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

느린 일기 - 또 후회가 한 가지 늘었다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

by 블랙스톤

2023년 8월 20일 일요일

하늘은 맑음, 기분은 우중충


요즘 외할머니가 좀 편찮으시다. 연세가 많으시기에 마지막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곁에 있어 주시면 좋겠지만, 그저 아프지 않고 계시다가 어느 날 주무시듯이 귀천하기를 바라는 것은 자식이 가질 수 있는 욕심 중 하나일 것이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기억력이 나보다도 좋던 분이 갑자기 건망증 증세를 보여 설마설마했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건 불변의 법칙이고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건 노랫말에서 이제는 정설이 된 이야기되시겠다.

-헛소리를 찍찍 늘어놔봐도 기분이 나아지질 않는다.


구십을 넘어 백세를 바라보시는 연세이기에 기억력 감퇴와 노쇠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워낙에 정정하셨던 분이라 기분이 묘하다. 여든이 넘으신 나이에 노인 대학 사교댄스대회에서 2등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할머니가 나이가 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그저 웃기만 했었다. 어머니는 이제 성질 좀 죽일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가 할머니와 한참이나 실랑이를 했다.

-파트너가 젊은 놈인데 굼뜨고 게을러서 일등을 못했다고 전화를 해 짜증을 내셨다.

-젊은 놈이라 지칭된 그분 연세가 일흔 즈음이셨다. 할머니 표현에 따르면 무릎도 멀쩡히 돌아가는 놈이셨다.


워낙에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원래도 한 달에 한 번은 인사를 드리러 가고 있다. 전에는 빼먹지 말고 다녀와야지 하는 다짐 수준이었다면 할머니의 증세를 알게 된 이후부터는 반드시 가야 하는 행사가 되었다. 할머니는 아직도 손주들을 보면 애인은 있니 장가는 가야지 하고 이야기하시는데 전에는 그냥 그러려니였다면 요즘에는 괜히 찔리는 기분이 심해졌다.


어느 날 어머니가 할머니의 다급한 전화를 받으셨다. 새벽같이 나와 기다리는데 복지관이 문을 열지 않는다고.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가 할머니의 다그치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어머니는 깜짝 놀라 자리에 주저앉으셨다. 저녁을 먹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있던 우리 가족은 가만히 전화기 너머의 할머니 목소리만 듣고 있었다. 여전히 할머니는 다급한 목소리로 아직도 문을 열지 않은 복지관의 젊은 청년들이 나중에 큰 일 나는 것 아니냐며, 단체로 늦잠 자는 이들을 깨울 방법을 궁리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몇 번이나 할머니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고 다짐을 받았다. 나는 할머니의 근거리에 살고 계시는 외삼촌에게 전화를 했다. 외삼촌은 전화를 받자마자 이미 연락을 받으셔서 나가는 길이라며 급하다고 말하시곤 집을 나섰다.

한 번은 외숙모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곤 자신이 너무 오래 살아 자식들이 아픈 꼴을 본다며 자책하셨다. 그러고는 자식이 자신보다 먼저 아프다는 이야기가 충격이었는지 한동안 외숙모가 아프다는 걸 잊기도 하셨다.


이후로 할머니의 소식은 외삼촌들과 우리 가족의 가장 큰 중대사가 되었다. 외삼촌들과 어머니는 할머니를 모셔오려 했지만 할머니가 너무 완강했다. 아픈 사람 취급한다며 화를 내기도 하셨다. 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긴 시간 동안 혼자 살아오셨다. 처음엔 혼자라는 게 낯설다고 하셨다. 자식들과 함께 하는 것을 고민하기도 하셨다. 그러다 스스로 복지관에 찾아가 한글을 배우신 이후부터는 혼자라는 것이 예전엔 할 수 없었던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되셨다.

