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일기 - 세상은 생각보다 더 내게 관심이 없다
2023년 9월 25일 월요일
바람이 좀 세고 구름 잔뜩, 바람이 구름을 밀어낼 때마다 비가 간헐적으로 후드득
오늘의 작업 현장은 수유였다. 현장 주소를 받고 미리 도착해서 둘러보니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번화가 바로 옆 오피스텔 일층 상가가 작업할 곳이었는데 언젠가 본 것만 같은 거리였다. 혹시나 싶어 검색해 보니 아는 동생네 집 근처다. 건너편의 번화가와 작업할 곳이 살짝 걸치게 사진을 찍어 밑도 끝도 없는 ㅋㅋㅋ와 함께 보내주고 일을 시작한다.
모르는 곳에서 일할 때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조금 아는 동네에 있으니 괜히 한 번 더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그저 놀러 왔을 때와 일하러 왔을 때 보는 동네는 참 많이 달랐다. 놀러 왔을 때는 술집만 찾아 돌아다녀서 그런가 다른 사람들도 전부 술집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침에 일하러 와서 보니 다들 일에 치이는 직장인처럼 급하게 걷는 사람들뿐이었다. 서류 가방이라던가 백팩이라던가 빵빵한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많았다. 웃긴 건 그 빵빵한 쇼핑백에 든 게 꼭 샘플 옷가지로 보였다는 거다. 뭔가 어이가 없어 실실 웃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더니 일에 치여 사니까 남들도 다 일에 치여 사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내가 일에 집중하고 있긴 하구나 싶었다. 한편으론 보이는 것마저도 마음가짐을 따라간다는 게 신기했다.
일은 복잡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순한 축에 속하는 일이었는데 현장이 좁아서 복잡했다. 사장 동생은 이렇게 작업이 쉽고 복잡한 곳에서 사고가 많이 난다며 조심하라고 미리 언질을 주었다. 모두의 작업이 조금씩은 겹치는 모양새였다. 물건을 나를 때도 다른 작업자들과 겹치지 않도록 조금 돌아와야 했다.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일의 특성상 조수인 나는 사다리를 붙잡고 있거나 아래서 기술자가 원하는 것들을 챙겨주는 일이 많았는데 몇 번이나 다른 사람이 와서 내 등에 부딪혔다. 몇 번은 사다리에 부딪힐 뻔해서 막아서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일이 힘들진 않았으나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현장이었고 그러다 보니 큰소리가 나기도 했다. 나는 점점 신경이 곤두서고 정신이 없어 끝날 때 즈음엔 혼이 나가 멍해져 버렸다.
일이 끝나 작별 인사를 하고 잠시 화장실을 들렀다. 거울 속에는 멍하니 서 있는 아저씨가 하나 있었다. 분명 마주 보고 있는데도 어디를 쳐다보는지 모를 정도로 멍한 눈이어서 지금 운전해서 복잡한 시내를 통과하려다간 사고가 나겠다 싶었다. 찬물을 얼굴에 몇 번 끼얹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정신이 없을 때는 역시 커피지. 아주 쓴 커피를 한잔하고 싶어졌다. 다행히 상가 건너편에 커피숍이 있어 환복을 하고 횡단보도를 걸어 바로 쓴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창가 자리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창 밖의 복잡한 거리의 사진과 함께 수유 동생에게 다시 ㅋㅋㅋ를 보내주고 밖을 내다보았다.
-사실 오래간만에 보고 갈까 싶었는데 한 시간 반 후에 퇴근이고 오려면 한 시간이 더 걸린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리고 정신이 난 김에 커피향을 충분히 즐기고 바로 귀환했다. 동생아, 고맙다!
창 밖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야 정신이 조금 들어서인지 거리를 오가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 눈엔 여전히 그들이 직장인처럼 보였는데 내가 일 끝나고 커피를 즐기며 여유를 마시고 있어서 그런지 바쁘게 지나는 이들이 안쓰럽고 힘들어 보였다.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이 나왔다. 불과 삼십 분 전에 나는 땀에 절은 티를 입고 머리엔 먼지가 내려앉은 안전모를 쓴 상태로 저들보다 급하게 걸어 다녔다. 그새 그건 잊고 잘 차려입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안쓰러워하고 있다니. 게다가 이제는 번화가 근처에서 땀으로 가슴팍이 젖은 티를 입고 지저분하게 먼지를 묻히고 안전모를 쓴 상태로 돌아다녀도 아무렇지 않았다. 어쩌면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 친숙한 동네임에도 불편하지 않았다. 일은 몰라도 이 생활에는 충분히 적응이 된 듯했다.
혼자 피식거리며 커피를 홀짝이다가 내가 앉은자리를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철물점부터 고물상, 노포 식당, 낮고 낡은 주택가와 병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왼편에는 영화관이 보이고 그 옆으로 카페, 펍, 즉석 사진관이 보였다. 그 길을 걷는 이들의 옷차림과 나이대마저도 확연히 달랐다. 구획이 미리 준비된 계획도시도 아닐 것인데 어쩌다 보니 길 하나 사이로 걷는 사람들의 세대 차이가 보였다.
