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그 키득거림

느린 일기 - 엔딩 크레딧 없이 또 뭔가를 해서 살아야 한다

by 블랙스톤

2023년 11월 06일 월요일

하루 종일 어두컴컴하고 비는 주룩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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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느린 일기는 퇴사 이후에 한두 편으로 끝이 날 예정이다.

일 배우는 것에 실패했다고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이건 내 인생이기에 엔딩 크레딧 없이 또 뭔가를 해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느린 일기, 퇴사와 실패의 기록은 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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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주가 시작되었다. 어두운 날씨에도 아이들은 찰박거리고 어른들은 걸음을 서두르며 모두 밖으로 나선다. 창밖에 그렇게 흐린 날씨 사이로 당당하게 사라지는 이들을 바라본다. 나는 집에 있었다. 그저 집에 있었다. 가끔은 집 앞의 도서관을 가만히 바라보기도 했다. 지나가는 바람 사이 빗방울이 가끔 보인다. 내 창가에 부딪히는 타닥타닥 소리가 언제나처럼 나를 보듬듯이 토닥이는 소리로 들리지가 않는다. 그 소리마저 나를 타박하는 것만 같다. 빗소리가 들릴 때마다 괜히 움찔거린다. 핸드폰으로 음악을 조금 크게 틀어두었다. 빗소리가 잦아든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쉬고 싶었다. 그저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금 크게 틀어놓은 음악과 그 사이로 가끔씩 들리는 내 숨소리. 일정한 음악을 따라 내 숨소리도 조금씩 일정해진다.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사이사이로 들리는 빗소리가 그제야 조금 토닥이는 소리처럼 들린다. 위로하는 노래 모음이라는 그 동영상의 조회수가 높다. 혼자가 아닌 것 같다는 묘한 안도감. 나만 이렇게 웅크린 게 아니겠지 하는 묘한 연대감. 아주 조금 숨쉬기가 편해졌다.


비가 와서 한껏 센티해졌다. 문득 학창 시절처럼 흠뻑 비를 맞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집을 나서지 않았다. 집 밖으로 나섰을 때 아는 누군가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도망칠 것만 같았다. 지금의 내 상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조차도 모르겠기에. 초라한 등만 보이고 돌아설 것만 같았다. 분명 마지막 퇴근까지는 괜찮았는데 하루 이틀이 지나자 그 끝을 모르고 가라앉고 있다. 잠을 자도, 자고 일어나도 멍한 표정의 내가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그것이 그저 표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도 멍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시야에 물기가 어린것처럼 명확하게 느껴지는 것 없이 시간이 지나간다. 배도 고프지 않다. 그저 멍하니 있다가 잠이 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올라 멍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잠이 드는 순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


아침에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을 갔다가 거울 속에서 너덜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살짝 입꼬리를 올려보았다. 그 어설프게 벌어지는 웃음 사이로 내 얕은 속이 비쳐 보이는 것만 같다. 언제나 여유롭던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거울을 보면서까지 눈치를 보는, 눈을 굴리는 사람만 보였다. 세수를 하면서도 자꾸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쳐서 억지로 눈을 돌려야 했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그게 거울 속에 쪼그라 붙은 나라고 해도.


