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일기 -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땐 몸으로 때워야 하는 법이다
2023년 8월 24일 목요일
구름 살짝 비 깔짝 습기 어마어마
퇴사 후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5개월이 되어 간다. 아직 나는 일에 적응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략적인 방향은 알되 세세한 방법들을 아직도 모르겠다. 현장은 항상 환경이 다르다. 처음부터 들어갈 때가 있고 중간에 투입되는 경우도 있다. 현장에서 요구하는 것들도 매번 다르다. 그런 것들은 기술자가 알면 되는 것들이라지만 보조를 맞춰줘야 하는 나는 그런 변화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전의 작업에서는 이렇게 했었으니 이렇게 준비하면 되겠지, 하고 준비하다가 혼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술자의 속도를 제대로 맞춰주지 못하니 역할을 바꿔 내가 작업을 하고 동생이 아래에서 준비를 다 해주기도 했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제대로 판을 짜주지 못한다. 아래에서 준비할 수 있도록 다음 작업을 할 것을 미리 생각해서 치수를 불러주고 그걸 다시 받아 붙이는 작업을 하면 되는 거다. 간단한 작업은 문제가 없으나 조금만 복잡해지면 치수가 틀리거나 붙이는 작업에 문제가 생긴다. 다시 말해 나는 아직도 일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건 좀 심각한 건데 덕분에 내가 그리고 있던 그림들이 망상으로 끝날 위기다.
-도구가 있어야 그리든 말든 할 텐데 그 도구도 제대로 못 만들고 있는 셈이다.
요즘 들어 너무 이상할 정도로 일이 손에 익지 않는다. 그저 수직으로 나사를 박아 넣으면 되는 일조차도 너무 깊게, 혹은 너무 얕게 박아 넣는다. 이야기를 들으면 알 것 같음에도 막상 잘 되지 않는다.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듣고 있음에도 머리에 들어오질 않는다. 간단한 수치 서너 가지를 외우지 못해 적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스스로가 답답해서 한숨을 내쉬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일을 가르쳐주는 동생은 아주 환장할 지경인 것 같다. 일의 특성상 보통 2인 1조로 움직이는데 기본이 무너지기 시작하니 다른 사람과 붙을 수가 없다.
-이 부분이 동생이 환장하는 지점이다. 내가 느리니 속도를 내려면 혼자서 이인분, 삼인분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지만 서로의 감정이 상할 수밖에 없다. 동생과는 함께 마트에서 일해본 적이 있었기에 더 답답해하는 부분도 있다. 농땡이를 치거나 건성건성 하는 성격도 아닌데 이상할 정도로 일을 배우지 못하고 있으니까. 아직 일 년도 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동생은 나와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기에 내가 더 빠르게 배울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기대가 사라진 자리에는 항상 실망이 차오르기 마련이다. 하긴.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지는 몰랐으니까.
처음에는 그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둘 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일이라는 건 어차피 하다 보면 늘게 되어 있으니까. 환경은 우리를 기다려 줄 수 없다는 걸 간과한 거다. 실제 현장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내가 버벅거리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는 현장소장이 있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느긋하게 일을 할 수 있는 현장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어쩌다 보니 계속 조금 급한 현장으로 투입되었다.
동생은 매번 이인분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지쳐가기 시작했고 나는 지치는 것이 눈에 보이는 동생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일이 끝나면 술을 한 잔 하거나 동생의 집에서 합숙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오래 봐온 사이이기에 우리는 이런 불편한 공기가 싫었다. 최대한 마음속 이야기를 전하려 노력했다. 다만 말에 실리지 않는 무거운 감정 하나가 가슴속에 조금씩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도 동생도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요즘 나는 자존심이나 자존감은 출근하는 차에 넣어두고 다니는 중이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땐 몸으로 때워야 하는 법이다. 힘을 쓰거나 기술자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을 때는 최대한 빨리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술자가 작업 중이라 할 일이 없을 땐 바닥이라도 정리하려 한다. 다른 쪽으로 작업하러 갈 때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밑작업을 하는 것이다. 틈틈이 작업하는 동생을 보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최대한 눈에 익혀 두려 한다. 워낙 빨라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계속 보면서 치우고 나른다.