오른쪽은 주택가가 있어서 그런지 급하게 걷긴 해도 뭔가 안정적인 느낌인데 왼쪽의 번화가를 걷는 사람들은 굉장히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다. 같은 모습이라도 함께 보이는 배경이 어떤가에 따라 전달하는 느낌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이외의 것에서 뭔가를 느끼는 것이 오래간만이어서 뭔가 약간 어색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뭔가를 관찰하거나 궁금한 것들을 확인하려 해도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그런 시선이 유지될 리가 없다.
길 하나를 사이로 나뉘어진 나이 든 주택가와 젊은 번화가. 문득 나는 어느 쪽 길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마지막 한 모금 남은 커피를 마시고 가만히 잔을 돌려보았다. 두 곳 사이에 끼인 이곳 커피숍처럼 나도 뭔가의 사이에 끼어있다. 이제는 젊은이도 아니고 아직 늙은이도 아닌 나이에 접어든 나는 이제는 과감하지도 않고 아직 성숙하지도 않다.
이도저도 아닌 언저리에 선 나는 천천히 녹아가는 얼음을 바라보았다. 유난히 얼음은 차가웠고 잘 녹지 않았다. 몇 번이나 컵 안의 얼음을 돌려보았다. 물로 변하지 않은 얼음은 단단한 소리를 내며 컵과 부딪히기만 했다. 아직 이쪽이든 저쪽이든 녹아들 생각이 없는 나는 어린 친구들과 어울리기에도, 나이 든 형들과 어울리는 것도 부담스럽다. 왠지 모를 고집이 내 안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시기라서 누군가에게 나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 불편함이 얼음이 내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계속 컵을 돌리다가 그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하기에 컵을 내려두었다. 여전히 얼음은 얼마 녹지 않았다. 저놈도 고집 드럽게 세네. 슬슬 일어나야겠다 싶을 때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 우산 차에 있는데 백 미터는 비를 맞거나 뛰어야겠네, 그냥 조금 기다릴까?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조금 더 젊게 살려면 더 노력해야겠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젊게 사는 건지 모르겠다.
-난 원래 복고풍 인간이었는데 어렸을 때나 그걸 복고로 봐주지 마흔쯤 되어 복고를 좋아한다고 하니 흘러간 시간에 미련을 가진 사람처럼 보더라. 그런 건 또 아닌데.
-스무 살 때 대학에서의 별명은 노인이었다. 지금은 간간이 할배로 불리고 있다. 나는 그리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애어른에서 그냥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꼰대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너는 종종 네 청년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나는 알지
네가 켜켜이 응축된 시간이라는 것을
네 초상들이 꽉꽉 터지도록
단단히 쟁여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지나온 풍경들을 터지도록
단단히 쟁여 지니고 날아다니는 바람이
너라는 것을
황인숙,『자명한 산책』, 문학과지성사, 2003, 「방금 젊지 않은 이에게」중에서
언젠가의 술자리에서 이런 공통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클럽을 가보고 싶다는 녀석도 있었고 미친 듯이 연애를 하겠다는 놈도 있었다. 미래를 알고 있으니 돈을 미친 듯이 벌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는데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낯을 가리는 문과형 인간이라 경제활동은 잘 모르겠다. 주식이 뭐가 어떻다는 건지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모르겠다. 뇌로 향하는 통관절차에서 거부를 당하는 느낌이다. 아예 뭔 소린지 감조차 못 잡겠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냥 지금까지 잘 나가는 대기업 주식을 사놓거나 한강 근처에 비싼 아파트 올라갈 곳을 선점하는 방식밖에는 없겠지만 자본금이 없는걸? 로또번호를 달달달 외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안될 거다, 나는. 아마. 역시 인생은 비트코인인가? 그것도 언제 비싸졌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 점들에서 나는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비슷하게 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돌아간다면 꼭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더 많은 책을 읽어보고 싶다. 더 많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더 많이 여행을 다녀보고 싶다. 돈이 아깝다고 생각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더 많이 배워보고 싶다. 별로 달라지는 것들이 없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과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하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일만 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족이 아프고 나서야 우리 가족 모두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나고 나서야 항상 곁에 있던 소소한 것들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지나간 후가 아니라 그 순간에 알아보고 싶다. 내가 고마움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할 순간을 알게 된다면,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그 순간을 알게 된다면 훨씬 기쁨으로 충만한 삶이 될 것 같다. 그렇지 않을까?
아픔으로 가득한 세상을 굴러서 알게 된 것은, 세상은 생각보다 더 내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조금 더 내가 하고픈대로 해도 문제없다. 나이 마흔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새로운 일을 배우고 어쩌면 다시 실패할 수도 있겠지. 뭐 어쩌겠나. 나는 스무 살의 애늙은이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고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실패하게 된다면 그냥 실패하는 거다. 잘 되면 좋은 거고. 다만 그런 나를 나는 긍정해 줄 것이다. 드디어 하고 싶은 거 해봤구나.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된 것만 해도 내 세상이 두 배는 넓어진 기분이다. 괜찮게 잘했네. 고생했어,라고.
그렇게 한참이나 있었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르며 혼자서 가만히 세상을 바라보았다. 정신없이 일하며 내내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이런 시간이 내게 있어줘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