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일기 - 이 모든 경험을 그저 흘려보내지만 않는다면
2023년 11월 1일 수요일
비 한두 방울 찔끔 흘리다 개더니 다시 흐려짐
이제 정말 한 손에 꼽을 정도로 퇴사일이 다가왔다. 한 번 해본 일인데도 기분이 이상하다. 어색한 건가? 출근할 때마다 미묘한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분명 우리 집인데 집에 갈 때마다 집 안 가구 배치나 벽지가 전부 바뀐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익숙한 얼굴들과 대면하는데 익숙하지가 않다. 매일 함께 일하던 사람들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기분이다. 어쩌면 그들도 내게 그런 걸 느낄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퇴사일을 결정한 이후에 내가 주눅 드는 것이 줄어들었다. 틀려도 얼른 다시 해서 맞춰준다. 혼나는 시간이 줄어드니 작업 속도가 조금 올라왔다. 진작 이랬으면 좋잖아, 와 다시 할 거면 연락하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사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진작 이랬으면 좋잖아. 왜 이제 와서.
나는 성격이 느긋한 편이라 결정도 느린 편이다. 사실 결정하는 것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결정을 내리면 다른 가능성을 모두 차단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결정을 내리면 굳이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우유부단한 편인 나를 잘 알기에 결정을 다시 돌아보지 않으려 하는데 그래도 자꾸 귀가 쫑긋거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막판에 들려오는 소리나 표정들에 홀리지 않도록, 마지막이라고 늘어지고 퍼지는 몸이나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다. 일을 못하면 태도라도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 기준은 여전했기에 마지막까지 부지런히 일하려 노력했다. 보는 이가 달라졌다 느꼈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 했다. 일을 못 배우고 결국 그만두는 상황이 벌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소개로 온 거고 동생은 최선을 다해 나를 가르치려 했다. 소개해준 사람의 얼굴을 생각해서 떠난 빈자리가 아름답지는 않아도 가끔 생각날 정도는 해줘야 한다 생각한다. 뭐, 그렇게 이야기하기에는 결국 적응을 하지 못해 그만두는 시점에서 이미 얼굴에 먹칠을 해놓은 셈이지만.
십 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할 때는 퇴직원을 던지기 전에 매일 퇴근하고서 퇴사 이후 해야 할 일을 찾아보았다. 유튜브를 검색하고 구글링을 하면서 뭘 해 먹고살아야 하나, 그 일이 여가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한 일인가를 중점적으로 찾아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게 없었다. 낮에는 할머니와 있어야 하고 어머니가 퇴근하신 저녁에나 시간이 날 예정이라 뭔가 일을 하기도 애매하고 안 하기도 애매한 느낌이었다. 사실 그런 환경을 들먹이는 것은 핑계에 가깝다. 어머니가 가게 문을 닫는 시간은 정해져 있기에 교대를 하고 어떤 일을 하든 시간에 맞춰 할 수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일이다. 그냥 이번에는 아무 생각 없이 좀 쉴 생각이었다. 전에 퇴사했을 때 쉬려던 계획이 무산되고 바로 일을 시작해서 더 그런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쉰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냐마는 이번 일로 내가 나 자신에게 실망한 부분도 있다 보니 조금 쉬고 싶어졌다. 몸도 마음도 조금 지쳐버렸다.
간단한 여행을 생각한다. 아무 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떠들고 그런 소리를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줄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좀 보내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런 계획이 있다는 걸 친구들은 아직 모르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이야기하면 시간을 조율해서 함께 해줄 정도의 의리는 쌓아뒀다고 생각한다. 혹여 시간이 맞춰지지 않으면 오래간만에 혼자 가방을 둘러매고 슬슬 다녀와야지. 그것도 나쁘지 않다.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온전히 나에게만 말을 걸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여행. 마음이 복잡한 내게 그것도 아주 좋은 여행이 될 거다.
마흔이 되는 해에 두 번이나 연속으로 퇴사를 결정한다는 건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정을 내리면서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내 맘처럼만 됐다면 이미 이십 대에 돈 왕창 벌고 빨리 은퇴해서 어디 구석에 짱 박혀 책만 읽으며 탱자탱자 누워있었을 거다. 계획대로만 됐다면 지금쯤 일을 대충 습득하고 일당을 올려 새로운 막내를 받아 조금 널널한 지방 현장으로 갔을 예정이었다. 나는 그 가방에 책을 몇 권쯤 챙겼을 것이고. 다 틀어져버린 지금 내게 남은 것은 그저 실패하며 쪼그라들어버린 내 자존감뿐이다. 내가 내 눈치를 본다는 것도 웃기지만 지금은 이렇게라도 나 자신을 위로해야 한다. 지금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나 자신이 주변의 눈치를 보고 있다. 완전히 쪼그라 붙은 나 자신을 내가 꼴 보기 싫을 정도로.