세수를 하다가 찬물을 머리에 끼얹었다. 살짝 쌀쌀해진 날씨에 찬물을 뒤집어썼는데도 머리가 아직 멍하다. 찬물로 샤워를 했다. 춥다는 생각이 커지자 다른 생각들이 작아진다. 이제야 조금 정신이 드는 것만 같다. 옷을 갈아입으며 왜 갑자기 이렇게까지 가라앉았는지 생각했다. 이내 별의별 생각이 들면서 다시 멍해지려는 것 같아 옷을 다 벗어버렸다. 잠시 그렇게 서있자 몸에 한기가 돈다. 춥다는 생각이 커지고 나니 다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 불안하고 무서웠구나. 막상 일을 때려치우고 나니 겁이 났던 모양이다. 퇴사 전에는 분명 단단히 결심하고 이후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그것이 피부에 닿으면 또 다르게 느껴지는 법이다. 첫 번째 퇴사 때는 그저 기쁘기만 했다. 그 반대급부인지 두 번째 퇴사라서 그런 건지, 혹여 일 년도 되지 않아 퇴사를 연달아하는 것이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서인지 이번에는 그저 불안하기만 하다. 해야 할 것들과 해야만 하는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과 통장 속의 현실, 앞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 지출 따위가 두서없이 떠오르고 하나를 생각하면 그 뒤를 이어 해결법, 새로운 고민, 새로운 방법, 현실적인 방법 같은 생각들이 따라온다. 이놈의 생각들은 끝이 없다. 으슬으슬 몸이 떨려온다. 우선순위를 정하기로 한다. 아니, 이미 퇴사 전에 우선순위를 정해두었다. 그저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뿐이지. 불안했기에 지켜지지 않은 거다. 무서웠기에 내 모든 생각들이 아우성을 치며 이것부터 봐달라며 몸부림을 쳤던 거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이대로 더 있다가는 혼자 집에 있다가 감기 걸리게 생겼다. 우선순위를 다시 단단히 되새기며 옷을 입었다.


아주 조금만, 내 표피가 아물 때까지만, 쉬기로 결심했다. 퇴사를 하며 가장 먼저 해야 한다고 느낀 것은 쉬는 일이었다. 지금의 내가 '나'에게 느끼고 있는 이질감이 사라질 때까지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십 년간의 회사원 생활동안 일을 못한다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다른 일에 도전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부지런히 배우면 무조건 잘할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반년 이상의 시간이 투자되었는데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나를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열심히 해도 배우지 못한다니, 혹시 열심히 한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나는 열심히도 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하는 이상한 느낌들. 나를 깎아먹고 위축시키는 생각들이 일하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그렇지 않다고 항변해 봐야 결국 일을 하러 가서 매일 혼나는 현실이 나를 맞아주고 있으니 계속 작아질 수밖에. 마트에서 십 년이나 일하고 부점장직을 수행해 왔다는 것은 꽤나 뻔뻔하다는 것을 대변하는 경력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사람을 대면하며 회사에서 얻어낸 최고의 자산이다. 그것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낀 순간, 퇴사하게 되면 무조건 쉬어야겠다 결심했다.

그것은 결심이라고 불렀지만 한없이 몸을 웅크리고 방의 구석으로 몸을 바짝 붙이고 기대는 일이다. 그렇게 등을 단단한 벽에 붙이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는 일이다. 가장 초라한 모습을 벽에 기대고 아주 천천히 숨을 고르는 일이다. 정신없이 따라가던 시간을 두고 가만히 앉아서 나만의 시간을 돌아본다. 그저 따라가느라 생긴지도 몰랐던 생채기들을 돌아본다. 온전히 나에게 쓰는 시간, 세심하게 나를 돌아보고 돌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문득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사람들은 저마다 우산을 쓰고 있었다. 우산은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는 일이 없었고 동글동글하게 서로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 동글동글한 우산이 부러워졌다. 뭔가가 부러운 마음이 들 때면 벽에 등을 대고서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흐릿한 거리 사이에 우산들은 모였다 흩어져가며 뭔가 바쁘다. 나와는 다르게. 자꾸 뭔가가 떠오르려 할 때면 등을 벽에 기대고 심호흡을 한다. 벽에 등을 기댈 때마다 차갑다. 그 차가움이 생각을 내쫓는다. 다행이다. 찬물 샤워가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아주 조금 책을 읽다가 졸리면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좋다. 막연하게 불안한 것들을 상상하는 것보다는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생긴다는 건 좋은 신호다.


가볍게 읽을만한 책을 꺼내 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단편 소설집 중에 그나마 문체가 가벼운 것으로 골랐다. 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음악을 껐다. 바람 소리 사이사이에 빗소리가 조금 경쾌하게 들린다. 책 한 페이지를 다시 읽는다. 그리고 두 페이지, 세 페이지. 짧은 소설 한 편을 다 읽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방금 읽은 이야기가 머릿속에 들어와서 이런저런 상상들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조금 웃을 수 있을만한 엉뚱한 상상들. 그 이상한 상상들이 머리를 살살 간지럽힌다. 나는 괜히 혼자 키득대다가 다른 상상을 하고 싶어 다른 단편소설집을 꺼내 들었다.

