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하는 일

느린 일기 - 그래, 다른 의미로 치열했지 우리도

by 블랙스톤

2023년 9월 22일 금요일

햇볕은 그리 따갑지 않고 바람도 살짝 선선 그래도 아직은 더움


오늘은 일이 좀 일찍 끝이 났고 또 내일은 쉬는 토요일이다. 기회다 싶어 퇴근하는 길에 근래에 보지 못한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대학을 다닐 때도 이것저것 관심사가 많은 친구이긴 했는데 대학원을 다니고 알바를 하면서도 옴짝옴짝 계속 뭔가를 하더니 결국에는 바텐더가 되어 바를 차렸다.

신기하면서도 걱정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가게를 열고 다음날인가에 코로나가 시작되었으니까. 퇴직하기 전까지만 해도 친한 후배 돕는다는 의미로 자주 방문하려 노력했다. 일을 때려치우고는 한동안 자주 보겠다고 연락까지 했었는데 바로 다른 일을 시작하면서 아예 눈을 돌리기도 힘들어졌다. 조금은 쉬고 싶다는 마음도 들어서 연락했다.


사장이랑 술을 마실 거니 조금 느긋하게 홍대에 도착했다. 홍대는 올 때마다 어색하다. 예쁘고 멋진 남녀가 최대한 자신을 꾸미고 나선 곳이란 느낌이 역력하다. 반바지에 샌들 신고 목이 살짝 늘어난 라운드 티 하나 입은 나는 누가 봐도 동네 아저씨의 느낌이다.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한 번 꾸며보라고 하면 망설이다가 양복? 하는 생각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는 아저씨이기 더 그렇다. 나는 동네 아저씨답게 최대한 태연한 척 주변에 눈이 돌아가지 않도록 노력하며 가게로 이동했다.

이날 따라 뭔 행사가 있었는지 코스프레에 가깝게 입은 친구들이 많았다. 계속 눈이 따라가고 싶은 예쁘고 멋진 친구들이었다. 뒷모습까지 따라가고 싶은 눈을 자제시키느라 혼났다. 괜히 빤히 쳐다보다가 서로에게 불편한 일이 생길까 봐 아예 딴생각을 시작했다.

이야. 저렇게 차려입으려면 거울을 몇 번이나 봐야 할까. 저런 옷은 팔을 어디로 넣는 거지? 혼자 입기 힘들어 보이는데. 저건 배가 다 보이는데 갑옷인가? 샀든 만들었든 발품 엄청 팔았겠다. 열정이 대단하군! 헛생각을 하려 해도 자꾸 눈으로 훑게 되는 건 똑같았다. 차려입은 이들끼리 쳐다보는 것은 탐색이나 부러움의 영역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동네 아저씨가 빤히 쳐다보는 건 추행이나 꼰대의 영역으로 갈 수도 있다. 그것이 나이 든 이가 바라보는 조금 노출 있는 패션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궁금했지만 궁금하지 않기로 했다. 알아서 뭐 하겠나. 그저 빨리 가게로 가서 편하게 늘어져 있고 싶었다. 고개를 뻣뻣하게 앞으로 고정하고 걸었다. 나는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 나는 앞으로 걷는 사람이다. 앞만 본다. 아니다. 바닥하고 간판만 본다. 걷는다. 걷는다.

-난 어렸을 때 붉은 악마 티셔츠 입고 번화가를 뛰어다녔던 것이 최대 일탈이었다. 중, 고등학교는 교복으로 버티고 대학 때부턴 세 벌에 만원 하는 옷들로 버텼다.

-예쁜 옷을 입는 패션 피플에 내성이 거의 없다.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옷을 입는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자꾸 피하게 된다.

-그때 좀 꾸미고 다녔다면 내 청춘이 좀 달라졌을까? 거울을 보면 음, 그냥 아무 일 없었겠다.


