의 의사가 느끼는 것은 좀 다른 것 같았다.

-할머니 덕분에 가족, 친척 간의 대화가 조금 더 많아졌다. 언제나 할머니는 가족에게 선물을 남겨주신다.





언젠가
마음이 다치는 날 있다거나
이유 없는 눈물이 흐를 때면
나를 기억해 그대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줄게
내 머리 위로 눈물을 떨궈
속상했던 마음들까지도
웃는 모습이 비출 때까지
소리 없이 머금고 있을게
그때가 우리 함께 했었던 날
그때가 다시는 올 수 없는 날이 되면
간직했었던 그대의 눈물 안고 봄에 서 있을게
에피톤 프로젝트, 『유실물 보관소』앨범, 2010.05,「선인장 (Vocal 심규선)」중에서





나는 특별히 시골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 아니다. 도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대부분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그럼에도 할머니와의 시간이 중요하다 느끼는 것은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이제 마지막 남은 조부모님이기 때문이다. 시골을 떠올릴 때면 옛날식 주택 마당에 묶여 있던 친가의 누렁이와 그런 누렁이를 구박하던 친할아버지, 그리고 슬며시 누렁이 밥을 챙겨주던 친할머니, 조그마한 담배가게의 담배로 가득 찬 쪽방에 앉아 환하게 웃던 외할아버지, 요리하는 외숙모가 신경 쓰이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슬쩍슬쩍 부엌을 서성이던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이제는 약간 빛바랜 사진처럼 떠오르는 그 기억들은 다시 보지 못할 것들이기에 어쩔 수 없이 조금씩 흐려지고 있다. 그런 사진을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떠오르게 하는 것은 할머니와 대화이다. 할머니는 많은 것을 깜박하시지만 그 시절의 기억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이야기해 주신다.

자주 들추지 않는 기억이기에 조금씩 빛바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왠지 모를 뭉클한 감정을 가지게 하는 그림이기에 잊고 싶지 않다. 할머니는 그 존재만으로도 어렸을 적 시골에 관련된 모든 추억과 감성을 되살려주신다. 그래서 더 할머니가 아련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예전의 장난기 많고 호기심 어린 행동을 하실 때의 할머니 곁에 있자면 나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든다. 조금씩 왜소해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추억들도 같이 쪼그라들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럴 때면 괜히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한참이나 옛날이야기를 하곤 한다.

언젠가 아버지와 벌초를 가는 길에 왜 꼭 명절 근처만 되면 이런 일들을 하고 굳이 제일 밀릴 때 시골에 모여야 하는지 물은 적이 있었다. 조금 미리 다녀오거나 이후에 가면 왜 안 되는 것이냐고. 아버지는 이런 거라도 있어야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친척들이 모두 모여 땀을 흘리고 밥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하셨다. 그때는 사실 크게 납득이 가는 이유가 아니었다. 몇 번을 물어도 비슷한 답이 돌아오기에 어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저 말았던 것인데 나이가 든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는 답변이다. 친가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시골집을 처분한 이후 친척들은 벌초 때에나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시간이 맞지 않으면 그때에도 보기 힘들고 이후 전체가 모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누군가의 결혼식 혹은 장례식정도.

외가도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할머니의 연세가 많으시니 매달 내려가서 얼굴을 보고 있지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시골에 내려갈 일이 이전처럼 많지 않을 것이다. 친가의 추억들처럼 한층 더 빛이 바래게 되겠지. 그렇기에 더 오래 두고 길게 보고 싶다. 할머니는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나의, 그리고 우리 가족이 가진 추억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여전히 외삼촌의 집에도 우리 집에도 오는 것을 꺼려하신다. 내 집이 있는데 왜 너희 집에 가야 하느냐 되묻는다. 걱정된다는 외삼촌의 말에 그러면 자주 들르라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우리가 한 달에 한 번 할머니를 뵈러 가게 된 이후 그날은 외가친척이 함께 외식을 하는 날이 되었다. 할머니는 시끌벅적한 가족을 보면 이제 심부름해 줄 내 새끼들이 참 많아졌다며 환하게 웃으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