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일기 - 그냥 큰길로, 하던 걸 하면서 살았어야 했을까
2023년 9월 15일 금요일
덥고 바람도 불지 않지만 그럭저럭 버틸만한 습도
오늘은 일이 끝나고 약속이 있다. 친한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작은 설렘이 있다. 오늘은 또 어떤 멍청한 일로 웃을 수 있을까 싶은 그런 이상한 기대감. 별 다를 것 없는 일상 이야기를 하더라도 친구들은 뭔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멍청한 질문들로 나를 웃기곤 했다. 혹은 분명 일상적인 일이었는데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거나. 적어도 우리끼리는 부끄러운 일을 부끄럽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기에 우스운지도 모르겠다.
일을 마무리하고 인사를 하고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아주 좋았다. 잊었던 것은 오늘이 불금이라는 것이다. 청라 현장에서 출발해서 집으로 가는데 내비게이션 상으로 한 시간 반이 찍힌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하고 이후에는 기계가 고장 났나 싶었다. 몇 번을 껐다 켰음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 도로가 빨간색이다. 가다 보면 줄겠지 싶었는데 변화가 없다. 강변북로에 진입하는 곳에 도달했는데 남은 시간이 아직 한 시간 반으로 찍히더라. 내가 이동해 온 거리와 시간이 있는데도 남은 시간이 한 시간 반이라니. 허탈하면서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친구들과의 약속에 지각하면 욕 많이 먹을 텐데 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집에 도착해서 씻고 나가도 넉넉한 시간으로 약속을 잡았는데 차가 막히는 상태로 봐서는 십분 이십 분 늦는 수준을 넘어서게 생겼다. 강변북로에 진입해서 조금 빠지는가 싶더니 곧 차가 막히다 못해 내가 걷는 속도보다 못하게 움직인다. 마음이 급해져서 시간이 날 때마다 내비게이션 재검색을 눌러본다. 하염없이 시간만 늘어난다.
마음이 급해지니까 끼어드는 차들이 얄밉게 보인다. 평소에는 앞차에 가까이 붙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바짝 붙였다. 옆에서 들어오겠다고 엄두를 대지 못하도록 앞차가 조금 움직일 때마다 따라붙는다. 평소에 싫어하던 것을 내가 하면서도 그저 초조한 마음뿐이었다. 중간중간에 내비게이션을 계속 돌려보았는데 오늘은 어떤 길도 모두 막혔다. 심지어 조금 있다가 퇴근시간이 되면 더 막히기 시작하겠지. 그것이 나를 더 초조하게 했다.
네비님에게 지속해서 재검색을 요구한 덕에 새로운 길을 건네받았다. 슬쩍 길을 확인하니 큰길과 골목길이 섞인 길이다. 평소에 네비님이 가라는 대로만 다니다 보니 어떤 길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가는 곳이 한정된 큰길과는 다르게 골목이나 시내면 다른 쪽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빠지면서 조금은 수월하게 갈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몇십 번 눌러서 받은 새로운 길이라 다시 재검색을 누르면 다른 길 없으니 계속 강변북로로 가라고 할까 겁이 난다.
여전히 막혀서 나가는 통로까지도 한참은 가야 할 상황이었다. 핸들을 붙잡은 상태로 맹렬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마 대학 진로나 취업 방향 고민할 때 이후로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계속 차가 꽉 찬 강변북로를 통해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가량으로 집에 갈 것인가. 내비게이션은 여전히 한 시간 반이 찍히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그래도 내가 아는 길이라 아무리 막혀도 두 시간 안쪽에는 어떻게는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면 모르는 길을 통해 시간 단축을 꾀해 볼 것인가. 모르는 길도 빨간 건 마찬가지지만 강변북로에서 재검색을 계속 하니 다른 길을 알려줬던 것처럼 재검색을 계속하면 샛길을 통해 조금 빨리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확정된 느림과 도박성이 짙은 새로운 길.
고민하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차가 밀려 지각할 수도 있다고 했더니 너 따위 오든 말든 일단 술을 먹겠다고 했다. 오히려 그 대답이 고맙게 느껴졌다. 물론 도착하는 순간 쏟아질 폭언이 예상되지만 일단 지들끼리 놀고 있겠다니 미안한 마음이 덜해졌다. 덩덜아 아슬아슬하게 앞 차에 바짝 붙어서 이동하던 내 차도 조금 느슨하게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친구들이 이런 내 사정을 알고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어차피 늦는 건 확정이니 혹시나 빨리 가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강변북로에서 벗어났다. 시내는 더 지옥이었다. 차가 많은 것은 똑같지만 꼬리물기에, 일단 머리부터 들이미는 차부터 정류장 찾아 차도를 횡단하는 버스까지. 골목으로 들어서니 길가에 주차된 차들 때문에 마주 오는 차가 있다면 한쪽에 섰다가 보행자까지 모두 지나고 나서 이동이 가능했다.
