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일기 - 나는 아버지처럼 살아갈 자신이 없다
2023년 9월 8일 금요일
구름 한 점 없이 푹푹 찌는 화창한 날씨
화창한데 푹푹 찌는 날씨다 아주 희한한 날이다. 바람은 분명 살살 불고 습도도 높지 않은데 햇볕이 너무 뜨겁다. 매년 겪어왔던 여름 중 더위가 가장 와닿는 한 해다. 퇴사 전에는 거의 실내의 에어컨이 바람이 빵빵한 곳에서 일해왔다. 그러다 보니 여름이 푹푹 찔러대는 이 더위를 잊고 살았나 보다. 날이 더운 건지 내가 땀이 많은 건지. 일을 시작한 지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장갑이 땀에 젖어버린다. 장갑이 젖어버리면 손에서 장갑이 헛도는 사태가 발생하더라.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장갑을 갈아 끼고 싶지만 하루에 네다섯 개씩의 장갑을 소모할 순 없으니 그저 시간 날 때마다 장갑을 벗어 꾹 짜고 손끝까지 최대한 밀어 넣어 밀착시킨다.
-장갑은 보통 팀장님이 사다 주지만 그것도 다 돈이다 보니 너무 많이 쓰면 눈치 보인다.
-어떤 현장은 그런 거 얄짤 없이 내가 사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일을 못하니 눈치가 보이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유독 푹푹 찌르는 더위에 힘들어하는 나에게 다행이라 해야 할지 불행이라 해야 할지 미리 주문을 했는데 자재가 오지 않았다. 의사소통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는지 내일이나 월요일에나 자재가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점심 먹고 조금 일하다 퇴근하게 됐다. 덥고 힘들었는데 조기 퇴근이라 기분은 좋다만 오전 치만 일한 셈이라 당연하게도 들어오는 돈이 적으니 그건 또 별로다.
자재가 오지 않았다고 해도 오전에는 일을 해야 한다. 부족한 자재로 일을 해야 하기에 현장을 돌면서 자투리를 모아놓은 더미를 뒤졌다. 기술자가 원하는 자재를 구하기 위해서 몇 번이나 현장을 돌아야 했다. 자재가 없어 평소 때보다 작업에 여유가 생긴 동생은 급할 것 없이 정확하게 필요한 것을 구해와 달라고 말했다. 동생은 솜씨 좋게도 자투리들을 능숙하게 연결하더니 최대한 작업을 이어나갔다.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자 동생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형, 아직도 이런 게 신기하면 어떻게 해."
"나는 이 현장에 있는 모든 게 아직도 신기해. 나만 빼고 다 잘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서 다 대단해 보여."
동생은 웃으며 금방 형도 잘하게 될 거야,라고 공허하게 말했다. 유독 그 말이 공허하게 들렸던 것은 내게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지. 내 느낌과는 별개로 시간이 생긴 동생은 다시 한번 내게 작업을 천천히 보여주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들었던 것과 조금이라도 알고 처음부터 다시 설명을 듣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중간중간에 동생이 이걸 다시 설명해야 하다니,라고 중얼거리긴 했지만 괜찮았다. 어쨌든 다시 한번 차근차근 설명을 들을 기회가 생긴 거니까.
배움의 기회는 그리 길지 않았다. 이내 일이 끝난 다른 기술자가 다가왔고 동생은 자재의 도착 여부와 시일, 그리고 이후의 작업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자재는 토요일 오후나 월요일에 들여오는 것으로 확정됐고 자연스레 토요일은 쉬게 되었다. 동생은 다른 현장의 상태에 대해서도 은근히 확인했다. 벌써 자재 문제로 쉬어야 하는 것이 두 번째이다 보니 다른 현장도 염두에 두는 모습이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 마무리를 시작했다. 원래는 밥도 먹지 않고 가는 쪽으로 이야기가 되었으나 현장 소장이 급한 부분 땜빵을 부탁하는 덕에 시간이 지체됐다. 자투리를 다 뒤져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땜빵하고 한 두 개 남아있던 온전한 자재를 사용해 보이는 부분을 보강했다. 기술자 넷이 달려드니 보강작업은 순식간이었다. 그렇다 해도 한 시간 이상은 걸려서 그 사이 나를 비롯한 막내급들은 작업했던 현장을 정리하고 필요하지 않은 장비를 거둬들였다. 현장에 우리가 들여온 사다리를 챙겨서 쇠사슬로 묶고 시간이 생긴 김에 장비들을 에어건으로 청소해서 정리해 두었다. 기술자들의 작업이 끝나면 바로 퇴근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쳐두었다.
