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일기 -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비처럼
2023년 9월 27일 수요일
새벽에는 구름만 잔뜩이더니 낮부터 밤까지 간헐적으로 쉬면서 계속 비
추석 연휴는 내일부터 시작이지만 나는 오늘부터 연휴 시작이다. 현장 휴무일보다 더 길게 쉬게 되었다. 팀원들도 고향을 가야 하기에 이루어진 전격적인 휴가다. 일을 하면서도, 추석을 기다리는 순간에도 손꼽아서 몇 번이나 확인하게 되었던 진정한 연휴. 몇 번이나 뭘 할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더랬다. 상상 속의 나는 명절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배를 두드리며 낮잠을 자다가 느지막이 일어나선 멍하니 앉았다가 연결 동작으로 컴퓨터를 켜서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다 질리면 다시 밥을 먹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 잠이 든다. 상상만으로도 침이 고일만큼 완벽한 휴식!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었다.
휴일 첫날 나는 새벽부터 일어났다. 사실 햇볕의 따가움을 최대한 버티며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연휴 동안 시골집에 혼자 계실 외할머니를 서울로 모셔오기로 했기에 평소 때처럼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항상 서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가장 막히기에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 서울을 빠져나왔다. 명절 연휴 전날이라 혹시나 미리 출발하는 사람들이 있어 차가 막힐까 걱정했는데 그런 사람은 별로 없는 듯했다.
신나게 달려 시골 근처에 다다른 후 휴게소에 들렀다. 화장실을 들렀다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깐 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소나기라고 하기에는 빗방울이 약했다. 조용히 내리고 있는 보슬비를 보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가 오면 할머니께서 어디 나가지 못하고 집에 계시기에 엇갈릴 걱정은 없을 듯하다.
할머니께 미리 연락을 드리면 십 분에 한 번씩 확인 전화가 오기에 보통은 시골집 근처에 가서 연락을 하곤 한다. 물론 같은 동네에 사는 외삼촌들에겐 어느 날 몇 시쯤 도착한다고 미리 연락을 해둔다. 그렇지 않으면 할머니는 집을 나서 복지관으로 마실을 가시기에 허탕을 치고 잠긴 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가 생긴다. 외삼촌은 이번 명절에 할머니를 모셔가겠다는 연락을 받고 처음에는 떨떠름해하셨다. 하지만 '그래도 찜질방에 가서 엄마 등 밀어줄 딸내미는 나 밖에 없잖아!'라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할머니의 서울 나들이를 반기셨다. 아무리 하루에 두세 번씩 할머니 댁에 들리는 외삼촌들이라도 아들과 딸이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
휴게소에서 출발하기 전에 할머니께 이십 분 후 도착을 알렸다. 그리고 할머니 댁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세 번의 확인 전화가 왔다. 평소보다 전화하는 텀이 조금 짧아서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됐다. 시골집에 도착하니 할머니는 이제 살짝 선선해진 날씨에도 이불을 덮고 계셨다. 몸이 편찮으신가 싶어 걱정을 하니 날은 쌀쌀해지는데 입을 옷이 없다고 하셨다. 옷장을 열어보니 저 한구석에 가을 겨울 옷이 가득했다. 서랍의 가장 아래에는 보기만 해도 따뜻한 빨간 내복이 보였다.
할머니께 따뜻한 옷이 여기 있다고 말씀드리고 자리를 좀 바꿔두었다. 할머니는 몇 번이나 장롱을 확인하시고 환하게 웃으셨다. 역시 손주가 좋다. 다 찾아주네. 나는 할머니를 따라 웃어 보였다. 쪼글거리는 주름이 웃을 때는 활짝 펴지는 것이 보기 좋았다. 할머니는 손주가 찾아준 옷 입고 서울로 갈 거라며 빨간 내복을 꺼내 입으셨다. 원래도 옷장 서랍에 있던 거지만 손주가 찾아줬다는 것이 그리도 좋은 건지 연신 웃으시며 바닥에 앉아 천천히 옷을 입는 할머니의 모습이 왠지 눈에 시렸다.