할머니는 명절에나 오는 손주들을 앉혀놓고 이번 기회에 배웠던 것들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곤 하셨다. 나는 명절이면 할머니가 배웠다던 당구와 댄스 스포츠와 게이트볼과 보드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가끔은 지루하고 어떨 때는 신기했으며 대부분 부러웠다. 할머니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배우고 또 다음을 생각하고 계셨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지원서를 넣고 있던 내게는 할머니의 그런 모습이 부러워 보였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시점에는 할머니가 이미 깜박깜박하셨기에 퇴사 소식을 조금 나중에 알리자고 생각했다. 조금 쉬면서 새로운 일을 찾아보려는데 괜한 걱정을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다. 새로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야말로 일하는 것에 바빠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 할머니가 그저 깜박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잃어버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지 못했다.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계시는 할머니께 괜스레 새로운 이야기를 알려드리기가 조금 껄끄러운 상황이 되었다. 할머니는 자신이 예전 같지 않으며 깜박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인지하고 계신다. 어떤 날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무엇을 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한탄하기도 하셨다. 요즘 할머니 댁에 가면 한글을 새로 연습한 연습장이 조금씩 쌓이고 있다. 할머니는 새로 찾게 된 가장 소중한 것을 잊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

아이러니한 것은 할머니가 연세가 많으시기에 다행이라는 것이다. 할머니는 여든 후반의 나이에 무릎을 한 번 다치셨고 이후로는 멀리 이동하지 못하신다. 운동삼아 복지관에 걸어 다니고 더 먼 거리는 외삼촌을 통해 차로 이동하곤 하신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수십 년 동안 한동네에서 살아온 할머니는 복지관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그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하곤 하신다. 그러다 보면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외삼촌들에게 금방 소식이 전해진다.

몇십 년이나 함께 살아온 이웃들은 정말 사촌이나 마찬가지다. 할머니가 아침과 밤을 착각해 복지관에 찾아가셨을 때도 그 맞은편의 슈퍼 아저씨가 외삼촌에게 먼저 전화를 주셨다고 했다. 외삼촌은 며칠 후 슈퍼 아저씨와 맥주 한잔을 하셨다고. 처음 할머니가 다치셨을 때는 행동반경이 좁아진 것을 안쓰러워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지.

외삼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할머니를 만나고 댁에 찾아가 필요한 것을 챙겨주신다. 할머니는 그저 자주 찾아오는 자식들이 반가울 따름이지만 외삼촌은 가끔씩 그렇게 반기는 할머니가 안쓰럽다고 했다. 매번 자식을 반기는 것은 같지만 가끔은 왜 이렇게 오지 않느냐며 타박하기도 하시고 가끔은 너무 자주 오는 거 아니냐며 걱정을 하기도 하신다고 했다. 과거의 할머니는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하고 자신의 마음은 절대 밖에 내비치지 않으셨다. 요즘 가끔씩 다른 모습을 보이는 할머니는 이제 속마음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신다. 얼마나 많은 세월 말하고 싶은 것들을 참았으며 그렇게 내보이고 싶은 마음을 참아왔는지 보인다며 외삼촌은 그것이 안쓰럽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외삼촌의 얼굴에 주름이 더 깊게 파였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어른들의 귀천을 겪게 된다. 시간이 지나 아무렇지도 않아 졌다 생각한 어른들의 빈자리에 슬그머니 후회가 들어설 때가 있다. 그때에 내가 하지 못한 말 한마디나 해버린 말 한마디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라앉아 단단하게 굳어있는 것을 발견할 때도 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결국 지난 뒤에는 모두 다 후회로 남는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더 잘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나 함께한 시간을 자꾸 잃어버리는 할머니에게 가끔씩 서운한 마음이 들곤 한다.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타박할 때도 있다.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할머니에게 미안하다 말한다. 할머니는 왜 손주가 미안해하는지 잘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면 내 가슴속에 뭔가가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또 후회가 한 가지 늘었다.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 나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외할머니를 뵙고 돌아서는 길, 백미러에는 베란다에서 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할머니가 보인다. 차가 출발하며 점점 작아지는 할머니가 왠지 의미심장하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지 못했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여러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무도 마냥 날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알고 있어서 그런지 더 힘들고 마음이 급하다.