오랜 인연이란 것은 대화가 끊기는 그 순간들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같이 가게 문을 닫고 술을 마시다 한참이나 조용히 음악을 들었다. 문득 떠오르는 옛이야기를 하다가 홍대에 들어서며 느낀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청춘에 대해 말했다. 우리 때와는 다르게 오늘을 직시하고 그 오늘을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고. 이십 대의 나는 그저 술만 마신 것 같았는데.

후배는 한참 어이없다는 눈으로 보더니 우리의 이십 대를 이야기했다. 글쓰기라고는 독후감과 일기만 써보던 이들이 모여 시와 소설을 배우기 시작했다. 금방 잡음이 나고 쉽사리 싫증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와중에도 흥미를 붙이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시와 소설을 발표하는 수업시간에 자신이 쓴 글을 보호하고 남들의 비난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비난은 점점 비평이 되어 가고 누구 하나 울어야 끝이 나던 수업시간은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토론이 되기 시작했다.

교수님과 선배들은 수업이 끝나고 나면 가장 앞장서서 싸우던 이들을 술자리에 같이 앉혀두었다. 그러면 술자리에서도 신나게 싸우다가 취할 때쯤 되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화해를 하고 가끔은 사귀기도 한다. 그런 난장판 속에서 무조건적인 것은 없다는 걸 피부로 느끼곤 했었다. 단순히 술자리가 좋아 참여하는 이들도 있었고 술자리는 피하는 이들도 있었다. 함께 시와 소설을 이야기하던 이들 중 지금까지 취미로나마 그것을 즐기는 이들은 거의 없다. 대단하다고 느끼던 선배들도 어느샌가 자신들의 일을 찾아갔다. 물론 진로를 잡아서 글쓰기로 먹고사는 이들도 생겼지만.

전문대로 입학했다가 졸업은 대학교로 했다. 학교가 통폐합되면서 전문대 문예창작과가 없어지고 자연스레 대학교 국문과로 편입하게 되었다. 시위가 시작되었다. 전문대와 대학교의 합쳐지는 학과가 각자 다 뛰쳐나와서 우리끼리 오붓하게 그냥 살게 두라고 난리였다. 계란도 던져보고 삭발도 해보고 총장실 점거까지, 경찰 출동해서 잡혀갈만한 일 빼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다. 사립인데 아무리 시위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겠나. 조건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결정 자체를 바꿔달라는 요구였으니 학생 모두가 참여하더라도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통폐합은 이루어지고 국문과에 다니게 된 문예창작과 학생들은 뭔가 희한한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물론 잘 적응한 친구들은 전학 온 것처럼 금방 적응을 했고 잘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들만 이방인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문창과에 진학한 친구들은 그만큼 뭔가 자신만의 생각이 뚜렷한 이들이 많았다. 개성이 뚜렷한 이들이 주류에 어울리지 못하면 튀어나온 못처럼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심지어 이들은 주변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혼자서도 잘만 다녔다니기에 더 그렇다.

그렇게 떠돌면서도 토론 수업에는 열심히 참여했다. 누가 뭐래도 전문적으로 그것만 했었는데 쉽게 질 리가 없었다. 승률이 높은 게임은 언제나 재밌기 마련 아닌가. 재밌는 것에는 참여도도 높은 편이라 토론 수업이 걸린 자료 조사와 발표 준비는 밤새도록 했던 기억이 있다. 매사에 무관심한 이들이 시, 소설 같은 토론이 걸린 수업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을 보며 신기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시와 소설 동아리를 권하고 붙잡아서 시 교수님께 대령하기도 했었다.

그래, 그렇네. 다른 의미로 치열했지. 우리도.