어느새 점심때가 되어 할머니와 식사를 하고 오침까지 봐 드린 후 서울로 출발했다. 할머니는 조수석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자식과 손주, 그리고 복지관 친구분들과의 재미있는 일화를 이야기하다가 중간중간 가방에 열쇠를 잘 담아왔는지, 문은 잘 잠갔는지, 가스밸브는 잠갔는지 확인하곤 하셨다. 언제부터인가 건망증이 심해졌다고 느낀 할머니는 여러 번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으로 문제에 대처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내내 같이 살아오던 외삼촌의 집을 나섰다. 이 정도 살았으면 됐다며 외숙모에게 고생했다 말하시곤 독립해서 혼자 살기 시작하셨다. 그 당시 명절에 인사를 가면 할머니를 어린 나를 앉혀놓고 할머니도 혼자 사는 게 처음이라 집안이 어수선하다며 너스레를 떨다가 복지관에서 새로 배우는 것들의 사진을 보여주곤 하셨다. 할머니는 혼자 살 때 더 깔끔한 옷차림과 몸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셨는데 혼자 사는 노인네가 지저분하면 괜히 자식까지 욕먹을 수 있으니 더 신경 써야 한다고. 그냥 다시 오셔서 같이 살자는 외삼촌들의 말에도 할머니는 혼자 있는 것이 자유롭고 편하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면 할머니는 그저 고개를 저으며 손주들의 머리를 토닥이며 크게 쓰다듬었다. 그건 재미없는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신호와 같았다. 어린 나는 골목길에서 놀 수 있는 외삼촌 댁도 좋고 근처에 놀이터가 있는 외할머니 집도 좋았기에 그저 언제 나가서 논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눈치만 보았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어떻게 알았는지 꼬옥 안아주시고는 손주들끼리 나가서 놀다 오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항상 손주들이 원하는 것을 한 발 빠르게 알아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할머니가 참 좋았다.
휴게소에 들를 때까지 할머니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으셨다. 그리고 중간중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솔직히 계속 확인하는 것이 조금 귀찮기는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히려 할머니가 잊지 않고 확인하는 것은 아주 감사한 일이다. 건망증이 심해지면서 뭔가를 자꾸 잊을 때마다 할머니는 어떻게든 그 기억을 찾아보려 하셨다. 그러다 해야 할 일을 적어놓은 종이까지 까먹은 할머니는 뭔가를 계속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셨다. 건망증은 습관까지는 침범하지 못하는지 할머니는 이제 무언가를 잊지 않고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이제는 그 확인하시는 것마저도 깜박하고 확인한 걸 다시 또 확인하고 계시지만 저 꼼꼼한 성격 덕에 구십이 넘는 연세까지 혼자 사실 수 있었던 거다.
-내 어린 시절 꼬장꼬장이란 단어는 할머니를 위해 있는 단어였다. 다만 그 엄격함은 언제나 자신을 향해 있었다. 손주들에게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셨다.
-자식들의 삶에 자신의 삶을 얹는 것을 싫어하셨다. 자식과 부모, 그리고 각자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다고 말하시는 분이셨다.
한참이나 대화하다가 까무룩 잠드신 할머니는 편안해 보였다. 틀니를 뺀 상태라 입을 오물거리며 주무시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비처럼 내 마음도 우울했다 기뻤다를 반복하고 있다. 아직도 혼자 사는 게 제일 편하다고 말씀하시지만 그 제일 편한 것을 곧 못하게 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영 가슴을 무겁게 했다.
연휴 시작 전날,
차는 하나도 막히지 않았으나 가슴이 꽉 막혀 자꾸 한숨을 내쉬었다.
-할머니는 서울 근처에서 일어나셨고 딸내미와 목욕탕 갈 생각에 들뜨셨다.
-연신 웃는 할머니 덕에 내 기분도 조금 나아졌다.
-아직 나는 어른이 필요한 어른이인가보다. 내겐 아직 할머니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할머니는 호사롭게도 택시로 돌아왔다. 현관 앞에서 웃고 있는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카레의 귀에 들렸다. 할머니는 그의 팻말을 대단히 좋아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카레를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카레가 할머니를 두 팔로 끌어안았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할머니는 온 집안을 걸어다니며 모든 것을 확인해보았고, 카레의 집 지키는 일이 훌륭했던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카레를 쿡쿡 찌르면서 말했다.
"자아, 다시 둘이서 힘써 보자, 카레!"