-엄마는 부엌이 좋아?
언젠가 네가 묻자 너의 엄마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부엌에 있는 게 좋았냐고. 음식 만들고 밥하고 하는 거 어땠었냐고.
엄마가 너를 물끄러미 보았다.
-부엌을 좋아하고 말고가 어딨냐? 해야 하는 일이니까 했던 거지. 내가 부엌에 있어야 니들이 밥도 먹고 학교도 가고 그랬으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믄서 사냐? 좋고 싫고 없이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지.
너의 엄마는 왜 그런 걸 묻느냐? 하는 표정으로 너를 보다가 좋은 일만 하기로 하믄 싫은 일은 누가 헌다냐?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뭐?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엄마는 무슨 비밀을 말하듯이 잠깐 주위를 살피더니 항아리 뚜껑을 깬 적이 여러번이었단다, 속삭였다.
신경숙,『엄마를 부탁해』, 창비, 2008, 「1장 아무도 모른다」중에서
한 가지는 알아. 나는 엄마같이 못해. 할 수도 없어. 나는 내 아이들 밥 먹이면서도 자주자주 귀찮아. 아이들이 내 발목을 붙자고 있는 거같이 느껴져서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 내 아이들을 사랑하고 이 아이들을 진짜 내가 낳았나? 싶어 감격하지만 나는 엄마처럼 인생을 통째로 아이들에게 내밭길 순 없어. 나는 상황에 따라 내 눈이라도 빼줄 수 있을 것처럼 굴지만 그렇다고 엄마처럼은 아니야. 셋째가 어서 크기를 바라고 있지. 아이들 때문에 내 인생이 정체되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많아. 나는 셋째가 조금만 더 자라면 놀이방에 보내거나 사람을 구해 아이를 맡기고 내 일을 할거야. 그럴 거야. 내 인생도 있으니까. 이런 나를 깨달을 때마다 엄마는 어떻게 그리할 수 있었는지 엄마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우리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건 엄마 상황에서 그렇다고 쳐. 그런데 우리까지도 어떻게 엄마를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으로 여기며 지냈을까. 내가 엄마로 살면서도 이렇게 내 꿈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을, 나의 소녀 시절을, 나의 처녀 시절을 하나도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는데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 엄마는 꿈을 펼쳐볼 기회도 없이 시대가 엄마 손에 쥐여준 가난하고 슬프고 혼자서 모든 것과 맞서고, 그리고 꼭 이겨나갈밖에 다른 길이 없는 아주 나쁜 패를 들고서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 일생이었는데. 난 어떻게 엄마의 꿈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을까.
신경숙,『엄마를 부탁해』, 창비, 2008, 「에필로그 장미묵주」중에서




요즘은 사실 다시 욕심이 난다. 일을 더 잘하고 싶고 글도 더 잘 쓰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다. 욕심이 생기면서 어쩔 수 없는 조바심이 뒤따르고 있다. 할머니가 아프시기에 더욱 빨리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초조해하고 조급해지면 잘 될 일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할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다급해진다.

할머니는 그런 손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우리만 보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연신 필요한 것 없느냐고, 내 집에 있는 것 뭐라도 쥐여 보내기 위해 집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신다. 나는 그런 할머니를 가만히 바라본다. 자신의 것을 자식들에게 내주기 위해 찾아보는 할머니의 뒷모습은 마치 춤을 추는 듯 경쾌하고 노래를 하는 듯 흥겹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남은 나의 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친할아버지, 그리고 친할머니가 먼저 귀천하시고 이제는 내가 할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막 가족. 어렸을 때는 실감이 나지 않아 무덤덤했다면 이제는 가족과 헤어지는 경험과 그 경험 후에 올 감정을 아주 잘 알기에 무섭다. 할머니가 아프지 않게 지내다 가셨으면 하고 바랐을 때도 있지만 뭔가 그 끝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더욱 무섭다. 손주는 할머니에게 더 멋진 모습을 간직하게 해주고 싶다. 그것이 결국 내게 남을 후회라는 걸 잘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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