말로 구체화시키지 않은 아주 짧은 상상들을 떠올리고 그것만으로도 이어지는 그림들이 재밌어서 나 혼자 웃을 수 있는 시간.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해 관계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지 않을 것이기에 상황이나 분위기나 상대를 확인할 필요가 없는, 오롯하게, 온전하게, 내가 나에게 대화를 건네는 시간. 급할 이유도 꼭 끝까지 이어나가야 할 필요도 없이 갑자기 든 생각들로 이어나갈 수 있는 상상들은 내게 묘한 안도감을 준다. 머리를 편안하게 놔주는 느낌.

오래된 친구들과 있을 때도 분명 즐겁지만 나의 휴식은 혼자서 키득거릴 수 있는 시간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는 분명히 이 순간이 필요했다.





방안에 난 앉아있지
의미 없는 낙서만 하지
음악도 듣고 있는 나이지
어디에선가 그저 들어본 듯 하지
괜시리 중얼거리지 전화기도 들어보았지
아무런 소리가 나질 않지
의미도 없이 멍하니 창밖만 보지
그냥 이렇게 끝내야지
난 너무나 지쳐있지 이제 조금 쉬어도 되지
이런 시간 오랜만이지
왜 그런지 모르지 사실 누군가가 그리운 거야
아마도 외로움이 필요하지
나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 그 시간이 필요해
누군가 그리워질 땐 슬프지
이젠 처음으로 돌아가 정리해야만 해
나는 혼자이니까
플라워,『Bloom』앨범, 2000.06.09,「독백」중에서





혼자서 상상하고 키득대다가 어느 순간 멍하게도 있고 그러다 뭔가를 보면 또 뭔가를 상상하고. 그럴 때면 시간은 의식하지 못한 상태로 엄청 빨리 지나간다. 아마 아직 일을 하고 있었다면 이 순간들이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 뭔가를 했어야 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저 흘려보냈다. 손가락 사이로 물을 흘려보내는 것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그 간지러운 느낌들을 즐겨보았다. 뭔가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기분.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처럼 그 기분을 가만히 바라본다.

과거의 내가 쌓여 미래의 내 행동이 되듯이 시간들이 쌓여 내 경험이 되고 앞으로의 방향의 지침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경험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양한 방향성을 가진 그 시간들이 쌓일수록 더 많은 지침을 가지게 되는 거니까. 어릴 때 그러지 못한 나는 나이가 들어서 방황을 시작했고 이제 와서 그 지침들을 하나 둘 수집하는 중이다. 조금 더 치밀한 사람이었다면 간접경험을 통해 그 지침을 미리 준비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몸으로, 내 시간으로 때우는 수밖에.

몸이 피곤하면 집에서 쉬듯이 나는 나에게 가장 마음 편한 시간을 주는 중이다. 일을 하며 어딘가 찌그러져있던 것을 살펴보고 이제 와서 돌아보니 이상했던 것도 확인한다. 반년을 조금 넘게 일한 현장직뿐만 아니라 십 년간의 회사생활도 돌아본다. 사실 첫 퇴사 후 십 년의 세월을 한 달 만에 정리하고 뭔가를 다시 한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무리수였는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쉽게 걱정을 끊고, 미련을 끊는 사람이 아닌데. 뭐든지 한 발 느린 나는 후회마저도 이렇게나 늦게 시작한다. 늦은 대신 더 꼼꼼하게 더 단단하게 다지면 된다. 어차피 지금 내가 들어부을 수 있는 자산은 시간뿐이니.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이것은 휴식이어야지 도피가 아니다. 한없이 쪼그라 붙은 나 자신을 달래 다시 빵빵한 표피를 만들고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정비기간이다. 그저 누군가를 탓하고 혹은 나를 탓하며 가라앉기만 할 필요는 없다. 이런저런 상상들을 하며 킥킥대고, 어제까지의 일을 후회하고, 다짐하고 다독이고 칭찬한다. 누구보다 나의 어두운 면과 창피한 면을 잘 알기에 나는 가만히 나를 위로한다. 상처를 핥는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밖을 향해 눈을 돌린다. 지금은 그저 살펴만 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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