아마 친구와 미리 통화를 하고 조금 거리를 두고 다니지 않았다면 몇 번이나 사고가 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길을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단 하루를 겪었음에도 마음에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게 살짝 화도 나는 것 같았다. 괜히 퇴근 시간대의 사람들이 짜증이 많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어찌 양보할 건 양보해 가며 집에 도착했다. 긴장이 됐었는지 손바닥에 땀이 났고 핸들은 살짝 젖은 느낌이 났다. 출발할 때에 한 시간 반으로 찍혔던 네비는 도착하는 데에 총 두 시간 사십 분을 소요했다고 알려주었다.
-할머니 뵈러 시골 가는 시간보다 더 걸렸다. 불타는 금요일은 속이 불타는 금요일인가 보다.
차만 대놓고 집에는 들리지도 못한 상태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씻지 못해 스스로도 냄새가 난다고 느껴졌다. 술집에 들어서서 욕하는 친구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친구들은 일단 자리에 앉아서 벌주부터 마시라며 한잔 가득 따라주었다. 자리에 앉아 소주 한 잔을 시원하게 마셨다. 그 차가운 소주가 목을 타고 가슴에 다다르니 조급하던 가슴이 조금 시원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냥 큰길로 대충 다녀 너 따위가 뭘 따져!
내가 한 잔 하는 것을 본 친구들은 사정이고 뭐고 일단 욕부터 시작해서 모든 대화를 욕으로 끝냈다. 지각한 것이 미안해 서너 번 웃으며 받아주던 나도 대화의 의지가 없는 녀석들에게 욕으로 응대했다. 욕을 먹고 욕을 하는 사이에 서로 낄낄대며 웃었다. 불타던 속이 좀 진정됐다.
-불타던 속을 냅다 욕에 실어 내뱉었기에 진정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절대로 친구들이 의도했을 리는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녁도 먹지 않고 술부터 들이부어서인지 아니면 오전에 출근해야 하는 이들이 있어 급하게 먹어서인지 길이 조금 울렁거렸다. 천천히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동네에 사는 친구와 함께 가만히 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의 발소리와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들으며 텅 빈 도로를 보면서, 그 옆으로 늘어진 가로수와 그 너머의 아파트 단지와 저 앞의 언덕 위에 살짝 걸친 달을 보며 걸었다. 그렇게 걷는데 친구와 내 발소리에 괜히 가슴이 간질거렸다. 나란히 걷는 친구와 나의 발소리가 왠지 다른 리듬으로 내 가슴을 툭툭 쳤다. 똑같이 걷는 것 같아도 그 둘의 발소리가 너무 다르게 가슴에 와닿았다.
언덕을 오르는 큰 도로는 비어 있었다. 친구는 그 길 옆에 서서 천천히 걷고 있었고 나는 아파트 담벼락에 붙어서 걷고 있었다. 회사에 대한 불평이나 불만,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고민도 공감하고 함께 나누던 친구다. 그럼에도 친구는 회사를 꾸준히 다니고 있다. 회사를 다니며 배달대행을 하기도 한다. 적극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용돈 벌이는 그것으로 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회사를 뛰쳐나가려 웅크릴 때도 소극적으로 말려주던 친구였다. 내 결심이 단단해지자 네가 하고 싶은 건 해봐야 한다며 응원을 해줬다. 그러면서 아직 자신은 하고 싶은 걸 찾지 못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응원과 고백에 기고만장해졌는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오래 해오던 일까지 때려치우고 나섰으니 내게는 더 나은 뭔가가 주어지지 않을까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냥 큰길로, 하던 걸 하면서 살았어야 했을까. 마음처럼 되질 않으니 조금 마음이 약해지는 하루였다.
-언덕에 올라 집 근처에 도착해서 고맙다고 살짝 이야기했다. 친구는 미친놈아, 술 취했으면 들어가 쳐 자빠져 잠이나 자. 헛소리 말고. 라며 다정히 이야기해 주었다.
-씻고 누웠다. 아까의 다른 발소리가 생각나 괜히 마음이 약해지기에 친구들 단톡방에 장문의 욕을 남겼다. 속이 후련해져서 꿀잠 잤다.
내게는 운이 없었을 뿐이야. 하지만 알게 뭐람. 오늘은 운이 따를지도 모르지. 매일, 매일 새로운 날이니까. 물론 운이 따른다면 좋겠지.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빈틈없이 하고 싶어. 그래야 행운이 와도 그것을 붙잡을 준비가 되어 있을 테니까.