사실 오래된 친구보다는 가족이 더 완전한 내 편일 것이다. 오래된 친구는 내 편이면서도 때에 따라 나를 비판하기도 하는 존재이지만 가족은 편협된 나의 시선을 지적하지 않고 일단 먼저 같이 편협되게 바라봐 줄 수 있는 존재이기에 더 내 편이라 느껴진다. 물론 함께 신나게 욕하다가 내가 진정되면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긴 하겠지. 하지만 웃긴 건 나이가 들면서 가족에게 속마음을 꺼내 놓기가 어려워졌다는 거다. 내가 고민을 말하면 가족은 계속 그 일을 신경 쓰여한다. 함께 고민해 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고민을 가진 당사자인 내 눈치를 보는 것은 괜히 미안해지는 일이다. 그렇게 나는 내 눈치를 보는 가족이 신경 쓰이고 괜히 말했다는 후회도 들고, 이유 없는 심술이나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리하여 아주 가끔 배려가 독이 될 때가 있다. 지금의 나는 그걸 분간할 이성은 가지고 있지만 그 눈치를 견뎌낼 자존감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에 가족에게는 그저 일이 잘 안 됐고 현재의 사정에 내가 가장 알맞기에 거기에 맞춰서 일을 그만둔 것이라고, 자세한 설명 없이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뭔가를 짐작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짐작하고 있겠지. 뭔가가 평소와는 다를 테니. 그래도 아무것도 물어봐주지 않았다. 새삼 고마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라디오에서 '논어'의 '삼인행三人行 필유아사언必有我師焉'이란 말을 들려주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놈이 착한 놈이든 나쁜 놈이든.
차 안의 라디오 소리를 조금 더 키웠다. 혼자 있으니 생각이 많아진다. 어떠한 것에서든 배울 것이 있다는 그 이야기에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달린 이 일과 이 시간에서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까.
그동안 책도 많이 읽지 못했고 글도 덜 썼다. 메모지에 한두 줄씩 적어놓은 것 외에는 쓴 게 없으니 아예 안 썼다고 해야 할까. 퇴근시간이 길어 이런저런 상상과 생각은 좀 많이 했다. 그것들이 깊이 있는 생각들은 아니었다. 상상을 하다가도 얼른 페달을 밟아 앞으로 따라붙는 현실에 발을 걸치고 있어야 했으니. 효율적인 상상이나 습작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다만 이 일을 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하던 일들을 알게 되었으며 상상만 하던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사람들도 만나보았다.
그것들이 모두 내 자산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경험을 그저 흘려보내지만 않는다면 내 안으로 깔려 나를 단단하게 지탱해 주겠지.
차 안에서 핸들을 두드리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 차가 막힌다. 오늘은 수요일인데 대체 왜 막히냐.
집에 가는 두 시간 동안 이제 뭐 해 먹고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거창하게 돌려서 고민했다.
젠장, 집에 가고 싶어요.
뚱보130은 더 이상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뚱보130은 분명히 웃고 있었다. 어째서 웃고 있는 것일까. 죽는 순간에 웃긴 일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재미난 농담이라도 생각난 것일까. 어떤 농담일지 궁금했다. 죽음을 그렇게 무서워하던 녀석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 세상을 떠난 것일까.
“형, 좀비가 되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진 않네. 팔을 들고 있는 게 좀 힘들긴 하지만.”
뚱보130이 금방이라도 입을 열고 그런 농담을 할 것 같았다. 나는 돌아서서 차를 향해 뛰었다. 등이 후끈거리는 이유가 뜨거운 불바람 때문인지 뚱보 130의 따가운 시선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트렁크를 열고 허그쇼크를 작동시켰다. 턴테이블이 천천히 회전했다.
뚱보130은 거울 속의 ‘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문구 위를 걸어오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는 게 좋았다. 뚱보130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더 가까이 있다는 말 같았다.
"야, 130."
나는 소리를 질렀다.