이 부분이 가끔 동생의 오해를 사기도 한다. 계속 일하는 와중에 내가 곁눈질로 동생을 보면서 뭔가를 하고 있으니 눈치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사실 눈치를 본다는 말도 맞다. 일하는 도중에는 전처럼 편하게 동생을 대하지는 못한다. 아무래도 내 대장이고 그 대장에게 일을 배우는 입장이며 심지어 열등생이 되어버린 처지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동생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동생은 일을 잘하든 못하든 전처럼 대해주기를 바라는 모양인데 일 못한다고 타박을 받다가 내가 형인데? 하며 뻗댈 수도 없는 노릇이라, 동생의 이야기는 그저 듣고 넘기고 있다. 솔직히 일이 끝났는데 눈치 보기는 싫으니 그때는 형 노릇을 하고 있다. 못났어도 어쨌든 난 형이니까.
몸을 혹사하고 집에 돌아가면 되도록 일찍 잔다.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왠지 더 버벅거릴까 봐 쉴 때는 최대한 쉬려 한다. 몸이 피곤하니 머리도 무거워지고 매번 비슷한 것만 보고 있으니 새로 느끼는 것도 별로 없어 글 쓰는 시간은 거의 없어졌고 가끔 책이나 좀 읽다가 잠든다. 당연하게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오랜 친구들은 만나면 거의 술이기에 쉬기 전 날이 아니면 만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을 참는 것은 티가 나기 마련이라 친구들에게 보내는 카톡이 대신 늘었다. 안 그러던 놈이 자꾸 카톡을 보내니 한 두 번씩 답장을 주던 친구들이 의아해하면서도 서서히 읽씹을 해버리고 있다.
-물론 일하는 중에는 핸드폰을 잡을 시간도 없다. 쉬는 시간이나 퇴근시간 같은 귀중한 시간을 내서 보내는 카톡들이다. 읽씹 하는 놈들이 전적으로 나쁜 거다. 잡것들.
오늘은 퇴근을 하는데 라디오 주파수가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러려니 하고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니 차의 안테나가 사라져 있었다. 부러진 게 아니라 돌려서 뽑아간 상태라 이건 누가 봐도 사람 짓인데 범인을 잡고 말고 할 기운이 없었다. 블랙박스를 돌리고 신고하고 할 시간에 그냥 들어가 더 자고 싶었다. 씻고 밥을 먹고 어머니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침대에 누웠다. 그제야 자동차 안테나가 생각났다. 내 재산에 손해가 생겼는데도 그저 무기력하게 지나가버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예전 마트에서 알콜중독인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술을 마시기 전의 그들은 무기력하고 멍한 사람들이었다. 본인은 멀쩡하다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뭔가에 홀린 듯 대답도 조금 느리고 행동도 조금 느린 사람들. 술 마시기 전에는 약간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하고 주변 눈치를 보며 슬쩍 물러나는 사람들이었는데 몇 병 사간 술을 다 마시고 다시 사러 올 때에는 자신감 넘치다 못해 무례한 사람이 되어 돌아왔었다. 그들을 보면서 알콜에 의존한다는 건 현실에서 잃어버린 자존감을 비워버린 술병에서 찾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마치 마셔 버린 술병 속의 알콜이 본체인 것처럼. 어쩌면 그때의 나는 그들을 조금 한심하게 보았는지도 모른다.
자존감을 차에 두고 출근했다가 깜박하고 두고 집으로 온 것인지 오늘의 나는 영 매가리가 없다. 뽑혀나간 안테나를 보고서도 그저 멍했다. 잠이 들 때쯤에서야 조금 정신이 돌아온 것인지 멍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보았던 알콜중독 단골손님이 생각났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서야 확실하게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남들에게 비칠지 알게 되었다. 헛웃음이 났다.
