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숲에서 일기장을 펼치는데 일 년 걸렸다
브런치에서의 첫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사실 브런치에 처음 도전했던 것은 '상실감'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십 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다가 마흔, 더 나이가 들면 새로운 시도는 해보지도 못하고 그저 예전에 작가지망생이었던 직장인 N 정도로 끝날 것만 같아서,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다.
엄밀히 말하면 십 년간의 직장생활 중 일 못한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으니 기술을 배우는 것도 이 악물고 몇 년이면 배우겠다 싶었던 거다.
그렇게 기술을 배우고 자그마한 가게를 차린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구멍이 숭숭 뚫린 계획이지만 이 계획에서 믿는 몇 가지가 있었다.
1.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버티려고 하는 내 성향
2. 십 년 차가 되어감에도 대기업 일 년 차보다 적은 내 월급
3.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러브콜
기술 배우는 거 망하면 그냥 알바 하면서 살아도 지금 월급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큰 미련이 없어졌다. 물론 나름 직급이 있는 직장생활보다는 몸이 고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리스크도 없이 어떻게 새로운 것들을 배울까.
드디어 일을 그만두고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고 시간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분명히 퇴사 전에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 둘 진행하고 있는데도 쌓여가는 글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깨달았다.
아, 대나무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떠들어야 하는데 나는 그냥 이불 덮고 신나게 떠드니 가슴만 더 답답했던 거구나!
그래서 쓰던 글을 올려 브런치 심사를 받기 시작했다.
새로 일을 배우면서 구박은 받지 않을 수 없고 이 나이에 칭찬을 받을 만한 곳은 거의 없다.
자신감이 조금씩 사라지고 그곳에 좌절이 깃들기 전에, 자신감 잃은 자리를 지나던 상실감이 슬쩍 이걸로는 칭찬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브런치를 권했던 것이다.
그게 23년 11월 경일 거다. 정확하지는 않다. 그쯤일 텐데.
떨어졌다.
떨어지고
또 떨어졌으며
계속 떨어졌다.
위에도 상술했듯이 시작하면 어떻게든 버티는 성향이 발휘됐다.
한자리 수를 넘어 두 자릿수에 육박할 만큼 떨어졌다. 내가 떨어지는 꼴을 보더니 웃던 지인들이 작가에 도전해서 한 번에 붙는 상황도 벌어졌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도전했다. 이거 안되면 '느린 일기'는 집어치우고 새로 쓰고 있는 '이바구'를 가지고 도전해야지!라고 이를 득득 갈았던 것 같다.
자, 이제 나는 대나무숲에 섰다. 큰 소리로 23년 3월부터 있었던 내 이야기를 외칠 거다.
이 숲에 오는 데에 일 년이나 걸렸다.
이불속에 차곡차곡 쌓아둔 내 '느린 일기'라는 제목의 편지는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이며 혼자만의 간절한 외침이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 중에서 가장 어릴 때, 나이 마흔에 부린 세상을 향한 응석이다.
인생을 살맛 나게 해주는 건 꿈이 실현되리라고 믿는 것이지.
산티아고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바람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자신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으라는 사실을. 떠나지 못하게 그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자신 말고는.
저자 파울로 코엘류, 번역 최정수,『연금술사』, 문학동네, 2001
산티아고처럼 사막으로 떠나진 못해도, 자아의 신화, 보물을 찾진 못했어도 일단 내 대나무숲은 찾았다.
그럼 아랫배에 힘을 딱 주고 목소리라도 멀리멀리 보내봐야지.