정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술자들의 작업도 끝이 나서 현장을 빠져나왔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퇴근길이라 오래간만에 우리 팀은 음료수를 한 잔 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사장이며 기술자인 동생과 마찬가지로 기술자인 동생의 사촌, 그리고 보조인 나. 이 인천 현장은 사장과 사촌의 인맥으로 들어온 곳이었는데 자재 수급이 자꾸 불안해서 다른 쪽으로 이동할까 고민이 된다고 했다. 나는 굳이 어떤 의견을 내지 않았다. 동생은 형이 일을 배우기 위해서는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곳이 좋긴 한데 그런 현장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런 곳은 아무래도 손이 빠른 이들만 찾기 마련이라고. 아니면 기일이 넉넉해서 한가한 현장을 가야 하는데 그런 곳은 당연히 별로 없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를 하고 모두 떠나간 자리에서 나는 가만히 담배를 꺼내 들었다. 차와 벽 사이의 좁은 곳에 서서 가만히 담배 연기를 피워 올렸다. 왠지 요즘은 넓은 곳보다는 구석진 곳에서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는 것이 마음 편했다.
확실히 여유가 생기면 일하기도 괜찮고 배우기도 좋은 환경이었다. 오래 알고 지내온 동생과 그 동생의 사촌까지 내게 호의적이니까. 그럼에도 마음 한편이 불편한 것은 그 여유가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었다. 하루 일당으로 계산되는 현장에서 하루라도 작업이 지연되면 공사비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 당연히 그들은 숙련된 이들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초짜가 기술 배우겠다고 깔짝거리고 그걸 베테랑이 봐주며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는 건 그들에게 그저 돈을 허공에 날리는 짓과 같다. 속도를 유지하며 초짜를 가르치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내가 빨리 일을 배워야 하는 수 밖에는 없다. 한숨과 담배 연기를 한 번에 내뱉었다. 코 끝이 매웠다. 결론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역시나 이른 퇴근이라 차가 막히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더위가 푹푹 찌르는 날씨였지만 차 안에서 느끼기에는 그저 화창한 날씨였다. 하늘은 맑고 하얀 구름이 드문드문 흐르며 저 멀리 도시 끝에 산들이 보이는 날씨. 절로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그림이 내 앞에 펼쳐져 있고 뻥 뚫린 넓은 도로를 달리고 있자니 괜히 여행을 가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오로지 거슬리는 것은 깜박하고 출발할 때 손을 씻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땀을 흘리면서도 장갑을 계속 사용하면 구린내가 나더라. 손에서도 발냄새가 날 수 있다! 그건 또 신기.
강변도로를 신나게 달리던 중에 라디오에서 싸이의 아버지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어깨춤을 춰가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집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더 기분이 좋았다. 한참이나 따라 부르다가 간주가 나오는 사이에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2절이 시작되었음에도 왠지 어깨춤이 나지 않았다. 괜히 마지막 가사가 내 입에 남아서 자꾸 신경 쓰이게 했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여전히 기타 소리가 신나게 달리고 내 차도 신나게 달리고 있었지만 더는 신나지 않았다. 텅 빈 길을 따라 집으로 가는 길이 묘하게 느껴졌다. 모두가 일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일하지 못하고 이 넓은 길을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괜히 아까 코 끝을 맵게 했던 담배 연기가 생각났다. 어쩔 수 없는 자격지심이 생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을 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니까.
아버지는 평생 일만 하며 사셨다. 결혼 전에는 타이어 공장에서 일하셨고 결혼 후에는 서울로 올라와 방직공장에서 일하셨으며 나와 동생이 태어난 이후에는 트럭으로 장사를 해보다가 다시 지방을 돌며 비닐하우스 짓는 일을 하셨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개인 용달로 이삿짐을 나르셨다.