그는 고물에 누워 키를 잡은 채 하늘에 어른거리는 빛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고기는 반밖에 남지 않았군, 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운이 따른다면 앞쪽 반만이라도 가져갈 수 있을지 몰라. 내게도 운이 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아니, 그럴 리 없어. 너무 멀리 나왔을 때 이미 운을 망쳐버린 거야.
"바보 같은 생각 그만해." 그가 큰소리로 말했다."정신 차리고 키나 제대로 잡아. 아직 운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데."
"운을 파는 곳이 있다면 조금 사들이고 싶군." 그가 말했다.
그런데 뭘 주고 운을 사지? 그는 자문해 보았다. 잃어버린 작살과 부러진 칼, 상처 입은 이 손으로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그가 말했다. "바다에서 보낸 여든 날 하고도 나흘로 너는 행운을 사려했어. 그들도 네게 거의 팔려고 했었지."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해.라고 그는 생각했다. 행운이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법인데 누가 그걸 알아볼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어떤 모습의 행운이건 손에 넣고 싶군. 부르는 대로 값을 쳐주고 말이야. 마을의 불빛이 하늘에 어른거리는 걸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그는 생각했다. 내가 너무 많은 걸 원하고 있군. 하지만 지금 당장 절실히 바라는 게 바로 그거야. 그는 좀 더 편안한 자세로 키를 잡으려 했다. 그는 몸에서 느끼는 통증을 통해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느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번역 진형준『노인과 바다』중에서, 살림출판사, 2023,
세상은 각자에게 보이는 얼굴이 다르다는 걸 잘 안다. 내게는 밀리기만 하는 이 길이 누구에게는 파고들 틈이 있어 보일 수도 있고 지루한 길이 누구에게는 여유로운 길일 수도 있다. 책에서 보았고 매체에서 보았고 많은 강연에서 이야기하는 주제이다. 그렇기에 안다. 다만 알 뿐 그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혼란스럽고 낯설 뿐이다.
다행히 내게는 시행착오를 겪을 때마다 얼빵한 목소리로 무슨 소리를 해도 받아주는 친구들이 있다. 걱정해 주는 가족들이 있다. 아직 내가 자신에게 신경을 기울일 수 있는 정신이 남아 있다. 아무리 밀리고 막히고 답답해도 어떻게든 설정한 목표를 단단히 붙들고 있으면 결국 그쪽으로 가게 되어 있다. 그저 단단히 붙잡고 버티면서 끌려다니느라 너무 멀리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져갈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설정한 목표에 도달했었다는 그 사실만은 분명히 남는다. 한 번 해냈는데 두 번 못할 이유는 없다. 한 번이 어렵다는 건 부정적인 의미뿐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후회는 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 있었을 때 선택을 하게 된다면 선택하지 않았던 길들이 생기게 된다. 그 길은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가보지 못한 길이니 당연히 그쪽이 더 좋아 보일 수밖에. 다만 그 후회는 그저 스치는 것에서 끝내고 다시 현실로 고개를 돌려야 한다. 당연하게 혹은 어쩔 수 없이.
노인은 바다에서 그 긴 시간 동안 찾던 것을 얻고 상어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우다 결국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설을 본 우리는 그가 무언가를 얻었으며 이번에는 소년과 함께 다시 바다로 나갈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관광객들에게 노인이 잡은 물고기의 뼈를 자랑하는 바텐더의 모습에서 노인이 모든 것을 바다에 두고 돌아온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한다.
나는 아직 가져올 뼈는커녕 피라미조차 보지 못했다. 조금 더 헤매야 할 테고 힘들고 목마르고 후회가 막심한 시간을 더 지나야 한다. 하지만 안다. 알고 있다. 언젠가는 끝이 있음을. 죽어라 버티고 매달리다 보면 계속 나를 거부하고 나를 상처 입히는 내 목표가 결국 먼저 지쳐서 내게 딸려오게 될 것이다. 힘들다고 어벙한 목소리로 친구들에게 하소연이나 해가며, 가족 몰래 한숨을 쉬어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로 버티면 된다.
-쉽게 일을 배웠다면 하지 않았을 생각이지만 어쩌겠나, 지금의 나는 최대한 버텨서 일을 습득하는 방법 외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정밀하게 하면서도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일하는 쪽은 영 재능이 없다.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서툴고 아예 개념을 잡지 못할 때도 있다.
-버티다 보면 결국 된다. 멍청하면 몸이 고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더 고생하자. 불안한 건 사실이지만 아직 실패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