"우우웨."
좀비들도 소리를 질렀다. 뚱보 130도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움직이지는 않았다.
"잘 따라오고 있는 거지?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
"우웨에에에."
그들은 소리에 반응했다. 내가 소리를 지르면 그들도 소리를 질렀다. 로큰롤 공연장의 관중들 같았다. 좀비들은 소리가 가장 잘 들리는 밴 뒤 쪽으로만 몰려들었다. 좀비들은 우리의 앞을 가로막지는 않았다. 헤드라이트 앞으로는 모이지 않았다. 먼 곳까지 길이 보였다.
나에게 삶은 일직선이었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로 연결돼 있었다. 하나의 사건은 이전 사건의 결과이자 다음 사건의 원인이었다. 형이 없었다면 LP가 없었을 것이다. LP가 없었다면 허그쇼크도 없었을 것이고, 허그쇼크가 없었다면 홍혜정과 홍이안과 뚱보 130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도미노가 다음 도미노를 넘어뜨리듯 모든 사건은 연결돼 있었다. 처음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처음이란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 마지막 도미노는 무엇일까. 마지막 도미노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의 도미노를 쓰러뜨리는 사건이 될 것이다.
김중혁,『좀비들』, 창비, 2010, 「좀비들」중에서
그동안 쓴 일기들을 보았다. 조금은 과장되고 엄살이 심한, 그 과대포장된 나의 이야기를 보면서 무엇을 위해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인가 생각해 본다. 처음에는 그저 푸념, 화풀이에 지나지 않았다. 뭐라도 끄적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 일하는 것에 몰두해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실패를 이미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싶지 않더라도 시작부터 뭔가 순탄하질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 시간들이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될까 봐 하루하루의 감성을 붙잡아보려 했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략 사십여 편의 이야기가 되었다. 같은 것을 바라보아도 그것에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는가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단순하게 일을 배우려다가 실패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랑 잘 맞지 않더라고요. 단 두줄로 끝내도 되는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시간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위한 디딤돌이라고 생각하면, 지금이 그저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게 되겠지. 그렇게 나를 다독인다. 다음이 있을 거라고.
나이 마흔이 되고서야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해 결정한 퇴사였다. 차근차근 준비하고 알아봐서 결정한 인테리어 일 배우기였다. 물론 충동적으로 종목이 바뀌고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누구의 간섭도 없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다. 학생 때는 부모님의 의견이 주였고 대학생이 돼서는 그저 술만 먹느라 바빴고 취업을 할 때는 지원자격과 회사환경이 더 중요했다. 취업한 이후에는 그저 다니기에 바빴고. 남들 말리는 걸 고집부려 진행하고 결국 나가떨어지기까지, 이번 경험은 꽤 소중하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온전히 내 선택으로 퇴사와 취업과 다시 퇴사를 겪으며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결국 나는 그저 살아가지는 못할 놈인가 보다. 망하더라도 그게 막다른 길인 걸 알아도 일단 한번 부딪히고 머리가 깨져봐야 아, 안 되는 거구나! 하고 깨닫는 사람이다. 저쪽이 안 되는 길이라는 조언을 그렇게 들었는데도,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리를 그렇게 들었음에도 일단 몸으로 겪고 나서야 어라, 진짜 안되네 싶다. 그러니 더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거 하련다. 이런 순간에도 내 뜻대로 하는 게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준비가 덜되어 더 세게 부딪히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니까.
내 나이 마흔. 한 해에 두 번의 퇴사를 겪고 내가 어떤 멍청이인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조금 어렸을 때 알았으면 좀 좋아.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인가. 언젠가 허해진 가슴 한 구석을 붙잡고 내가 잃어버린 게 뭐였지 하고 궁금해하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파우스트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헤매기 마련이지.' 노력해서 방황이 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하면서 살지는 못하겠더라.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싶어서.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 헤매봐야지. 사춘기에 해야 할 것을 지금에 와서 하고 있으니 뼈마디가 시리다. 나이가 들어가는 뼈마디 사이로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모든 이들의 조언이 다시 돌아와 쿡쿡 박힌다. 아이 참. 나는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만 했다고. 학교 잘 다니고 대학 가고 취업도 하고.
그저, 나를 잘 몰랐던 대가를 이제 와서 치르고 있는 거뿐이다. 그렇다면 별 수 없지. 다시 대가리가 깨질 때까지 들이박아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