자신만만하게 퇴사를 할 때는 언제고 반년도 되기 전에 정신 빠진 놈처럼 돌아다니고 있다니. 내 자존감은 어딜 가도 한 사람 몫은 한다는 것에서 나왔던 건가 싶다. 정신을 잘 붙잡아야 한다. 잘못하면 또 십 년이 지나 후회하는 수가 생길 수도 있다. 한 번 하는 것은 실수이지만 반복되면 실수가 아니다. 일이 잘 되지 않는다고 내 일상까지 무너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해도 말이다.
-나이가 들어서 새로운 일이 입력이 잘 안 되는 건지 아니면 이 일이 그냥 안 맞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냅다 하던 일 때려치우고 나와서 새로운 일을 하는데 잘 안되니 두 배로 패닉 작렬 중.
-일단 머리통 깨질 때까지 들이받는다. 할 수 있는 게 그런 거뿐이니까. 지금은.
마음은 저만치 흘러 나가 돌아다닌다
또 저녁을 놓치고 멍하니 앉아 있다
텅 빈 몸속으로 밤이 들어찬다
이 항아리 안은 춥다
결국 내가 견뎌 내질 못하는 것이다
신발 끈 느슨하게 풀고
저녁 어귀를 푸르게 돌아오던 그날들
노을빛으로 흘러내리던 기쁜 눈물들
그리움으로 힘차하던 그 여름 들길들
그때 나에게는 천천히 걸어가 녹아들
저녁의 풍경이 몇 장씩 있었으나
이문재,『산책시편』, 민음사, 2007, 「저녁산책」중에서
예전에 위의 시를 보았을 땐 편안한 시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겪는 일을 그린 것이라고. 지금에 와서 읽어보니 불안한 현실 위에 동경과 허무와 슬픔이 살짝 보인다. 역시 시라는 건 보는 대로 보이기 마련인가 보다. 가만히 몸을 웅크리고 시를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나를 다독일 수 있었다.
지금은 저녁 풍경을 떠올릴 겨를이 없다. 겨를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녁 풍경을 떠올린다. 결국 나는 그 저녁 풍경에 녹아들기 위해 살아가고 있으니 언제까지고 모든 걸 다 접어두고 살 수는 없을 거다.
뭐든 처음이 힘든 법이고 나는 십 년 동안 다녔던 회사를 박차고 나온 적이 있다. 그리고 십 년 동안 회사에 죽어라 붙어있었던 경험도 있다. 박 터지도록 일을 해보고도 저녁 풍경이 창 밖이 아니라 그저 담 너머의 모습처럼 보이지도 않게 느껴진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뭔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다만 사회는 춥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껴본 입장에서 그 추운 곳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 더 치열하게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인맥을 통해 일을 구한다는 것은 그저 일을 쉽게 구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소개해준 이의 체면을 내가 살려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동생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동생과는 꽤 오래된 인연이고 뭔가가 잘못되면 그 인연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 거라는 것도 안다. 게다가 동생의 주변에서 느껴지는 무언의 시선들, 그런 것들이 나를 더욱 열심히 뛰게 한다.
누군가에게 실망을 주거나 실패하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또한 여유가 있는 삶을 누가 싫어하겠나. 하지만 지금 나는 저녁 풍경을 창 밖의 것처럼 그저 멀리서 쳐다만 보면서 일단은 나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 집안 정리도 되지 않았는데 나가서 풍경을 즐길 수는 없다. 다시 돌아왔을 때 엉망인 집안을 치울 힘이 남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집을 정리하고 삶을 다독여서 여유로운 저녁 풍경을 찾아올 것이다.
이제 잘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일을 배워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하고 있다. 일을 소개해준 동생에게 더 이상 부끄러운 형이고 싶지 않다. 잠시 머리는 비우고 몸을 혹사시킬 시간이다. 차의 안테나처럼 뽑혀나간 내 정신머리를 다잡으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이라도 대충 수습해서 어떻게든 내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