한참을 웃으며 이야기하다가 슬쩍 현실이 고개를 쳐들었다. 코로나가 끝나고 나니 코로나를 버티느라 대출받은 것들이 문제가 되고 대출받은 것들을 처리하려다 보니 다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 상황이니 지금이 행복하다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조금 부러운 것도 같다. 시간은 공평해서 모두가 나이 든다. 세월의 풍파를 맞아 더 나이가 들어버린 사람도 있거니와 스트레스에 폭삭 늙어버린 사람도 있다. 동생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즐겁다 말하는 순간만큼은 스무 살 때 모여 목에 핏대를 세우던 그 모습이 남아 있었다. 좋아하는 학과가 없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십 대의 모습이 슬쩍 보여서 조금 더 부러웠는지 모른다.

화장실에 들렀는데 이마가 까지고 눈꼬리가 쳐진 아저씨가 피곤에 찌든 모습으로 나를 마주 보았기에 더 부러웠을까.

야, 동생아. 너만 아직도 동안인 건 너무 하지 않니?





오늘의 위기는 내일의 농담거리이다.
The crisis of today is the joke of tomorrow.
내가 말했잖아, 이 썩을 멍청이들아.
I told you so. You damned fools.
H.G. 웰스 Herbert George Wells
첫 번째 명언은 말 그대로 오늘을 사는 이들을 위한 위로.
두 번째 글은 공중전쟁(The War In the Air)’(1908)의 1941년 재출간본 서문에서. 그는 자신이 과거에 썼던 소설들에서 원자폭탄이나 대전쟁, 세계 정부의 출현을 그려내고 현실이 될 수 있다 주장했다. 그를 보고 상상력이 좋고 글은 잘 쓰지만 망상이 심하다고 했던 이들에게 2차 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재출간하며.
이후에 원자폭탄이 실제 사용된 것을 보고 이 글을 묘비명으로 써달라 했다는 썰이 돈다.





가게를 나오기 전, 둘 다 얼근하게 취한 이후에 동생이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만큼이나 빚을 지고 가게가 망하면 그 빚을 갚기 위해 일만 하는 삶이 더 이상 행복할 수는 없을 테니 지금 최대한 행복하려 하는 중이라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두렵지만 도전했고 그저 시기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 와중에도 이것저것 내부를 꾸며가며 뭔가를 하려고 한 동생이 신기할 뿐이다. 동생은 그 와중에도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 원고를 받아 문집을 네 번이나 만들었고 메뉴판에 주기적으로 단골손님들이 투고한 사진을 올린다. 그 외에도 때에 맞춰 이벤트성 장식과 행사를 하기도 한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방문한 손님들에게 복권을 돌리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때에는 행운권 추첨으로 경품을 주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동생의 표정은 참 밝아졌다.

힘든데 왜 일을 만들어서까지 하느냐고 묻자 주인이 힘들게 일하고 즐거워서 밝게 웃어야 손님들이 다시 돌아온다고 말하더라. 나는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힘든데 어떻게 즐거울 수가 있지? 하지만 동생의 밝은 표정을 볼 때면 조금 납득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저렇게까지 밝은 표정은 어렸을 적 시에 미쳐 있을 때나 보이던 표정이었다. 매일 교수님 방에 쫓아가고 한 두 권의 시집을 읽고 대여섯 편의 시를 필사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모두 메모하던, 저녁이 되면 모여 술 한잔 하며 시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 어린 날의 표정. 물론 이젠 세월에 묻혀 그 표정은 가끔씩만 보였지만 아직 그 표정을 가지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들었다고, 알았다고 다 깨달은 건 아닌가 보다. 몇 번이나 동생이 즐겁다는 것을 듣고 알고 보기까지 했음에도 나는 고생하는 동생이 여전히 안쓰럽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저렇게까지 빚에 시달려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도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 하지만 난 동생처럼 과감하지 못해서 그저 최대한 지금을 버텨내고 앞으로 올 미래를 조금 소박하게 소망할 뿐이다. 내가 꿈꾸는 미래는 학생 때보다 훨씬 작고 귀여워졌다. 으리으리한 미래는 이제 꿈꾸지도 않는다. 다만 이 소박한 꿈이 얼마나 더 소박해질지 그게 제일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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