할머니가 커피를 끓이려고 할 때 초인종이 울렸다. 이웃집 부인이 꽃다발을 가져왔다.할머니가 고맙다는 인사말을 하고 있을 때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빵집 부인이 케잌을 가져왔다. 할머니는 괴로웠던 병상의 얘기를 분주하게 얘기했다.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에 하우실트 양이 서 있었다. 모두 저마다 떠들어대면서 순식간에 둥근 탁자 주위에 둘러앉았다.
카레는 모든 사람 가운데 끼어 앉는 것이 기뻤다. 모두 할머니가 활기 있고 기운차게 보여 병원 생활이 좋은 휴양이 되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휴양이라니 참 좋군요."
할머니는 말했다.
저녁 때 잔치가 있은 뒤 (그것은 조촐하지만 정말 훌륭한 환영 잔치가 되었다.) 할머니는 오늘 밤 여느 때보다도 일찍 잠자리에 들자고 했다.
"아직은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특히 밤에는 말이야."
할머니가 말했다.
카레도 말했다.
"할머니가 없으니 정말 심심했어."
"그렇겠지."
할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그런 연습도 해봐야지."
카레도 그건 그렇다고 생각했다. 자기를 덮쳐왔던 그 불안, 걱정을 회상하며 친절히 대해 주었던 사람들에 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번에는 좋았지만 언제나 누군가가 도와주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카레의 귀에 할머니가 침실 문에 열쇠를 잠그는 소리, 부스럭부스럭 옷을 벗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언제나 있었던 정다운 소리였다. 그리고 한동안은 다시 이렇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할머니."
카레가 소리쳤다.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했다.
"잘 자거라, 카레. 내일 아침에 일찍 깨워 주마."
"응, 할머니."
카레는 자명종을 맞추어 놓지 않아도 되었다. 다시 할머니가 깨워 줄 테니까.
페터 헤르틀링, 번역 채명신, 『할머니』, 중원문화, 2011, 「제14장 할머니, 병에 걸리다」중에서
어른이 사라진다는 건 이상한 느낌이다. 시간이 쌓여 세월이 되고 있으니 당연하다는 생각과 함께 든든하게 느껴졌던 뭔가를 뺏기는 느낌이다. 할머니는 예전에 비해서 확연하게 왜소해지셨고 활동반경이 줄어드셨다. 그에 비해 목소리는 여전히 카랑카랑하신데 시끄럽다고 느껴지던 그 목소리가 요즘에는 다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할머니는 어릴 때의 내가 이상한 소리를 하면 크게 웃으시면서 어떤 점에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곤 하셨다. 내가 대답을 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질문을 하시고 할머니가 왜 이상하게 느꼈는지를 설명해 주셨는데 나에게 누구보다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 대화였다. 요즘에 할머니가 깜박하는 경우가 잦다 보니 가끔은 뜬금없이 아주 예전의 이야기를 꺼내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려 한다. 할머니는 한참이나 이야기를 하다가 앞의 이야기를 깜박하고 다시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지적하거나 맞장구를 치며 대화를 하다가도 순간 깜박할 때면 다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끔 나는 그런 할머니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려보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도 할머니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손주가 좋을 뿐인지 연신 웃으며 이야기를 하신다.
할머니는 나에게 이야기를 할 때 활짝 웃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 얼굴과 표정이 좋다.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 그 표정이 예전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 표정을 짓는 할머니의 앞에 앉아 있으면 내가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아서, 어리광을 피워도 얼마든지 받아주실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한참이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말수가 줄어드신다. 그럴 때면 티브이를 켜드리고 이부자리를 봐드린 후에 잠시 쉬시라고 말씀드린다. 할머니는 누워 티브이를 보다가 잠시 주무시고 다시 일어나 이야기를 시작하곤 하신다. 아무리 즐겁게 이야기를 하더라도 길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좀 피로하신 모양이다.
이불을 덮고 주무시는 할머니는 앉아있을 때보다 더 작게 느껴진다. 가끔 입을 오물거릴 때면 어린아이가 칭얼거리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불을 덮고 잔뜩 웅크린 할머니가 입을 오물거리며 칭얼거리는 모습은 점점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에 불만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따지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만약 꿈속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따지는 것이라면 할머니에게 말해주고 싶다. 점점 작아져 사라지는 것이 두려운 것은 할머니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그러니 그쪽에 투정을 부리고 여기서 다시 칭얼거려도 좋으니 조금 더 머물다 가실 시간을 얻어오시라고. 언제나 마지막 남은 시간은 부족하기 마련이니 조금만 더 부탁드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