아버지는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욕을 먹어도 웃으며 그날 저녁에 소주를 들고 상대를 찾아갔다고 했다. 웃는 얼굴에 침을 못 뱉는다지만 침을 뱉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 앞에서 계속 웃는 얼굴이어야 하는 사람의 마음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침을 뱉지 못할 만큼 아주 환하게 웃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아버지는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일을 가르쳐달라고 따라다니고 배우고 또 일했다. 나는 그저 한 번의 배움에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십 년이나 했으면 오래 했다. 십 년이나 버텼으면 오래 버텼다. 십 년이나 해봤으니 나는 다른 것도 할 수 있다. 버틸 수 있다. 후임이 배울 시간을 충분히 주는 회사에서 세세하게 일을 가르쳐주는 선임자에게서 일을 배웠고 시행착오가 있을 때면 주변의 동기와 선임들에게 물어가며 수정할 수 있는 일을 해왔다. 환경이 달라졌으니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알고 있음에도, 알고 시작했음에도 힘든 것은 어쩔 수가 없는데. 아버지는 새로운 것들을 여러 번 배우고 상황에 따라 더 나은 것을 찾아 또 배우셨다. 그러면서 항상 웃으며 집을 나섰다. 이제야 글로 알던 것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겨우 십 년 참아놓고 힘들다고 하고 싶은 거 해보겠다고 뛰쳐나온 게 조금 부끄러워졌다.
동네에 거의 도착해서 방향을 틀었다. 공구 몇 가지와 장갑 한 다발을 샀다. 다음 주부터 더 열심히 해봐야지라고 생각했다. 가족과 웃으며 저녁을 먹고 씻고 자기 위해 누웠다가 문득, 내일이면 또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러면 그건 또 내일 생각해봐야 할 일이라고 느꼈다. 오늘은 그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무리하고 싶어졌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서정주,『花蛇集화사집』, 南蠻書庫남만서고, 1941, 「自畫像자화상」중에서
원래 이 시를 넣을 생각은 없었는데 새벽에 갑자기 떠올랐다. 정말 오래간만에 이 시를 읽는데 여전히 첫 시구가 강렬하게 내 머리를 후려쳤다. 그래. 아비는 종이었다. 아비는 우리 가족을 위해 일만 했다. 가난을 물려줄 수밖에 없었던 아비는 미안해서인지 되려 화를 내고 큰소리를 내긴 해도 종처럼 일만 했다. 그런 아비를 보고 자란 나는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안에서 성실의 기준은 아비처럼 일하는 것이니. 새벽 네시면 일어나 일을 가고 바쁜 날이면 오밤중에나 돌아오던 사람. 중간에 쪽잠을 자기 위해 집에 왔다 가시는 날이면 새벽 두 시에 들어오기도 하셨다.
-그 반대급부로 나는 스스로를 성실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노력이 부족하다. 아버지처럼 노력할 생각이 없으면 일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종종 후회를 할 때는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새로운 일을 배우며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아버지에 비하면 징징대는 것이란 걸 안다. 그럼에도 나는 아버지처럼 참고 살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현장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주변에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일을 쉽게 쉽게 잘하는 사람들은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 외에 아버지처럼 성실한 사람도 있었으며 현장이 떠내려가라 욕을 먹으면서도 묵묵히 일하는 사람도 있고, 팀원들이 쉴 때에 한쪽에서 미리 정리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땀을 뚝뚝 흘리면서 무거운 물건을 나르며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언제까지고 저렇게 참으면서 살아가지는 못할 거라 느꼈다. 하지만 임계점이 오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버텨볼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현장에서는 욕이 참 편하고 존댓말이 어려웠다. 나보다 어린 이들이 몇 번이고 현장에 왔다가 중간에 가버리는 것도 많이 봤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 나는 운 좋게도 지연을 통해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지 떠나가고 나면 다시 만나기도 힘든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자재부족은 나를 돌아볼 시간을 선사했다. 조금 더 이를 악물고 해봐야 한다. 동생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아버지처럼 살아갈 자신이 없다. 아버지처럼 주변도 돌아보지 않고 죽어라 노력만 할 수도 없고 더 나은 일을 찾아서 웃으며 찾아가 일을 가르쳐달라 할 배짱이나 넉살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조금 더 이 일에 집중해야 한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고 손 끝에 닿은 그 기회의 머리끄덩이는 놓쳐선 안된다. 그 머리끄덩이를 놓치면 뒤이어 따라온 세상에게 뒤지게 맞는다. 그거 되게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